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에 재학한 지 이번 학기로 5학기째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 동안 이 곳에서 살면서 느낀 것은, 이 곳에서의 시간은 너무나도 빠르면서 너무나도 느리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시간이 너무나도 밀도있다는 소리다.
개강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중간고사고 중간고사 지나고 나면 어느 새 또 기말고사다.
그 사이에 뭐 딱히 많이 놀지도 않고 뭐 그리 바쁜지도 모르겠는데, 시간은 참 금방 간다.
이렇게 금방금방 시간이 지나가고 방학을 맞이하는데, 빨리 지나간다고 느꼈지만 종강하고 나서 학기 초 얘기 하다보면
한참 전 얘기처럼만 느껴지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도 잘 나지 않아서
실제로 애들끼리 종강 즈음 되어 개강 초 때 얘기하면 정말로 일 년 전에 있었던 일로 착각하고 '작년에'라는 말을 많이 하게 된다.
우리학교 학생들이 또 늘상 말 끝마다 다는 소리는 '다른 학교도 그렇겠지만' 이라는 소리다.
다른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으니 함부로 말 할 순 없지만, 저 말 아래에 깔려있는 심리는 아무래도 이 곳 같진 않을 거라는 확신이다.
모르겠다, 3학년이지만 적어도 나는, 아직 이 곳. KAIST 바깥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
하지만, 2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동안 여기 KAIST에 있어온 사람 중 하나로서
올 해, 벌써 3달동안 떠나간 세 명의 학생들을 보며 도대체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가 무엇인지 내 생각을 말해보고자 한다.
내가 아는 선 상에서 최대한 솔직히 내 의견을 말하자면, 여기 KAIST에서의 삶은 실제로. 그리 녹록치 않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KAIST에 가면 학비를 안 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용돈을 받고 다니며
그만큼 잘 하는 애들이 간 곳이고,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대학은 대학일 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로 내가 입학하기 전에는 이랬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가 입학한 2009년 이후의 KAIST는 절대 이렇지 않다.
2008년부터 변경된 입시스타일로 인해 KAIST에 입학한 학생들 자체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전의 KAIST는 다른 대학들과 마찬가지로 지필고사와 학생부 성적 등을 반영하여 신입생을 선발했다.
하지만 2008년부터는 인성과 창의성 갖춘 인재를 뽑겠다는 말 아래 서류로 1차 선발을 거치지만, 1차 전형에서 선발된 학생들은
면접관과의 면접만을 통해 최종적으로 선발되게 되었다.
그리고, 2009년보다는 2010년 2010년보다는 2011년에 더 많은 자연계열 고등학교 이외 학교 출신 학생들이 선발되었다.
(여기서 말한 자연계열 고등학교는 주로 과학고등학교를 의미한다.)
나는 여기서 첫 번째 문제가 발생한다고 본다.
KAIST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반적인 대학이 아니다.
물론 내가 다른 학교들에 대해서 단정지어 말 할 수는 없겠지만, KAIST는 다른 몇 몇 대학과 더불어
이름 그대로 '과학기술원', 더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을 가르치고 또 그것을 배우는 곳이다.
그리고, 특별한 조기졸업 과정을 요구하지 않고도 고교 2년을 수료한 학생들을 받는 곳이며,
오히려 이 곳에 합격하면 고교과정을 2년만에 수료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곳이라는 점에서
더 높은 것들을 많이, 그리고 '속성'으로 배우는 것이 필요한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곳 KAIST 뿐만 아니라 어느 곳에서든 '가르침'이란 것은 그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능력있는 사람이 뛰어난 방법과 자료를 이용하여 가르침을 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라면 그 가르침은 아무 쓸모없는 시간낭비에 지나지 않게 된다.
물론 가르침을 받는 사람 역시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 가르침을 100% 이상으로 이해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야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하루 24시간이 아니라, 24시간 그 이상을 소모하며 노력을 하더라도 100%의 이해도 이루기 힘든 경우가 분명 존재한다.
나 역시 어릴 때부터 '영재'로 불리던 학생이 아니며, 단순히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일 뿐이었다.
따라서 뭐든지 열심히 하면 안 될 게 없다고 생각했고,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한 물리선생님께서 하신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 깨달으라'는 말을 죽도록 싫어했다.
하지만, 그 말은 현실이었다.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은 무언가를 배우는 데 있어서 뿐 아니라 인생을 사는 데 있어서 정말 중요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기에도 시간은 매우 모자라다.
그리고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그 분야에서 무한히 깊이 들어가는 데에만도 우리의 일생은 턱없이 짧다.
이 말이 절대 "넌 못해"로 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이 말은 "넌 못해" 가 아니라, "이게 네게 맞아"로 들려야 한다.
고등학교 때까지 배우는 것들은 정말 세상의 모든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공통적이고 기본적인 요소들이다.
그것들은 누가 할 수 있고 누구는 할 수 없다고 분류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대학에 입학한 후에 배우는 것들은 그렇지 않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 배우는 것들은 좀 더 세분화되고 그만큼 더 깊이있어지는 것들이며,
더 이상 기본적인 것이 아니라 전문적인 것들이다.
그 지식 자체를 배우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강의에서 얻은 것을 바탕으로
나 스스로가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방법, 그 방법을 찾는 능력을 배우는 것이 핵심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단순한 노력으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어떤 '능력'이 다소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노력으로 커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나면 그것은 '억지'의 상태가 되고 만다.
사실 현실에서 대다수가 자신의 능력을 완전히 파악해서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힘들어하고 삶에 완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있지만,
여기 KAIST는 그런 일반적인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다.
이 곳은 과학기술에 특화된 인재를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독려해주는 곳이며,
궁극적으로 '인류'를 위해 정말 '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곳이라고 적어도 나는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 곳에 온 학생들 중 (물론 학교에서는 그 가능성을 보고 뽑는다고 뽑았겠지만) 그 능력을 충분히 가지지 못한 사람
혹은 단기간에 잠재적인 자신의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학생들이 존재한 것이다.
물론 학생을 한 두 명 뽑는 것이 아닌 상황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문제는 그런 학생이 한 두 명 뽑힌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을 누구의 탓으로 돌려야 하나?
학교의 문제? 자신의 능력을 알지도 못하고 이 곳에 온 학생의 문제?
이것에 대해서는 내가 함부로 단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첫째, 이곳에 오는 학생들 대부분이 만으로 17~19세 사이의 학생들이라는 점에서 우린 너무 어리다.
자신의 가능성을 모두 발현하기에도, 자신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에도 너무 어리다.
둘째, 사람을 파악하는 것은 순간에 이룰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면접관들이 많이 준비하고, 인생 경험도 풍부한 분들이고, 여러면에서 뛰어나며,
최대한 총체적인 평가를 위해 다면적인 질문과 평가를 준비하고,
단순히 면접만 가지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서류를 가지고 평가를 함께 한다고 하지만
1개월 2개월 지나보면 달라지는 게 사람이고, 그냥 다닐 때와 함께 살 때 또 다른 게 사람인데, 얼마나 그 사람을 파악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이런 평가 방법은 비단 KAIST에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대학 입시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 방법 자체만 가지고 문제를 삼는 것 역시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평가 방법은 비단 KAIST에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방법 자체만 가지고 문제를 삼는 것 역시 절대 안된다.
따라서, 이 첫 번째 문제에 대해서는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해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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