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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결국 무슨 얘기를 하는 책인가. 못생김에 대한 것인가, 사랑에 대한 것인가. 아마도 사랑에 대해 얘기하는 책이 맞았을 거다.


2009년에 쓰인 소설인데, 그 시절만 해도 이렇게 여전히 우리 사회가 야만적이었던가 싶어 화가 나고 불편하면서도, 못생긴 자의 심리를 작가는 어찌 이리 잘 알았던가 싶어 기분이 이상해지기도 했다.
요한은 시작부터 세상을 등질 것만 같아 내 마음을 불안하게 하더니 결국엔 그리하였다. 돈 많은 이복 형의 돌봄보단 삿포로에서 맛있는 안주를 요리하며 여전히 우울해하는 게 나았을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결국 요한, 그녀와 나, 그리고 군만두 누구를 봐도 사랑은 두 사람이 아닌 혼자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필로그로 이어지는 혹은 뒤집어지는 서로 다른 결말을 굳이 남겨야 했던 이유는 뭐였을까. 작가는 지독한 로맨티스트인 걸까,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그의 다른 책을 서둘러 읽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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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연의 일부다. 모든 살아있는 것을 난도질하는 쇠붙이, 독 같은 것들은 누구에게 허락된 걸까. 마크 헤이머는 그런 건 허락된 적 없고 허락의 여부가 필요한 것도 아니라는 걸 아는 사람이다.
기술은 많은 것을 편하게 만들어줬지만, 그 편리함을 얻는 대가로 누군가가 어디에서 어떤 고통을 얻었을지는 아무도 그리고 영원히 모를 것이다. 그 고통을 우리가 모두 알아야 한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고통이 있으리라는 걸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다는 건 그 사람에 대해 아주 많은 걸 알려준다.
4년 전 이 책을 읽었을 땐 세상을 그렇게 무겁게만 받아들이지 않는 듯한 태도를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다시 읽었을 땐 두더지를 잡던 시절 마크 헤이머의 발걸음이 하나 하나 왜이리 무겁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그가 정원을 가꾸고 두더지를 잡을 때 자신에 대해 덜 생각하고 최소한의 의식으로 주위를 느끼는 점이 그때랑 지금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살아가는 데 있어 고도로 집중한 의식, 기술같은 것은 늘 필요한 게 아니다. 가끔 도움이 되겠지만 자연 그대로의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좀 더 자주 생각하는 게 오히려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남는 데 더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것 아닐까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힘이 든다는 걸,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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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읽은 건 2022년 초봄이었다. 국내 출간이 2021년 12월로 보이는데 거의 출간하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끈 책이다. 22년 3월 그때도 상호대차가 되는 관내 모든 도서관에서 전권이 대출중에 예약도 여러 건 밀려있었으니까. 어떻게 몇 번의 차례를 기다려서 빌려다 읽었는데 다 읽는 데 3-4일정도 걸려서 엄마랑 돌려보고 그랬다.
그렇게 사람들이 재밌다고 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난 너무 별로였고, 그때 바로 읽었던 다른 책도 자연과학 책인데 너무나도 좋아서 인스타에 핵노잼(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핵꿀잼(동쪽 빙하의 부엉이), 그런데 왜 인기있는지는 알겠다고 남겼었다. 왜 그렇게 재미가 없고 별로였을까.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여전히 별로였는데, 잊어버렸던 그 이유를 알겠더라. 책의 내용 진행과 작가가 소재로 삼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한 해석이 산만한 느낌이 심해서였다. 그리고 어떤 사실에 대한 해석이 너무 과장되어서 극적인 느낌이 있는데 이런 포인트를 사람들이 재밌게 느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 책을 통해 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똑똑한 사람이 아니고 자의식이 넘치는 외곬수며 나르시스트에 가깝다. 그는 분류학이라는 학문이 생겨나던 초창기에 우연히 그 분야 학계에 발을 들이는 기회를 얻었다. 내가 보기에 그는 분류학에 대해 학문적 열의같은 건 없었다. 당시 분류학에서는 표본을 수집하여 새로운 종을 동정, 사실 동정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외형을 발견하면 '먼저 이름붙이기' 대결에 가까운 활동을 했다고 여겨진다. 쌓여가는 이름표의 수는 곧 그의 지식이고 학문적 성취이자 업적이 되었을 것이다.
어떤 분야이든 초기에는 양적 발전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가 이룬 업적이 바로 양적 발전이다. 물론 의미가 있지만, 양적 발전을 이룩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었다는 게 문제다. 그러지 못했던 이유는 그가 분류의 의미, 그것의 해석과 적용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주위의 관심과 칭찬에 우쭐해지고 자기 기만에 빠진 나르시스트다. 그는 진실에 아예 관심이 없고, 편안함만 알고 좇은 사람이었다. 우리가 관심가져야 하고 기억해야할 점이 바로 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을 한다는 것, 과학자라는 건 어떤 의미이고 의미여야 하는가 라는 윤리적 사회적 정치적 의식 말이다.

