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때 일종의 독서모임을 했는데, 그 때 처음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 글을 서로 같이 읽고 얘기하는 경험을 했다. 어릴 때부터 책은 꽤 많이 읽었던 편이고, 독후감도 종종이지만 써왔는데, 내가 좋은 책을 잘 읽고 있는 건지, 또 독후감을 잘 쓰고 있는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에서는 독후감 쓰는 것이 일기와 함께 주요한 과제였는데, 1학년 때 우리 반에 '정미'라는 이름의 친구가 독후감을 너무 잘 써서 선생님이 항상 칭찬해주셨던 게 기억난다. 그 친구처럼 독후감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쓴 독후감은 대체로 글의 줄거리를 요약한 거였다. 하지만 정미의 글은 그의 감상, 느낌, 책을 읽고 떠올린 자신의 경험같은 것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런 내용만으로 독후감 노트 한 바닥이 가득찼다(게다가 그는 글씨체까지 크고 보기 좋았다). 나도 그같은 독후감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거의 열망에 가까웠지만, 정작 나는 그런 독후감을 거의 쓰지 못했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몰랐다. 많이는 읽었지만, 좋은 책이 어떤 책인지는 알지 못했고 읽고 난 책에 대해서도 왜 그 책이 좋았는지(혹은 싫었는지)를 생각해본 적도 별로 없다.
책을 읽고 난 뒤에 깊이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걸 글로 쓰는 걸 처음 한 게 그 모임에서였다. 모임을 이끌었던 언니가 있었는데, 그 언니는 '독후감과 서평은 다른 것이다'는 말을 정말 많이 했다. 그 말이 나는 조금 두렵기도 했던 것 같다. 내가 쓴 글이 '독후감'으로 분류되는 일은 다소 부끄럽기도 하고, 치욕스럽기도 한 일이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평가'한다는 것은 좋은 점이나 나의 단순한 감상을 말하기보다 고쳐야 할 점을 찾아 지적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온 것 같다. 그래서인지 서평이란 글을 읽고 난 뒤 내 감상을 단순히 글로 정리해서 쓰는 게 아니라 글이 어떻게 쓰였는지, 구조와 문장, 단어같은 것들을 평가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나 스스로 잘 쓴 글이 무엇인지, 글과 문장의 구조는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와 같은 '서평'은 내가 쓸 수 없는 무엇일 뿐이었다.
책을 읽을 때 날개와 표지에 있는 글까지 샅샅이 읽는 편이다. 서문이나 평론, 옮긴이의 말 같은 것이 많은 책에 붙어있는데, 말 그대로 그 책에 실린 글에 대한 평가다. 내가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런 글은 정말 어렵고 재미도 없다. 난 아무래도 그런 글은 쓸 수 없을 거라고 매번 생각한다(쓰고 싶지도 않다). 서평이란 어떤 것일까, 라는 질문을 가지고 이 책 <서평의 언어>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메리케이 윌머스의 글은 내가 이전에 생각해오던 '서평'이 아니었다. 메리케이 윌머스는 어떤 책이나 글 하나에 대해서 논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 글을 읽고 생각할 수 있는 사회상, 그리고 자신의 의견을 섞어서 하나의 글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온전히 자기 생각만을 쓴 건 아니다. 특징적인 것은 서평의 대상이 된 글을 직접 인용하면서 자신의 글을 채워나간다는 점인데 그게 매우 자연스럽다(아, 이게 바로 서평-Book Review이라는 거구나!).
항상 글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 생각하는 것인데, 배경지식에 따라 글을 쓸 때도, 읽고 이해할 때도 차이가 엄청 커진다. 글을 쓸 때는 아는 게 많아야 표현도 풍부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당연하게 드는데 반대로 읽는 사람 입장에서도 쓴 사람이 하고 있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배경지식이 풍부해야 한다. 그리고, 글을 쓴 사람의 주장과 의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렇구나~ 하지 않기 위해서도 경험이 다양해야 한다. 메리케이 윌머스의 글은 단순히 작품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저자와 주변 인물들에 대한 평가를 많이 담고 있는데, 그 사람들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으니 풍부하게 읽히지 않아 좀 아쉽고 힘들었다. 예를 들어, 조앤 디디온의 <마술적 사유의 한 해>와 <푸른 밤>에 대한 서평을 보면서는, 지난 해 넷플릭스에서 본 다큐멘터리 <조앤 디디온의 초상>이 떠올라서 풍부하게 읽을 수 있었지만 진 리스에 대한 글에서는 그녀에 대해 아는 바가 전무해서 그만큼 풍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진 리스와 그녀의 작품이 엄청 궁금해지긴 했지만(아는 바가 없어도 글이 정말 재밌게 읽히긴 했다는 뜻이다), 이 리뷰를 읽기 전에 이미 내가 아는 바가 있었다면 더 재미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메리케이 윌머스가 아는 것도 많고 말도 재치있어 꼭 만나 대화하고 싶지만, 막상 현실이 된다면 내 무지와 부족한 경험 때문에 그가 나와 대화하기를 싫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그러진 않겠지......).
경험과 아는 바가 풍부하다는 점도 멋지지만, 메리케이 윌머스의 말투도 멋지다. 솔직하고, 거침없다. 함부로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비웃지 않지만, 할 말은 다 한다. 에둘러 누군가를 칭찬하거나 샌드위치 방식으로 내 이미지를 신경쓰지도 않는다. 이런 게 바로 잘 쓴 글이겠지, 생각하며 읽었다배웠다.
시간순으로 글이 담겨있는 것 같은데, 80년대에 쓰인 글보다 2010년대에 쓰인 글이 왠지 조금 더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 다른 글도 다 좋았지만, 피터 캠벨에 대한 글은 특히 굉장히 좋았다. 애정이 듬뿍 담겨있다는 느낌이 있었고, 피터 캠벨이라는 사람도 메리케이 윌머스만큼이나 멋진 사람 같았다(여기서도 '멋진애 옆에 멋진애'). 이 책에 담긴 윌머스의 글, 그리고 피터 캠벨의 그림은 한 번도 보진 못했지만, 윌머스의 글에서 묘사된 그의 그림과 그의 모습을 읽고 이런 생각을 더욱 하게 된다. 좋은 글/그림은 많은 내용을 담았느냐보다 그것을 쓴/그린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담겨있느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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