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에 갔을 때, 매일 새벽 아버지와 차를 타고 반포에 있는 꽃 도매시장에 가는 젊은 꽃집 사장님의 얘기를 들었다. 어떤 말은 맞고, 어떤 말은 틀린데, 그보다 무얼 하고 사는 게, 그리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디를 바라보며 사는 게 맞는가, 조금 혼란스러운 시간이었다.
무엇이 부족했던 걸까, 그리고 무엇이 필요했던 걸까. 나는 뭘 원하는 걸까.
지금처럼 여기에 대한 답이 불투명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생각보다 좁고 편안한 세계에 살고 있었던지도 몰라.
새벽빛이 어슴푸레할 때 일어나 대충 눈곱만 떼고 밖에 나가 동네를 한 바퀴 가볍게 뛰고, 그때쯤 문을 열어 갓 구워져 나온 빵이 트레이 채로 식혀지길 기다리고 있는 동네 카페에 들어가 그날의 첫 커피를 마시고, 가게 사장님과는 안녕하세요, 보다 달라진 아침 공기나 온도, 하늘의 구름 모양 같은 걸 두고 계절이 변하는 걸 먼저 얘기하고. 한입 정도 남은 커피를 털어넣기 전 이제 겨우 한김 식은 빵 한 덩이를 집어 열 손가락으로 뜯어먹으며 가게를 나서.
집으로 들어가려는 길에, 길 하나만 건넘녀 꽃 도매시장이 있다는 걸 깨닫고 걸음의 속도를 늦춰.
밤 열 시가 겨우 지났는데도 여전히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도, 발걸음을 내딛지도 못하는 사람은 많고.
시간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은 그럴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계가 없는 세상의 사람들은... 안녕하신가영의 <10분이 늦어 이별하는 세상>이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생각보다 자주 오는 버스, 생각보다 금방 가는 거리라고 하지만 버스 한 대만 놓치면, 또 5분만 엘리베이터 안에서, 또 횡단보도 앞에서 3분만 늦춰져도 20분이 훌쩍 날아간다. 지각, 3분 차이로 늦음, 여기서 내려서 지하철얼 어서 잡아타야 할까 아니면 한 정거장을 버스로 더 가야할까- 그 차이는 고작해야 2-3분 정도일텐데. 고민해야 한다. 겁나 중요하다.
June 22, 2021 10:27 PM
단어 하나하나에 신경을 쓴느 사람. 인터넷에서, 티비에서 나오는 피씨함, 감수성 이런 설명을 낀 무언가에서 보고 듣고, 그래서 따라하는 게 아니라 진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여러 번 생각하고 고민하고 그래서 그걸 잘 담아내고 싶어서 단어 하나하나를 골라낸느 사람. 더 좋은 말이 없을까 항상 찾고 수집하는 사람.
어릴 때 거실 바닥에 신문을 펼쳐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다는 말이 아니다. 펼쳐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주욱 훑어내리다 마음에 드는, 눈이 가는 제목이 있으면 꼼꼼하게 다 읽었다. 옛날 신문-그래봤자 90년대 후반이지만-에는 한자도 종종 섞여있었고, 그 나이 아이가 읽기엔 쓰이는 단어 중에 새로운 것도 많았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엄마가 퇴근해서 집에 오길 기다렸다가 엄마한테 물어봤다. 엄마는 그런 데 바로 대답해주는 적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우리집 거실 티비장에는 커다란 표준국어대사전이 꽂혀있었다(나중에 엄마한테 물어봤더니 이 사전은 직접 구입한거라고 하셨다. 이런 대사전을 사서 거실에 티비와 나란히 놓는 집이라니.). 그 당시 사전을 구비해두는 게 유행이었는지 어쨌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런 게 있었다. 크고 멋있고 새거였다. 빳빳한 종이, 선명한 잉크색 그런 것들. 그래서 그 '책'이 나는 좋았다. 그랬다. 사전도 나한텐 그냥 책이었다.
June 22, 2021 11:34 PM (괄호는 added today. November 22, 2021 02:34PM 우연치곤 날짜와 분까지 같네.)
공기가 조금 선선해지자 사람들이 거의 사라져버렸다. 사람들은 밤공기를 즐기러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항상 A를 피해 B로 이동하는 것일 뿐 그 무엇도 즐겼던 적이 없었다/즐기는 것이 아니었다.
아빠는 울 것 같았다.
근느 아빠를 보며 생각했다. 이제서야, 아빠가 육십이 되어서야 나와 비슷한 모습을 가졌다는 걸 느끼네, 라고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보다 그때 내가 취한 행동이 맞았을까, 라고 이어 생각했다.
왜 내가 기대하는대로 되지 않아? 이렇게 생각하면 이렇게만 될 것 같은데 왜 그렇게 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고 그걸 글로 정리해서 보내면 그것이 어떤 면에서 더 우월하다고, 또는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감정적인 대치 상황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우아하고 아름답게 상황을 정리하고 내가 생각했던, 옳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뭐 그런 것.
하지만 핵심은 여기에 있었다.
지금 이대로가 가장 아름답다는 걸 깨닫고 인정하는 것. 학생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그렇게나 강조했던 말이었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내 생각은 별개이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다르게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느낀다.
september 24, 2020 10:40PM / May14, 2021 1:16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