하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이 책을 한 번 읽어서는 사실 종잡기 쉽지 않다. 책에는 수많은 주석이 달려있는데 대부분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직접 쓴 글인 탓일 것 같다. 저자도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해 결국 어떤 입장을 가지고서 글을 쓴 것인지 모르겠다. 그가 물고기 종 연구를 시작하던 때의 이야기에서는 갑자기 그가 나무와 식물들의 종에 대한 관심을 놓지 못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산만한 글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책의 후반부에 가면 우생학의 창시자같은 느낌으로 소개된다.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무차별적이고 비인간적인 불임을 강제하게 만든 장본인으로도 그려지는데, 이러한 서술도 나는 별로였다. 그가 이러한 범죄와 상관없다는 게 아니다. 그로 인해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 당시 미국 사회와 세계에 산재하던 잘못되고 악한 인식, 그것을 지지하는 악하고 잘못된 사고의 사람들 여럿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 혼자만의 잘못이고 그 혼자가 원인인 것도 아닌 것이다. 그가 진정한 과학자였다면 자신의 연구분야인 분류학의 쓰임에 대해 좀 더 진정어린 고민을 해야했으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는 게 사실이고 더 중요한 점이다.
이런 식으로 극적인 요소로 비약하는 작가의 이야기 전개, 해석이 너무 별로였다. 까딱하면 큰 오해를 일으킬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사실 그가 결국 쌓아올린 표본은 대부분이 물고기, 즉 어류인데, 어류라는 분류가 분류계통에 없다는 것이 반전처럼 제시된다.
윤계숙이라는 과학자가 이에 대해 느끼는 고통과 격분에 대해서도 나온다. 하지만 어류라는 계통이 분류학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과거엔 심지어 있었어서 그게 사라질 때 엄청난 충격과 공포, 상실감, 슬픔 등을 사람들-과학기술인이든 아니든, 에게 안겼고 아직도 그것을 부인하는 사람도 많다는 저자의 서술은 마지막으로 나의 표정을 어둡게 했다.
기존에 있던 가설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하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나가는 것이 바로 과학이다. 생물을 분류하는 계통이라는 건 진화와도 관련이 있지만 생물의 종을 모두 파악하고 이해하는 하나의 도구이고 가설에 기반한 약속이다. 얼마든지 변할 수 있고 오류가 발견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계통수에서 어류가 없어질 때 과학자들은 그에 대해 과학적 근거 없이, 슬퍼서 그 사실을 부인하고 인정하지 않았을 거라고 나는 절대 생각할 수가 없다. 또한 그게 그렇게 대단하고 충격적인 일이라거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해왔던 일-수많은 '어류'를 발견한 것의 의미를 없애는 것도 아니다.

결국 제목처럼 물고기-어류가 분류학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왜 존재하지 않는지(원제가 Why fish don't exist이므로)에 대한 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도 아니고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 같은 사람이 학계에, 그리고 나아가 사회에 엄청나게 많은 영향을 손쉽게 끼쳤던 것, 그 사람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는가 하는 것, 그로부터 과학을 한다는 것의 의미, 과학이 세상에 해야 하는 일, 과학자를 포함한 학자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깊이 고민할 수 있는 책인데 내용 전개가 그 생각의 흐름을 방해해버린다.

삶에서 길을 잃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자꾸만 의심하고 저버리고 싶었던 저자에게 필요한 건 데이비드 스타 조던같은 나르시스트, 또는 (사실 난 그에게서 보였다고 하기도 느끼기 어려웠던)그릿 같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말한 '존재의 의미 없음'에 대한 다른 해석-그것이 넌 아무 의미 없는 존재니 없어져도 된다는 것이 아니고 나에게만 부여된 특별한 존재의 의미가 없어도 우리는 살아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모두가 그러하므로 내가 아닌 타인이 하나하나 소중함을 잊지 말아야 하고 우리는 항상 끝없이 겸손해져야한다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리란 건 없고 진실은 끝없이 변화하므로 그녀의 친구가 말한 카프카의 "파괴되지 않는 것"을 마주하는 걸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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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이 작가의 <농담>https://solleap.tistory.com/403, <무의미의 축제>https://solleap.tistory.com/754를 읽은 적 있다. 그 두 권 다 읽으면서 이 작가는 너무너무 진지한 사람인데, 그 진지함에 대해서 항상 회의를 느끼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이 책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 작가는 진지함은 쓸데없고 의미 없다고 외치는 바람에 오히려 더 진지함이 부각되는 사람 같다.

