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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번 국도 2025. 3. 13.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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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SCIENCE, but I like ARTS more, which don't have an answer.
anything can be accepted and not hardly requires explanations for any opinions. I prefer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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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게 좋다는 말을 안 한지 꽤 됐다. 눈 오는 걸 좋아한다고 하면 아직 어리다는 얘기를 들을 때가 많았다. 눈을 좋아하다니 어리구나 하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보다 나에 대해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다.

눈오는 걸 좋아한다. 눈을 보는 것도, 맞는 것도 싫어하지 않는다. 눈 오는 소리(침묵), 그리고 그 색도 빛도 좋다. 까만 밤에 오는 눈도, 가로등 불빛 아래로 떨어지는 눈도, 하얀 낮에 떨어지는 눈도 좋다. 눈을 더럽히고 눈에 위험해지는 건 다 사람의 일이다. 

눈은 사실 오지 않는다. 내린다.
눈은 의도가 없다. 그 의도없음과 무심함이 난 좋다.


눈송이가 막 떨어진다. 긋듯이 눈이 내린다.
조용히 떨어지거나 추적추적 내려앉았다는 기억인 한국에서의 눈과 달리 뉴욕의 눈은 비처럼 긋는다. 비처럼 긋는 눈을 소매에 받으면 이상하게 염화칼슘마냥 하얀 알갱이다. 어떤 핵이 공기 중의 습기와 찬기와 더러움을 긁어모아 있는 힘껏 나를 향해 돌진한 느낌이다. 그걸 보면 문득 뜨겁고 안타깝다. 돌격하는 혜성의 핵 같은 그 눈을 맞고도 별로 젖지 않은 내가 미안해서, 이 눈을 맞고 나면 뱃속 어디가 좀 아프다.

늘 눈이 좀 오고 난 뒤 늦은 시간에 돌아와서일까, 강 건너 이곳의 눈발은 희한하게 좀 다르다. 원래 이리 다른 걸까 알려면 쉽게 알 수 있을 테지만 궁금하지 않다. 나는 벌써 추적추적한 한국의 눈이 그립다.

어제 눈이 오는 걸 보기 전에 <돈 룩 업>을 떠올렸다. 지구가 결국 끝나버리고 말 것 같다는 감각. 그 감각을 떠올리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정치에 관심이 전혀 없지 않은 편이라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감각을 떠올리는 주된 이유는 세상이 아니다. 오롯이 자연이고, 내 몸이다. 작은 혜성같은 뉴욕의 눈알갱이가 무수히 꽂혀 내 몸은 결국은 멸망하게 될까. 지금의 껍질과 속을 모두 태워버리고 나는 새로운 모습으로 봄의 서울에 내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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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23 17:09

思번 국도 2025. 1. 24.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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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말은 쉽게 옮겨진다.

뒤에서든 앞에서든 속으로든 겉으로든, 누군가에 대해 나쁜 말을 하는 건 가능한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내가 오해하는 것일 수 있다, 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어떨 땐 속없는 사람이라고 싫어하기도 하지만, 내가 편안한 게 중요하니까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보자.

 

자꾸만 의도에 대해 생각하면 괜히 복잡해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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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노라]

敖번 국도/영화 2024. 12. 2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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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베이커는 매번 영화를 통해 이게 진짜 현실이야, 현실을 외면하고 싶을 때 영화를 보는 게 답은 아니지.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션 베이커가 보여주는 풍경은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아왔던 것과는 아주 다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나온 모텔, <아노라>의 '헤드쿼터스', 코니아일랜드, 라스베가스. 배경뿐 아니라 인물도 그렇다.
여기 내가 진짜 션베이커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기존의 모습을 전혀 부정하거나 지우지 않으면서도 그와 반대되는-대체로 더럽거나 가난한 느낌을 아주 성공적으로 준다는 것이다. 생생한 색감과 구조의 배경과 대부분 금발 백인에 예쁜 옷을 입은 사람들. 분명 예쁘고 따뜻한 곳이고, 우리가 보는 주인공도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안 어울린다. 이런 느낌을 받는 데는 그들의 외모보다 그들에게 아무나 가까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처음엔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줄 알았는데 곧 투명인간 취급당하는 사람들. 나 좀 보라고, 내 말 좀 들으라고 발버둥치고 소리치기까지 해도 소용없는 사람들.

