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표범'이라는 말을 들으면 얼룩덜룩한 도넛 모양의 반점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흑표범이라고 하면 완전 새까맣고 늘씬한 거대한 고양이과의 동물을 떠올릴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개체수가 급감하고 있는 멸종위기종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있는데, 표범과 흑표범 역시 멸종위기에 놓여있다고 생각되고 있다. 이런 멸종위기동물들을 관리하기 위해서 과학자들은 각각의 동물 한마리 한마리를 표기하여 전체 개체 수를 확인하고, 그들이 이동하는 것, 새끼를 낳고 죽는 것을 모두 살핀다.
완벽하게 이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똑같은 종에 속하는 개체 하나하나를 잘 구분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표범의 경우 몸에 고리 모양의 반점이 나 있는 것이 특징인데, 각각의 개체마다 이 무늬에 차이가 있어 개체를 구분하는 데 지표로 쓰인다.
하지만 흑표범은?!
온 몸이 온통 시커먼데 어떻게 한 마리 한 마리를 구분할 수 있을까? 야생의 동물들에게 관리를 한답시고 전자칩을 다 심어줄 수도 없는 노릇일텐데 말이다.
사실 흑표범도 표범처럼 몸에 무늬가 있다.
흑표범은 표범이라는 종에서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나 갈라져나온 종인데, 검은색 색소를 침착시키는 유전자가 열성유전자로 작용한다. 표범과 친척간이라고 볼 수 있는 재규어의 경우 이 유전자가 우성유전자로 작용한다.
유전자는 보통 한 쌍으로 이루어진다. 즉 하나의 역할을 하는 유전자가 몸 속에 두 개씩 존재하며, 두 개의 유전자가 쌍으로 함께 일을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같은 역할을 하지만 쌍을 이루는 유전자 두 개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역할에 기여한다. 이 유전자 쌍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역할에 기여하는 유전자 두 개로 이뤄질 수도 있고, 같은 방식으로 역할에 기여하는 두 개의 유전자가 쌍을 이룰 수도 있다. 이 때 전자의 경우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형에 기여하는 유전자를 우성유전자라고 부르고, 표현형에 기여하지 못하는 유전자를 열성유전자라고 부른다. 열성유전자가 표현형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같은 종류의 유전자(열성유전자) 두 개가 쌍을 이뤄야만 한다.
중학교 생물 교과서에 나왔을 내용으로, 콩의 색을 결정하는 역할을 하는 유전자에 대해 얘기해보자. 콩을 이루는 세포들-즉 콩의 몸에는 콩의 색을 결정하는 유전자 두 개가 한 쌍을 이루고 있다. 이 때 이 유전자가 색깔을 결정하는 데 기여하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는데, 초록색으로 만드는 것과 노란색으로 만드는 것이다. 즉 두 종류의 유전자가 존재하고, 콩알들마다 두 종류 중 어떤 유전자를 가지는지는 다 다르다. 어떤 콩의 몸에는 초록색으로 만드는 유전자 두 개가 쌍을 이루고 있고, 어떤 콩은 노란색으로 만드는 유전자 두 개가 쌍을 이루고 있으며, 어떤 콩은 초록색으로 만드는 유전자와 노란색으로 만드는 유전자가 각각 하나씩 모여 쌍을 이룬다. 첫 번째 콩의 경우 당연히 초록색일거고(노란색으로 만들려고 하는 놈이 아예 없으므로) 두 번째는 노란색 콩이 될 것이다. 마지막 콩은 노란색이거나 초록색일텐데, 만약 이 경우에 초록색 콩이 된다면 초록색으로 만드는 유전자를 우성유전자, 노란색으로 만드는 유전자를 열성유전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다시 흑표범 얘기로 돌아가보자.
흑표범이 가지는 검은색 색소를 침착시키는 유전자는 열성유전자라고 했다. 그렇다면 실제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형이 검은색 색소가 침착되는 것이 되려면 흑표범은 검은색 색소를 침착시키는 유전자 두 개를 가져야 한다.(색소를 침착시키는 역할을 하는 유전자에는 색소가 침착되게 하는 것과 그렇지 않게 하는 것 두 가지 종류가 있고.) 따라서 흑표범엄마와 흑표범아빠가 새끼 흑표범을 낳을 때 엄마에게서도 아빠에게서도 오로지 색소를 침착시키는 유전자만 전달될 수 있으므로 모든 흑표범들은 검은색 색소가 침착될 것이다. 즉, 모든 흑표범들의 몸에서 색소 침착의 역할을 하는 유전자는 한 종류, 침착을 시키는 종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유전자 때문에 모든 털 색이 까맣긴하지만, 그 안에 무늬가 존재하긴 하는 것이다. 온통 까맣기 때문에 사람의 눈으로 구분할 수 없을 뿐이고 말이다.
오늘(2015년 7월 17일)자 사이언스지에 소개된 기사에 따르면 말레이시아에 분포하는 흑표범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적외선으로 보면 흑표범의 무늬가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다 똑같이 까만 흑표범이라고 해도 똑같이 까만 흑표범이 아니었던 것이다. 말레이시아에 분포하는 흑표범 연구가 처음인데 이 방법을 통해 정확한 분포를 조사할 수도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흑표범 외에 검은색 색소가 침착되는 특징을 가지는 다른 동물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어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