 

연애 관계로 서로 얽혀있는 등장인물의 삶을 통해 계속적으로 하고 있는 말은, 한 사람의 인생은 셀 수 없이 많은 사건과 변화로 가득하고 그로 인해 인생의 무게는 살아갈수록 더욱 무거워지고 진지해지는 것 같은데 그렇게 복잡하고 무거워지는 것이 '좋지 않은(부정적인)' 방향이며 사실이 아니기도 하다는 것이다. 모든 인생이 살면 살수록 더 복잡하고 무거워지는 건 필연적인 것 같은데, 작가/서술자는 그렇지 않다는 입장이다. 인생과 같이, 시간과 함께 지나가버리는 건 모두 일회적인 것들이다. 이런 것은 지나가면 그만이고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곱씹어 생각할 이유도 없다. 어차피 재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무시하고, 우리 대부분은 인생의 모든 일, 내가 떠올리는 모든 생각과 느끼는 감정 하나하나에 자꾸만 의미를 부여하고 곱씹으면서 무겁게 만들어 현실을 등지고 삶을 '망치고' 있는 거다. 

 

스스로에게 아무리 복잡성과 무거운 존재 의미를 부여하려고 애쓰고, 그러한 무게가 중력이 존재한다고 믿으려고 애써도, 알고 보면다 의미없고, 깃털처럼 가볍고 먼지처럼 쉽게 사라져 버릴 것들이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죽게 될 것. 결국 내 옆엔 너만 남게 될 것- 아무리 새로운 사람과 사랑, 인생을 찾아다녀도 내 옆엔 나와 내 인생, 내가 이 세상에 나면서 부여받고 손에 움켜쥐게 된 그것만이 남을 거라는 거다.

 

정확히 그렇진 않지만 거의 시간의 순서에 따라 이야기가 흘러가는데, 챕터의 제목이 대칭적으로 배치되어 있어서 읽다 보면 시간이 지난 게 아니라, 뭔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마치 우리가 청-장년기에는 인생에 변화가 너무 많아 폭풍 속을 지나는 듯하며, 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내 인생뿐 아니라 이 세상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만 이 때를 지나 노년기, 인생의 끝에 다다르면 결국 처음-태어났을 때,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과 다를 건 아무것도 없고 나라는 존재도 너무나 미미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는 걸 챕터 제목으로 대놓고 보여주려 한 것 같다.

 

이렇게 집착적으로 회고하고 '변화'를 만들어내려는 인간의 욕심은 '자아'의 발견에 대한 본능적인 목표의식같은 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자아라는 건 내가 노력해서 얻어낼 수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모든 인간은 사실 다 똑같다는 것. 내가 타인과 다른 "'자아'의 유일성"은 "짐작도 계산도 할 수 없으며", "타인으로부터 쟁취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한다. 회고하고 노력하여 내 자아를 만들거나 찾고 인생을 가꿔나가는 게 아니라, 타인을 통해서 다름을 쟁취해내야 하는 것이 자아이므로 애초부터 우리가 살아오는 방식 자체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자아'의 유일성은 다름 아닌 인간 존재가 상상하지 못하는 부분에 숨어 있다. 인간은 모든 존재에 있어서 동일한 것, 자신에게 공통적인 것만 상상할 수 있을 따름이다. 개별적 '자아'란 보편적인 것으로부터 구별되고 따라서 미리 짐작도 계산도 할 수 없으며 그래서 무엇보다도 먼저 베일을 벗기고 발견하고 타인으로부터 쟁취해야만 하는 것이다.
...
'자아'를 포착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히틀러와 아인슈타인 사이나, 브레즈네프와 솔제니친 사이에는 차이점보다는 유사성이 훨씬 많았다. 

 

그런데 소련의 침략으로 동일성, 획일성같은 것만이 강요되었고 개인의 별 의미 없는 의견이 사실은 가장 사악하고 중요한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에서 살아가다보면 오히려 동일성을 잊게 되고 자꾸만 나의 다름, 나의 의지에 집중하게 된다. 그 안에서 인간 존재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결국 얼마나 이 모든 게, 내 인생이, 감정이, 사상이, 목표가 다 가볍고 흩날리기 쉬운 것인지 작가는 자꾸만 생각하고 얘기하고 그로 인해 슬퍼했던 것 같다.

