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시는 신지스튜디오클럽 온라인홍보단으로 선정되어서 무료로 관람하고 왔습니다~!]
세종문화회관 1층 전시실에서 열린 'Sight Unseen' (보이지 않는 이들의 시각)전. - 시각장애를 가진 사진작가들의 사진전이다. 사진이라고 하는 것은 사물에 맺히고 반사되는 '빛'을 잡아낸 결과물인데, 빛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이 사진을 찍은 것이라니 대체 어떤 식으로 어떻게 사진을 찍은것일까 흥미로웠고 궁금했다. 내부가 사진 촬영이 불가능해서 여러모로 참 아쉽다.
입구의 검은색 장막을 걷고 들어가니 내부에도 조명을 최소한으로 켜 놓아 '앗, 어둡다'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평범한 일상을 촬영한 듯한 흑백사진들. 특별하고 대단한 장면도 어떤 기법이 사용된 것은 아니었지만, 사진을 처음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어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게 한 것은 바로 사진 위에 인쇄된 점자였다.
사진 위의 피사체들을 따라 가로 또는 세로방향으로 배열된 점자들.
처음에는 사진의 제목인 줄 알았는데, 그것은 사진작가가 사진을 촬영하는 순간 느꼈던 감정, 생각들, 들렸던 주변의 소리나 냄새 같은 것들을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사진을 찍는 사람 뿐 아니라, 보는 사람의 경우까지 배려한 것이다. 사진을 보게 될 시각장애인들 역시 사진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말이다.
작가 중 한 명이었던 존 헐은 자신의 시각장애를 'gift of blindness'라고 표현했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에 절망하고 그것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빛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의 시각과 그로 인해 비장애인들과 다르게 보이는 시야를 하나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섹션에 있던 사진들 중 작가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도 몇 장 있었는데, 그 모습이 정말 자연스럽고 편안해보였고, 얼굴 표정도 아무 꾸밈없이 솔직한 웃음을 짓고 있어서 뭔가 반성하는 마음이 들게까지 했다.
(우리는 눈으로 모든 것을 본다고 생각하면서, 정작 꼭 봐야할 것은 보지 않고 눈을 감는 건 아닐까? 이들이 시력이 완전하지 않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그들이 더 진실된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두려운 사실을 외면하고 싶어하고 있는 건 아닐까?)
emotional equilibruim between invisible and tangible이라는 제목의 사진도, 차가워보이는 해변가가 배경임에도 껴안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참 따뜻해보여서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Duane Michals의 말도 기억에 남는데, '외적으로 나타내질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nothing is what it appears to be)'. 시각장애가 있는 그들이라고 해서 그들이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
우리는 우리가 '보인다'는 것에 익숙해져 있을 뿐, 그들에겐 그들만의 시야가 더 익숙하고, 정상적인 세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장애인들이 사진을 찍는 것은 눈으로 빛을 받아들여 어떤 장면을 보고, 어떤 빛의 순간을 정지된 한 장의 화면으로 기록하기 위해일 것이다.
이와 달리, 이들 시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것은, (1) 빛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에서 보이는 장면-우리가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그것-을 보고, (2) 눈에 보인 '그것'을 바탕으로 머릿속에서 상상을 더해 새로운 장면을 '창조'해내고, (3) 카메라라는 도구를 이용해 시력이 있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장면을 촬영하여 비교 혹은, 머릿속에서 창조해낸 장면과 '조합'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시력이 완전한 사람들의 사진이 진실이고 현실이라고 말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것과 관련해 영국의 terence donovan이 했던 말이 마음에 들었는데,"the real skill of photography is organized visual lying". A convincing lie takes practice. 사진이라는 것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같다. 결국은 사진 자체도 하나의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누구나 자신이 보는 것을 믿을 권리는 있으니까. 그리고, 그게 누가 됐던, 어떤 장면이건 누군가의 눈에 비친 모든 장면들 하나하나가 다 사실인 것은 맞으니까.
