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읽고 나니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란 제목이 이상하다. 왜 별을 보지 않지. 결국 이 책에서 심채경 박사님은 자신이 별을 보는 얘기를 했던 거 아닌가. '저는 별을 보지 않아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별"과 실제로 제가 보는 "별"은 다른 겁니다.'라고 열심히 몇 백 쪽에 걸쳐 말해줬는데,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럼 박사님은 별을 보시는 거지요? 라고 귀머거리 같은 소릴 하고 있는 건가.
대학원생일 때 끝없이 되뇌었던 생각이 있다.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진짜 미친 과학자던지 아무 생각도 없는 바보던지 둘 중 하나여야 해.' 졸업과 동시에 한동안 잊고 지냈던 이 말은 최근 다시 마음 속에서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물론 이젠 과학자가 아니니, "미친 과학자"라는 표현은 다른 걸로 바꿔야겠지만. 아무튼. 이 말을 다시 떠올려보면, 심채경 박사는 내가 말하던 "미친 과학자"였을까? 혹은 "아무 생각도 없는 바보"였을까. 그는 사실 그 둘 다임이 틀림없다. 그 둘은 긴 스펙트럼의 양 끝에 위치해있지만, 그 긴 스펙트럼은 사실 끝이 이어진 원형의 띠였던 거다. 심채경 박사의 글을 읽으면 그저 아 이 분이 이걸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어렵고 멋진 일이 어딨을까.
자신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 좋아하는 일을 잘 하기까지 하면 행운이다. 많은 사람이 가능한 빨리 좋아하는 것을 찾으려고 애쓴다. 그런데 왜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별로 없을까. 좋아하는 것을 '하는' 어른은 물론 좋아하는 것을 '아는' 어른도 별로 없어 보인다. 이들은 좋아하는 것 대신 좋아하는 이유를 찾았던 게 아닐까. 무언가를 좋아하는 데 있어 이유를 찾는 사람은 오히려 불행하다. 좋아하고 싶으면 그냥 좋아하면 된다. 이유는 필요 없다. 좋아하는 마음은 애써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언제나 거기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존재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 '어른이 되면 뭔가 대단하고 새로운 걸 하게 될 줄 알았는데, 늘 해오던 걸 좀 더 본격적으로 하게 되는 것 뿐이었다'는 얘기를 봤다. 이렇게 맞는 말이 있나. 이유를 생각 않고 하던 일, 그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인지 모른다.
'제가 보는 건 별이 아닌데요,'하는 심채경박사님처럼,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삶의 모든 순간이 고민의 연속이고, 목표가 없으면 무엇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나는 좋아하는 걸 아직 못 찾은 걸까. 아니면 정말 더 좋아하기 위한 마음에서 그러는 것일까. 이 고민조차 사실은 무용한 것 같지만, 오늘도 나는 좋아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 좋아하는 마음을 백 번은 들여다본다. 하도 의심하고 들여다봐서 좋아하는 마음이 더 깊은 곳으로 숨어버리더라도 괜찮다. 어차피 거기에 있는 건 확실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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