<아노라>의 코니아일랜드는 실제 장소가 아니라 션베이커가 창조해낸 곳 같다.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코니아일랜드는 이런 사람들의 배경일 뿐이다. 매서운 바람이 불어대는 밤, 택시비 몇 달러 아끼겟다고(물론 몇 달러는 아니겠지만 네 명이잖아!) 나무데크 위를 끊임없이 걸어가는 덩치큰 아저씨 셋과 예쁜 여자(네 사람이라고!). 정말 약에 취한 바보인건지, 깡패같은 애들한테 당하고 있는 약자인건지 모르겠는 사탕가게 주인 아저씨. 가판대 너머에서 맘대로 과자를 집어먹고 장사따위는 상관없다는 태도로 불량하게 서있는 애들. 코니아일랜드라면 <원더 휠>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에게 코니아일랜드는 이럴 곳이,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다닐 곳이 아니었다.
클럽 이름이 '헤드쿼터스'인 것도 재미있는데, 이런 클럽의 뒷방들이 결국 뉴욕을 좌지우지하는 헤드쿼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네 생각이고, 바람일 뿐'이었나보다. 싶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장소들은 다 머릿속에서 만들어졌을 뿐이라는 듯하다. 믿을 수 있는 건 땅에 디딘 두 발, 찬바람에 빨개진 두 뺨, 나와 너의 육체 뿐이다.

아노라는 반야를 사랑했을까? 그는 단순히 억만장자와 법률상이라도 결혼에 성공해서 인생역전을 하고자 했던 게 아니다. 그가 가장 바란 것은 자기 자신을 향한 '진짜 사랑'이다. 어떻게든 돈이나 더 받아내고 말 생각이었다면 아노라의 태도는 처음부터 많이 달랐어야 하고, 그럴 수 있었다. 아노라에게 가장 소중한 건 아노라, 예쁜 아노라, 사랑 받는 아노라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뜨끈한 심장. 무슨 일이 있어도 결국은 돌아올, 또는 그 자리에 있을 감정과 마음이다. 하지만 이 사단을 만들어내는 건 현실이다. 배경과 육체, 이 모든 물질적인 조건들 역시 곧 사라질 환상같지만, 사실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내 등 뒤에 붙어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노라의 행동은 너 정말 나 사랑해? 라는 질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육체를 매개로 사랑한 것은 아닌지, 이고르의 뺨을 때리며 물을 수도 있었을 질문이었다. 이고르가 아무리 착한 사람인 것처럼 그려져도, 그건 아노라가 생각하는 '사랑'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노라가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처럼 자기를 사랑해줄 수 있는지 묻는 행위이다. 그런 식으로밖에 질문을 던질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울고, 또 이고르의 대답이 자기가 원한 것이 아님을 느꼈기 때문에 울었다고 생각한다.

아노라의 눈물, 곧 사라져버리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그 눈물은 펑펑 내리는 하얀 눈에 가려 이고르밖엔 보지 못할 것이다. 그의 질문과 대답으로써의 눈물은 아노라의 예쁜 외모와 반야의 멋진 집이라는 보여지는 것 이면의 진실한 사랑, 순수한 마음을 다시 상기시킨다. 모든 고전 동화가 그래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더래요-라고 끝날 때는 배경의 전환을 동반한다. 더럽혀지고 상처받는 걸 피할 수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아서 더 괴롭고 슬픈 이 '사랑', 순수하고 진실된 마음같은 것들은, 결국 물질적인 조건을 필요로 한다는 걸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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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시간 반이라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질 정도로 굉장히 힘들었다. 적나라한 육체와 시뻘겋게 피가 쏟아지는 장면은 정말 보기가 힘들었다. 이걸 보고 집에 가서 잠을 잘 잘 수 있을까 물론 결국 잘 자긴 했지만, 그런 생각이 심각하게 들었다. 시계를 봤더니 겨우 한시간 반이 조금 안 지난 때였다. 이걸 한시간 넘게 더 봐야 한다는 생각보다, 그 모든 장면이 불필요하거나 과하다고 느껴지지가 않는다는 게 더 힘들었다. 영상의 클로즈업과 대비도 굉장히 심했는데, 그것 또한 역겹지 않고 조화로워서 더 괴로웠다. 이런 장면들을 볼만하게 만들어서,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요즘 사람들은 얼마나 잔인하고 자극적인 취향을 가진 것일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그런 취향들, 그 취향에 대한 사회의 강압이 바로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문제라는 사실이 떠오르는 순간 경악하게 됐다.

예외가 없는 교체의 시간. 당신은 하나라는 걸 잊지 말라는 말. 나에게서 태어난 더 나은 나역시 결국 라고 했지만, 어떻게 그게 같은 나라고 볼 수 있는 걸까. 게다가 새로이 태어난 가 기존의 나를 바라보는 방식은, 늙고 더러운 물건 그 이상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하고 충격적인 사실은, “더 나은 나가 기존의 나를 없어져야 할 무엇, 자신의 삶을 방해하는 어떤 존재로 여기게 된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가 아니고 날 때 부터였다는 것이다. 나 자신, 그러니까 엘리자베스 스파클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던 혐오와 부정이 물리적인 신체가 분리됨으로써 드디어 표현 가능하게 된 것뿐이다. 내 뇌와 심장, 신체가 하나로 이어져 있을 때는 아무리 밉고 싫어도 자기 자신을 부정하지도 파괴할 수도 없다. 하지만, 신체가 물리적으로 분리되어버리니 얼마든지 혐오할 수 있고 괴롭히고 무시할 수 있어졌다.