일부 작가들은 완전히 시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잔존시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브루스 홀도 그런 작가 중 하나였는데, 그는 엄청난 고화질(400만화소인가..? ㅠㅠ 기억이 잘 안난다 ㅠ ㅋㅋ) LCD화면을 통해 7.6cm정도 거리까지만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는 '나는 카메라를 필요로합니다.'라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서 카메라라는 물건은 단순한 놀이를 위한 장난감이나 어떤 예술을 위한 도구 같은 것으로서, '있으면 더 좋은 어떤 것'이 아니라, '없으면 안 되는' 일상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필수적인 존재라는 거다.
브루스 홀은 두 아들이 있는데, 두 아들이 다 자폐증이 있다고 한다. 그의 사진은 전반적으로 색감이 강하고, 밝았는데, 아들들의 사진에 물과 빛이 쏟아지는 장면이 많았다. Bath Time이라는 사진이 기억에 남는다. 환하게 웃는 아들의 얼굴과, 흩뿌려지는 물세례가 찍힌 것이었다. 물방울 방울의 모양이 동글동글하고 부드러워보이면서, 그 틈새로 아들의 미소가 아주 선명하게 보여서 사진을 볼 때 너무 기분이 좋았다.
전시장의 마지막에서 필름이 상영되고 있었는데, 거기서 브루스 홀이 말하길, 시력이 거의 없다는 것을 숨기고 스킨스쿠버다이빙 강습을 받고 자격증까지 땄다고 한다.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그것을 어떻게 이용해보려하거나 자신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스스로 자신감을 가지고 남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태도로 하고 싶은 것을 해보았던. 그리고 이루어낸 그가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전시된 사진들 중 그가 스킨스쿠버다이빙을 하면서 물 속에서 찍은 것들도 있었다.)
직접 손으로 사진을 체험해보는 코너도 재밌었다. 사진 속 사물들의 윤곽선을 볼록한 판화형태로 표현해서 손의 촉감을 이용해 사진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는데, 안대를 쓰고 만져봐도 상상하기가 참 어려웠다. 촉각을 사용하는 데 익숙해진 그들이라면 우리와 얼만큼이나 다르게 느낄지 궁금해졌다.
베니스 산타 말리아 델라 성당을 찍은 콜라주 사진도 굉장히 재밌었는데, 그 사진은 눈이 보이지 않는 작가가 사진기로 사물의 특정 부분부분들을 찍고, 어느 부분이 촬영된 것인지는 들어서 아는 상태에서 '어느 부분의 사진'이라는 정보만을 가지고, 위치를 조합하여 만든 작품이라고 했다. ㅎㅎ 정말 재밌는 방법이지 않은가?
전시의 제일 마지막부분에 있던 Kurt Weston의 사진은 얼굴의 측면 사진들이었는데, 같은 사람의 사진을 다른 표정이나 약간 다른 각도로 찍고 그 사진을 작가가 봤을 때 느낀 것을 제목으로 단 것 같았다.(wiser than real같은 제목!). 그의 사진들은 전부 다 '얼굴 한 장으로 하는 얘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Do you see the big E?라는 작품은 그가 되게 두꺼운 돋보기 안경같은 것을 쓴 모습이었는데, 안경에 비친 빛이 E자 모양처럼 보였다. 그의 눈에는 그런 식으로 보이는데, 그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겐 그 E자 모양의 빛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은가? 다른 시각, 다른 시야에 대해 한 마디로 얘기하는 사진이었다.
그런데, 사진을 들여다보니 뭔가 특이했다. 얼굴의 특정 부분-예를 들면 광대라던가 턱의 한 점이라던가-과 손가락이 함께 등장한 경우 손가락 끝의 한 점 같은 곳만 선명한 주름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치 "눌린 얼굴"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위에서 얘기한 마지막 코너의 필름에서 보니 정말 수평스캐너에 얼굴을 대고 스캔한 사진이었어서 신기했다 :)
전시장에는 세 개의 글이 있었는데. 번역문이 완전 엉망이어서 이해가 아니라 읽기도 너무 힘들었다.. ㅠ_ㅠ 정말 좋은 전시였는데, 설명을 잘 해두었으면 더 좋았을걸.. 하는 너무나도 큰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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