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에 '3만명'의 삶을 변화시킨 중국의 상담가 뤄진웨가 쓴 책이라고 되어있어서 시작할 때부터 기대가 됐다. 안 그래도 마음이 많이 힘들고 나에게 매번 불행한 일만 일어나는 것 같은데, 그것이 다 결국 내 선택의 결과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주위에서 상담을 받고 나면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일단 해소가 좀 되고, 다음 번에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그럴 때 과거에 상담을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좀 더 빠르게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직접 상담을 받으러 가는 것이 쉽지 않은 조건 속에서 이 책을 읽는 것이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내가 생각한 것과 너무 달랐다. 2022년 11월에 우리나라에 출판되었고, 원작도 2020년에 출판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중국 사회보다 현재 여성으로서 한국에 살고 있는 나의 삶이 더 많이 열려있고 현대적(?)이 된 것일까(사실 '현대적'이라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뤄진웨는 책에서 내담자들의 사례를 곁들여 불행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세를 조언해주고 있는데, 조언과 사례에 대한 평가(?) 내지는 뤄진웨의 의견이 하나같이, 그리고 점점 더 내담자 또는 불행한 사람을 탓하고 비난한느 듯한 느낌이 들어 불편하기만 했다.
물론 자기 자신을 찾고 높은 자아존재감, 자신감같은 걸 가질 수 있다면 마음이 더 튼튼해지고 거기에서 행복의 씨앗이 자라난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과 환경을 탓하지 말라고, 변화의 시작은 내 안에서밖에 시작될 수 없다고 하는 말은 얼마나 구시대적인가. 과거에는 상담을 하거나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존감을 기르라고, 자신이 혹시 자존감이 너무 낮은 건 아닐지, 주위에 너무 의지하기만 하는 건 아닐지 살펴보라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말을 거의 하지 않는 것 같다. 자기 성장의 시대는 이미 충분히 무르익었고, 내가 바뀌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태도는 자칫하다간 자기를 비하하거나 공격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난 생각한다. 하지만 뤄진웨의 의견, 태도 그리고 이 책에서 하는 말은 모두 이런 구시대적인 태도다. 그리고 우연찮게도 이 책에 소개되는 내담자들은 다 여자이고, 결혼 후에 힘들어하는 아내가 많다. 이 점 역시 이 책과 뤄진웨의 이야기가 더욱 구시대적으로 보이게 한다.
나는 자기 혼자 노력하고 변화해서 성공하는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어디나 주위에 악당이 있다. 그리고 변화해야 할 대상은 악당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 악당에게 에너지를 지나치게 많이 뺴앗기지 않는 것이다. 내가 그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변화시키기 위한 방법을 찾고-그 방법 중 하나가 나의 태도를 변화시키거나 새로운 태도를 장착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악당은 우리가 절대 변화시키기가 힘들고, 그 경우 벗어나는 것만이 방법이지만 놀랍게도 벗어나기가 정말 어렵고 불가능할 지경인 때가 많다. 상담사를 비롯한 주위의 '도움의 손길'은 이런 사람들이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상황에서까지 '당신이 변화하면 됩니다', '스스로 강해지고 벗어나세요'같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은 매우 읽기 쉽게 되어있다. 일곱개의 큰 주제 각각이 다섯 개의 글로 구성되어있고 각각의 글은 도입과 세 개의 꼭지, 마지막에 '치유노트'라는 이름의 두 세 문장짜리 요약 정리로 구성되어있어서 정말 빠르게 읽을 수 있다. 나는 글이 불편한 마음이 들게 해서 꾸역꾸역거리며 느리게 읽었지만. 그나마 "감수성"이라는 능력을 주제삼은 부분은 내용이 괜찮았다. 안좋은 감정이라고 회피, 외면하고 숨기는 것이 아니라 다 마주하고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되는지를 모두 다 솔직하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는 데 엄청난 용기, 그리고 시간도 필요한데-주위의 악당이 이러한 시간을 빼앗는 경우도 많으므로, 이러한 인식 능력을 '감수성'이라고 저자는 부르고 있다. 저자가 '감수성'이라 칭한 이런 능력은 정말 중요하다고 나도 생각하고, 갖추는 데에도, 또 실제로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과 연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역시나 또, 이 능력을 갖추고 사용하는 이유와 목적 역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함이지 나에게서 문제점을 찾고 변화시키기 위함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불행하고 슬프지만, 자신이 불행하고 슬퍼서는 안된다고 느끼는 시대와 나라에 살고 있다. 어떤 얘기든 사람마다 다르게 도움이 될 수도 방해가 될 수도 있는데, 언제나 '나는 좋은 사람이야'라는 생각을 마음에 굳게 가지고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더더욱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