어떤 장면에서는 영화 <타인의 삶>이 조금 떠오르기도 했다. 체코가 소련에게 점령당했을 때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상황이었는지 역사적 배경을 알았다면 좀 더 많이 공감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렇게 모든 사람은 거의 다 똑같고, 변하지 않는데 단 한 가지 정도 다른 점이 있다. 그리고 그 점을 알아채는 순간, 우리는 사랑에 빠질 수도 있고, 나 또한 저렇게 변하고 싶다, 와 같은 엄청나게 큰 착각, 변화에의 의지를 불태울 수도 있다. 후자가 아마도 프란츠의 모습일 것이다. 전자는 아마도 토마시일 것이다. 이 둘, 그리고 사비나와 테레자 또는 마리클로드 중 누구의 삶의 태도가 낫고 옳은지를 묻는 것도 의미 없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다 똑같으나 단 한 가지 정도 차이가 있을 뿐이니까.  그들의 사상, 가치관 이런 것들 모두 다 의미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 현재를 얼마나 잘 살아가고 있느냐, 행복을 느끼느냐를 따져보면 모두 다 똑같이 별로일 테다.

 

그런 점에서 현재만을 살아가는, '시계' 그 자체인 카레닌이야말로 가장 행복하고 현명한 존재가 아닌가 싶다. 암에 걸려서도, 반복적인 하루를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한 개체. 깊이 고민하거나 변화를 만들려고 애쓰지 않고, 과거에도 미래에도 집착하지 않는 존재. 밀란 쿤데라 스스로가 이러기를 너무나도 원했으나 자신도 그리고 세상도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았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자꾸만 그런 생각 - 인생은 일회적인 일의 연속이므로 너무나도 가볍고 모두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것이라는 데에 강조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이번엔 한밤중에 갑자기 의식을 되찾자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가 얼마나 먼 곳에서 돌아왔는지 누가 알까! 어떤 유령을 만났는지 누가 알까! 그리고 지금 자기가 집에 있다는 것을 알고 가장 가까운 존재를 알아보고는 자기의 끔찍한 희열, 다시 돌아와서 새롭게 태어나며 느끼는 희열을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지 못했던 것이다.

 

 

체코에서 사용하는 공식 언어는 체코어다. 동유럽국가의 언어에 대해서나 언어의 계통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 어떤지 모르겠다만 러시아어와 비슷한 느낌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웹에 검색해 보면, 5-60년대 또는 그 이전에 태어난 세대에 해당할 것 같다고 생각되는데, 어르신 중에서는 독일어와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소설 안에서도 독일어를 비롯한 체코어 외의 외국어들이 등장하는 걸로 보이는데, 이렇게 다른 언어가 섞여있을 때 그 함의나 분위기를 충분히 이해하면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밀란 쿤데라의 문장은 굉장히 간결한데, 또 직설적이지는 않아서 어느 언어로 쓰였느냐, 그리고 어떤 단어가 어떤 문장 속에서 쓰였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를 주기도 하는 것 같다. 다른 역자가 옮긴 걸 읽어보고 싶어서 두 권을 빌렸는데 알고보니 표지만 교체된 버전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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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쌀국수 중에서, 돼지고기를 올리고 소스를 부어 비벼먹는 것의 이름은 분팃느엉이라고 한다네.

집에 있는 재료와 소면으로 분팃느엉 풍의 비빔국수를 만든다.

​

달군 팬에 기름 살짝 두르고, 다져둔 당근과 샐러리(잎과 줄기 섞어서)를 볶는다. 볶을 때 소금 조금 넣는다.

볶은 야채는 옆에 잠깐 덜어놓고, 냉동 대패 앞다리살을 바짝 굽는다. 고기도 구울 때 소금 약간 친다.

그리고 소면은 봉지에 써있는 가이드대로, 1인분의 양(적당히 내가 먹을 양)을 끓는 물에 3분 30초 더 삶고 건져 찬물에 헹궈 바락바락 씻고 물기를 뺀다.

소면 위에 야채볶은 것과 구운 고기 올리면 끝.

여기 육수를 부어서 물국수로 먹어도 괜찮은데, 고민하다가 양념장 만든다.

샐러리는 무조건 맵고 짠 것보다는 약간 단 것도 잘 어울린다.

고추장 한 숟갈 정도, 메이플시럽 한 숟갈 정도, 그리고 식초는 반 숟갈 정도에다가 물 두 숟갈 정도 넣어 섞는다. 맛 보고 기호에 맞게 양념장은 조절하면 된다.

이 양념장 촤륵 뿌려서 잘 비벼서 먹으면 된다. 고수나 공심채가 아닌 샐러리가, 그리고 느억맘 피쉬소스가 아닌 내맘대로 양념장, 쌀국수 대신 소면인데 정말 베트남 쌀국수 느낌. 새콤달콤매콤하고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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