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게 좋다는 말을 안 한지 꽤 됐다. 눈 오는 걸 좋아한다고 하면 아직 어리다는 얘기를 들을 때가 많았다. . 눈을 좋아하다니 어리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보다, 나에 대해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다.
눈오는 걸 좋아한다. 눈을 보는 것도, 맞는 것도 싫어하지 않는다. 눈 오는 소리(침묵), 그리고 그 색도 빛도 좋다. 까만 밤에 오는 눈도, 가로등 불빛 아래로 떨어지는 눈도, 하얀 낮에 떨어지는 눈도 좋다. 눈을 더럽히고 눈에 위험해지는 건 다 사람때문이다.
눈은 사실, 오지 않는다. 내린다.
눈은 의도가 없다. 그 의도없음과 무심함이 난 좋다.
눈송이가 막 떨어진다. 긋듯이 눈이 내린다.
조용히 떨어지거나 추적추적 내려앉았다는 기억인 한국에서의 눈과 덜리 뉴욕의 눈은 비처럼 긋는다. 그리고 소매에 떨어진 눈을 받으면 염화칼슘마냥 하얀 알갱이다. 어떤 핵이 공기 중의 습기와 찬기와 더러움을 긁어모아 있는 힘껏 나를 향해 힘껏 돌진한 느낌이다. 뜨겁고 안타깝다.
꼭 그 눈을 맞다 늦어진 뒤 돌아와서일까, 강 건너 이곳의 눈발은 희한하게 좀 다르다. 원래 이리 다른 걸까 알려면 쉽게 알 수 있을 테지만, 궁금하지 않다. 나는 벌써 추적추적한 한국의 눈이 그립다. 돌격하는 혜성의 핵 같은 그 눈을 맞고 도 별로 젖지 않은 내가 미안해서, 이 눈을 맞고 나면 뱃속 어디가 좀 아프다.
어제 눈이 오는 걸 보기 전에 <돈 룩 업>을 떠올렸다. 지구가 결국 끝나버리고 말 것 같다는 감각. 그 감각을 떠올리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정치에 관심이 전혀 없지 않은 편이라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감각을 떠올리는 주된 이유는 오롯이 자연이고, 내 자신의 몸이다. 작은 혜성같은 뉴욕의 눈알갱이가 무수히 꽂혀 결국은 멸망하게 될까. 지금의 껍질과 속을 모두 태워버리고 나는 새로운 모습으로 봄의 서울에 내리고 싶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