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존재라서 더 잘 보살펴줘야한다, 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흔한 말이라서기보다 단순히 약하니까 잘해줘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잘 보살펴준다, 그러니까 잘해줘야한다는 말이 괴롭거나 아프게 하지 않는 것 이상을 의미하기 때문에 부족하다.
마음대로 움직이거나(외출이나 이동),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 반려동물은 살기 위해 필수적인 움직임과 먹는 것을 사람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물론 먹기 싫은 것은 먹지 않기도 하고, 지나치게 많이 먹기도 하지만, 일단 먹을 것을 사람이 제공하지 않으면 먹을 수가 없다. 또, 살고 있는 환경도 사람이 제한하고 있다. 일차적으로 살아남고, 그 다음으로 건강하게 사는 것을 사람이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사람 아기와 사실 마찬가지다.
사람 아기의 경우 점점 자라나면서 능력이 많아지고, 보호자(주로 부모)가 움직임과 먹는 것을 제공하거나 관리하지 않아도 스스로 해결하고 살아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반려동물의 경우 거의 영원히 이것이 불가능하다. 아무리 덩치가 커진다 하더라도, 이 세상과 환경은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하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사람의 아기는 사람에게서 태어난다. 즉, 성인인 사람이 원하거나, 의도하거나 또는 그렇지 않더라도, 사람이 사는 세상에 낳는다. 그런데 반려동물들은 그렇지가 않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태어난 것이 아닌데 사람이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다. 그러니까 더욱 책임을 져야한다. 원래 살던 세상과 똑같이는 못하더라도(그럼 돌려보내주거나 이 세상을 원래로 돌려놔야지) 그들이 살아남고, 또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한다. 그게 책임이다.
여기에 하나 더해 반려동물을 돌보는 사람 보호자는 반려동물을 선택한다는 사실이 있다. 마치 부모가 아이를 낳는 것을 선택했듯, 사람은 반려동물을 선택하고, 이 과정에서 사람은 많은, 이라고 하기에도 부적절한, 온전하고 독점적인 선택권과 힘을 가진다. 사람 아이조차 성장하면서 '부모(와 원가족)는 내가 선택할 수 없었음'으로 인해 많은 좋고/나쁜 일들을 겪게 되고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임을 모두가 알고 있는데, 반려동물은 어떨까. 그들은 선택당했고, 어찌보면 데려와진 것이다. 보호라는 말도 명목이라는 걸 인정해야한다.
이런 사실들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단순히 반려동물이 사람보다 작고, 말도 못하는, 약한 존재라서 보살펴줘야한다, 라는 말이 얼마나 부족한지 느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