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서 하는 이벤트로 연극 <과부들>의 초대권을 받게 됐다.
종강하고 집에 왔는데, 마침 오빠도 시험 전 마지막 주말이라 집에 온다고 해서 오빠랑 보러가게 됐다.:)
대학로에서 소극장 공연은 몇 번 보러 간 적이 있지만, 아르코예술극장에 들어가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대극장! 규모도 크고 뭔가 화려하지도 않은데 깔끔하고 아늑한 분위기여서 마음이 편해졌다 :)
자리도 R석으로 앞에서 둘째줄에서 봤다 ㅋㅋ 처음 보는 제대로 된 연극 치고는 너무 좋았던 데다 오빠랑 오랜만에 봐서 더 좋았다:)
앞 얘긴 여기까지만 하고!
연극 <과부들>은 남자들이 모두 실종되어버린 어떤 마을의 이야기다.
평화롭게 잘 살던 마을이었는데 어떤 부자 지주가 그 마을의 땅을 자기 소유로 만들면서 사람들을 내쫓아버리고,
지각있는 남자들이 그 지주에게서 자신들의 땅을 되찾으려하다가 모두 잡혀가게 된 것이다.
잡혀간 남자들은 모두 행방불명되고 다신 마을로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
마을에 남은 여자들은 이 연극의 부제처럼 '기다리는 여인들'이다. 떠나버린 그들의 남편, 아들, 아버지를 기다린다.
하지만, 사실 그들 중 정말로 '기다리는 사람'은 소피아 한 사람 뿐이다.
나머지 여자들은 예전과 다름없이 평범한 삶을 계속 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말처럼 그들이 잊은 건 아니다. 다만, 그들은 외면하고 싶은 것이다. 마주할 수 있을만 한 용기를 내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마을에 새로운 대위가 온 뒤 그들에게 '얌전히 지내면 남자들을 돌려보내주겠다'고 하자
그들을 자극하고 있다며 소피아에게 마을의 다른 여자-소피아의 친구인 다른 할머니-가
"남편이 돌아왔을 때, 우리는 밭에 나가 일을 하고 있거나, 시장에 나가있는 게 나아!"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다.
남자들이 돌아왔을 때, 소피아처럼 모두가 자신들을 기다리기'만'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경우와 소피아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처럼 자신들이 없어도 자신들이 있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삶을 유지하고 지내는 모습을 보았을 경우에 정말, 무슨, 차이가 있는걸까?
사실 두 경우가, 나는,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소피아와 나머지 여자들 모두 다 마음속에 그들이 잃어버린 그들의 남자들을 잊지 않고 기다리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차이는 단지, 소피아의 경우 '자신의 삶'이란 것은 애초에 욕망은 커녕 마음에 두고 있지를 않았고, 그녀가 잃어버린 아버지와 남편과 아들을 다시 되찾는 것-그 시신이라도-이 그녀에게 지금 가장, 그리고 유일하게 중요한 일이고 해야 할 일인 것이고, 다른 여자들의 경우, 그들이 잃어버린 남자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 '역시'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일 뿐이다.
사실 속으로는 모두가 그 시신이 자신이 잃어버린 그 남자라고 생각하고 싶어했던, 시신을 대하는 여자들의 태도에서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 누구도 '답이 없는 상황'. '해결되지 않은 상황'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인 거라고.
이 세상에 끝맺음이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서 끝맺음이 나지 않은 것은, 끝맺음을 '해야'하지만, 이 연극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이 상황에 대해 어떤 방법으로도 '끝맺음'이란 것을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애초에 이 '끝맺음이 나지 않은 상황'자체가 없는 것처럼 외면하고 있는 것인 거라고.
그 상황 말고도 그들에겐 돌봐야 할, 해결해야 할,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해결하고 끝맺음을 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잘 알고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이 해결할 수 있는 그것들을 하려는 것이다.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고 싶지 않기 때문에.
해결하지 못하고 무력감을 느낀다면 살아있다고 느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고, 이것은 정말 두려운 상황일테니까.
극의 마지막에서 결국 여자들은 더 이상 얌전하게 굴지 않는다.
그들은 마음 속에 덮어놓고 있었던 생각을 드러내고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향해 행동한다.
결국 그들은 모두 죽게 되지만, 눈을 감고 살아가는 것보단 눈을 뜨고 죽음을 맞이하는 게 낫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백만년을 살아도 장님으로 산다면 그건 살아있는 게 아닌거다. 1초밖에 살지 못하더라도 눈을 뜨고 있어야 그것이 사는 것 아닌가.
이 연극에 등장하는 과부들은 그들이 '끝맺음'을 하지 못하는 데서 무력감을 느끼게 될까 봐 두려워했지만,
사실 살아있음이란 건 해결이 됐는가하는 "결과"가 아니라, 끝맺음을 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것이란 걸 마지막에 깨달은 것 같다.
연극 자체는 배우들의 연기력이나 표현력이 정말 너무 뛰어났던 것 같다.
극이 끝난 뒤 무대인사를 나왔을 때 아직도 너무 몰입해서 표정이 너무너무 심각한 것이 멋져보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내용과는 상관 없는 얘기지만, 극 중에서 강물을 따라 시신이 떠내려오는 것을 표현하는 방식도 참 마음에 들었다고 꼭 말하고 싶다.
(그리고, 소피아의 손자 알렉세이 역할을 맡은 꼬마가 너무 귀여웠다는 여담. :)
하지만 극 자체의 길이도 너무 길기도 했고, 극의 배경이 외국-남미-이다보니 등장인물들의 이름이나 지명 같은 것들을 쉽게 알아듣기가 힘들어서 관객들의 집중도를 100%끌어내지 못했던 것 같다.
인터미션을 전후해서 여인들이 함께 노래부르는 장면에서 다소 지루함이 느껴졌고,
내용과 극의 성격(장르)때문에 잘 집중하지 않으면 스토리 자체를 이해하지 못 할 수도 있을 것 같았기에, 이 점, 너무 아쉬웠다. (심지어 내 왼쪽에 앉으신 아주머니는 막 조셨다... ㅠ)
연극 본 지 2주 가까이 지난 뒤에 리뷰를 쓰다니 나도 너무 게으르다. 기억이 완전히 나지 않으니 글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다 보니 그쪽으로 자꾸만 생각이 가는 게 쓰면서도 쓰고 나서 읽으면서도 자꾸 느껴진다.
에휴 그래도 뭐 어쩌겠어 이젠 부지런하게 남기고 미루지 않으면 되는거지! 하고 생각하고 이대로 저장할란다, 에몰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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