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런,온>에 나왔던 걸까, 띠지 이미지가 드라마 장면이다. 위로를 주는 에세이로 10만부 이상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직접적으로 당신을 위로하겠는 "참 애썼다, 그것으로 되었다"는 제목이, 참 잘 지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목차를 펼치는 순간 깜짝 놀라게 된다. 글씨가 너무 작고 흐리다(이게 목차인 건가? 이걸 보라고 쓴 건가? 배경으로 넣은 것인가?). 타이포로 시작하고 대변되는 편집이 전체적으로 깔끔하지 못하다. 편견을 가지고 싶지 않지만, 국내 자비출판 서적을 보는 것 같다. 뒷표지를 얼른 넘겨보니 발행인이 저자다. '아, 역시나'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하지만 뒤에 찾아보니 부크럼 출판은 생각보다 매우 많은 책을 벌써 펴냈다(자비출판은 아니라는 건데). 위아래의 여백도 달라지고, 문단 사이 간격도 갑자기 벌어지는 곳이 몇 번씩이나 보인다. 뒤로 갈수록 책장의 앞뒷면으로 다음 장의 줄이 어긋나 비춰보이는 것까지 거슬리게 된다. 편집이야 뭐, 내용만 좋으면 되지. 하고 넘어가보자-니 편집만이 문제는 아니다. 저자가 대표여서인 걸까, 문장구조와 맞춤법에 잘못된 부분은 왜이리 많이 보이는 것일지. 사실 첫장을 넘기면서 글의 "공감을 더욱 끌어내기 위해 화자와 문체가 내용에 따라 바뀐"다는 '안내 문구'를 봤을 때부터 내려놓고 시작하긴 했지만.
그래도 다분히 짧고 우울한 감상에 젖어있기만 한 어떤 책들과는 다르다. 단순히 '좋아보이는' 문구들을 늘어놓기만 한 것도 아니다. 이게 정말 저자의 경험이고 에세이일지는 잘 모르겠지만("화자와 문체가 내용에 따라 바뀌"고 있으므로) 가족의 얘기, 지나간 연인(모두 가명으로 보이는)과의 얘기를 하면서 자신과 그 상황 속 상대방에 대해 담담하게 위로를 건넨다. 정말로 위로가 되는 책임에는 분명하다. 감정만 쏟아내거나 화자 자신을 위로하기에 바쁜 글이 아니라 정말로 화자(또는 저자)가 대화하는 상대방을 위로하는 말이고 글이었다. 무엇보다 한 편의 글 안에 완결된 위로가 담겨있는 느낌이 들었다. 위로를 하려고 시작한 건 맞는데 얼버무리듯 끝나거나 자기 얘기를 하며 마무리하는 게 아니라, 정말 끝까지 상대를 위로한다(아무리 맞춤법이 틀려도 진심으로 나-독자에게 눈을 맞추고 끝까지 위로를 마무리하려는 느낌이 들었다).
좋은 글을 쓰려면 덜어내야 한다고 배웠다. 적당한 선에서 멈추고,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보다 조금 더 덜어내고 지워야 좋은 글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책은 그것에 반대되어 내 취향엔 거슬렸던 것 같다. 정말 위로는 되었지만, 친구가 어떻게든 모든 걸 끌어모아 나를 위로해주려고 이 말 저 말을 다 끌어대며 다독여주는 느낌이었다. 형용사와 부사를 여러 개 끌어쓰고, 여러 개의 반점을 찍고(위치라도 잘 잡아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과거와 현재, 미래 시제를 한 번에 다 말한다. 뭐가 그리 정하기 힘들었을까?
하지만, 앞에서도 여러 번 말했듯 분명 위로가 되는 책이었다. 이 말 저 말 다 끌어내어 위로해주는 친구의 말이 어찌 마음에 와닿지 않을까. 아무리 그게 횡설수설이고 그날 자기 전에 생각해봐도 무슨 말을 했는지 하나도 생각이 안 나더라도, 그런 친구의 말을 듣고 나면 내 마음은 이미 차분하게 가라앉아있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은, 내가 구입하거나 직접 빌린 것이 아니라 엄마가 나에게 위로를 주고 싶다고 선물로 주셨다. 정말 선물하기 좋은 책이다. 위로를 전해주고 싶을 때, 힘내라고 응원해주고 싶을 떄, 정말 '다 괜찮다, 애썼다, 그걸로 충분하다', "그것으로 되었다"고 말해주고 싶을 때 건네기에 너무나도 좋은 책이다. 그리고 선물할 책은 사실 소장용으로 완벽한 가치를 가질 필요는 없으니까. 그게 아니라면(정말 다 소장하고 꼼꼼히 읽으려고 한 것이라면) 이 책을 구매한 10만 명 넘는 독자군-구체적으로 말하진 않겠다만,은 맞춤법이나 문장, 구성이나 편집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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