, 아니 엘리자베스는 자기 자신의 뭐가 그렇게 혐오스러웠던 걸까. 그녀는 여전히 예쁘고 멋진 몸매를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이고 멋진 배우다. 그 누구도 그녀가 아름답지 않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실은 스스로도 그걸 알고 있다. 서브스턴스에 전화해 교체를 그만두겠다는 전화를 하고 난 뒤 더 나은 나()’가 치워버렸던 자신의 사진을 다시 끌어내는 것도, 물론 지금 현재의 자신을 이전만큼 사랑하지는 못하지만 분명 자신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엇이 자꾸 그녀를 의심하게 하는가. 바로 쩝쩝거리면서 새우를 먹는 하비다. 오디션장의 면접관이고, 흰 머리의 주주들이고, 옆집 남자다. 엘리자베스는 한때 자신을 사랑하고 찬찬하던 그들의 눈으로 자신을 보지 않는 데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이 모든 남성성은 하비라는 모체에서 출아되어 나온 개체처럼 보인다. 우글거리는 바퀴벌레 떼 같다. 수가 엘리자베스가 구겨서 던져버렸던 신문에 실렸던 오디션을 보러 갔을 때 두 명의 면접관이 했던 말은 꽤 의미심장하다. 코가 있는 자리에 차라리 가슴이 있는 게 낫겠다, 라는 말. 코와 가슴-그러니까 유방은 무엇을 하는 존재이길래 그런 말을 한 것인가. 그들은 사실 자기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이다. 후에 그들이 말한 그대로가 눈앞에서 이루어질 때 그들은 눈앞에 보이는 것을 죽이고 제거하려 한다. 얼마나 어이가 없는가.

무엇이 더 나은 나일까?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더 낫다라는 말 자체를 정의할 수 없을 것 같다. 마지막 장면에서 엘리자베스 스파클의 얼굴은 자기 이름 위에서 사라진다. 결국 한 줌 액체로 변해버릴 것이 대체 어떤 의미가 있어서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나, 싶을 정도로 순식간이다. 청소차량에 의해서 단 한 순간에 멀끔하게 지워지고 말 어떤 존재가, 무엇이 어디에 붙었나에 따라 그렇게나 다르게 인식되어야 하는가, 어떻게 그게 가능한 것일까. 엘리자베스와 수와 엘리자수에게, 엘리자수가 등장한 수의 연말 공연장을 찾은 모든 관객과 우리 모두에게 여러 번 되물어야 할 것이다.

사실 엘리자수의 모습을 봤을 때, 그가 절대 연말 공연장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엘리자베스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도 결국 실패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엘리자수는 무대에 오른다. 그 위에서 자신의 기괴한 육체를 마주한 사람들에게 여러분, 저에요, 수이고 엘리자베스라고요라고 외친다. 이제서야 자기 자신은 하나이고 예전에 사람들이 사랑했던 대상 그 자체라는 것을 스스로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몬스테로 엘리자수가 되어서야 엘리자베스, 혹은 수는 자기 자신이 하나라는 걸 깨달은 듯 보인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아도, 내가 나를 사랑하면 된다고 누구나 쉽게 말한다. 그게 더 중요한 사실이라는 걸 모두 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눈은, 몸짓은, 벽 뒤에서 하는 말은 그러지 않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 엘리자베스와 수와 엘리자수를 죽인 자들에게 다시 묻고 싶다. “그 말이 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 강렬한 핑크, 노랑, 그리고 시뻘건 색이 반복되는 영화에서는 중간중간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흔들리는 팜트리가 등장한다. 화면 속 팜트리는 한 그루였다가 두 그루였다가 세 그루였다가, 또 다섯 그루가 된다. 나무의 수가 변하거나, 바람에 흔들리느냐 조용히 있느냐하는 것이 엘리자베스의 내면을 보여준다고 하는 레딧의 의견을 하나 봤는데, 그럴 수도 있겠고, 이게 알프스-마리타임(프랑스)에서 촬영된 것이라고 해서 캘리포니아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촬영한 것이라고도 하는데 그게 다였을까, 싶다. 마지막 장면에서 엘리자베스 스파클의 얼굴이 하늘을 바라보는데, 이렇게 아래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엘리자베스 스파클의 별모양 발판이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하는 의견도 있었다. 난 이 마지막 의견에 그나마 가장 공감이 갔다. 그제서야 하늘을 보게 된, 세상이 자기를 사랑하던 때 박제된 그 발판과 하나가 된 엘리자베스는, 사실 언제나 존재하고 있었다고. 그걸 보여주려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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