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전이었다. 주장인 손흥민 선수의 팔에 찬 완장이 눈에 들어왔다. 짙은 녹색 바탕에 “save the planet”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카타르 월드컵이 (말로는)친환경, 탄소중립 행사라고 해서 저런 완장을 만들었나보다 했다. 월드컵같이 큰 행사에서 좋은 문구를 심어 좋다고 생각하고, 잊었다.
그리고 브라질전이었다. 손흥민 선수의 완장이 달랐다. 흰색 바탕에 “education for all”이라고 써있었다. 게임마다 문구가 다른가보다, 이것 역시 좋네, 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게임에 집중하느라 완장이 사실 그렇게 중요하진 않았다.
며칠이 지나서 그 완장 생각이 다시 났다. 사실 세이브더칠드런 결연이 종료되어서였다. 학교도 철수하고 아이에게 더 이상 교육 지원이 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고 나자, 이 완장이 다시 생각났다.
Captain armbands in Qatar world cup: 놀랍게도 검색을 하자마자 여러 기사가 쏟아졌다.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부터 필드에서 팀의 주장이 착용하는 완장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는 걸 지금 처음 알았다(12월 13일이다).
최근 몇 년간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사실 이런 큰 문제가 아직까지도, 그리고 지금도 이렇게나 해결이 안 되고 았어서 ‘반대 움직임’이 ‘거세어’져야 한다는 것이 울화통 터지는 일이지만). 프리미어리그에서 인종차별을 한 관중은 영구히 구장 출입을 금지시킨다. 선수들이 단체로 경기 시작 전 무릎꿇기나 입을 가리는, 인종차별에 반대한다는 제스처를 취하는 것은 이미 유명하다.
그 연장선으로 이번 월드컵에서 많은 선수들이 LGBTQ, 넓게 보아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무지개 색의 하트가 들어간 “1 LOVE”라는 문구가 쓰인 완장을 착용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중동 국가인 카타르에서 열린다는 점과 정치적 선전을 금지한다는 규정을 들어 피파는 완장에 이 문구 사용을 금지해 대립이 있었다. 정치적인 선전이 아니라며 끝까지 이 문구를 사용하겠다고 주장한 선수도 있고, 일부 선수는 개최국의 문화와 피파의 규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하기도 했다. 각자의 의견이니까 무엇이 맞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피파에서 완장을 제작해서 제공했다. 예선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보인 “football unites the world”라는 문구가 쓰인 파란 완장이다. 그런데 이게 사이즈 조절도 되지 않고 계속 떨어지거나 흘러내려 선수들을 방해했다. 질나쁜 완장을 만들었다고 말이 많았다.
첫 경기에 쓰인 완장은 질도 문구도 별로지만 두 번째부터는 문구가 그래도 꽤 괜찮았다. 모든 팀에 경기 순서대로 같은 완장이 제공되었는지 사실 정확히는 모르겠다. 우리나라 주장이었던 손흥민 선수 사진을 찾아보니 조별예선 두 번째 경기에서는 “save the planet”, 세 번째는 ”protect children”(귀국 후 윤석열 대통령에게 준 완장이 이것 같다)이다. 16강 경기에서는 “education for all”이라는 문구가 쓰여있었고, 8강에서 사용된 문구는 “no discrimination”인 것 같다. 모두 다 중요한 말이다. 환경 문제, 아동 문제, 교육 문제. 올해 초 발생해 거의 일 년이 되도록 끝나지 않고 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해를 거듭해도 정리되지 않는 미얀마 내부의 사태, 북한의 핵 위협, 미국 내 낙태금지법의 부활 등등… 세상은 점점 더 엉망진창이 되어만 가고 있는듯하다.
어떤 기사를 보니 4강, 결승전에서도 각각 다른 문구의 완장을 착용할 거라고 한다. 완장의 문구가 잘 보이는 사진을 찾으려고 검색을 하다보니 해리케인 선수가 유독 많이 나오는데 혹시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 “1LOVE” 문구의 완장에 대한 의견을 많이 내서일까? 궁금해진다. 또 조별리그에서 3위로 탈락했지만 독일팀은 월드컵 경기에서도 단체사진 촬영을 할 때 다같이 입을 가리는 포즈를 취했다.
축구선수도 그냥 한 명의 사람이고 어떤 나라의 국민이다. 이 완장 문구 논란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을 가질 수도 있고 별 생각이 없을 수도 있다. 다만 수많은 팬을 가진 인지도와 영향력이 높은 사람으로서 이런 국제적으로 노출되는 대형 행사에서 의견을 드러낸다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물론 그런 영향을 행사할지 말지는 존중받아야 할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다. 이 개인들의 의견, 선택과스포츠행사 자체, 그 시스템이 보여주는 태도는 또 별개다.
완장 사진을 검색하다보니 챔피언스리그에서 사용된 완장이 보인다. 요리스가 착용한 사진인데 완장 자체가 무지개색으로 되어있다. 다양성을 수용하고 지향한다는 의미의 완장이 챔스리그에서 사용되었다니, 멋지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은 정치적인 문제, 환경 문제 등으로 경기 외에도 이슈가 많다. 일부러 “카타르 불매”를 하려고 경기 중계를 보지 않는 축구 팬도 많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는 편에 속한다. 보도량도 적고 사회적으로 얘기도 거의 나오지 않는듯하다. 월드컵 자체에서 불거진 큰 이슈들 외에 이런 완장에 쓰인 문구도 큰 파급력이 있다고 믿는다. 나만이 관심가진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선수와 스탭들의 노력과 열정, 그리고 경기를 즐기는 동시에 이런 작은 메시지들도 관심가진다면 훨씬 더 아름다운 축제가 될 것 같다.
덧. 서형욱의 뽈리TV가 유튜브 추천에 떠서 보다가 잉글랜드와 이란의 조별예선 경기에서 이란 선수가 뇌진탕 의심으로 교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떻게 된 건가 궁금해서 경기 영상을 찾아서 다시 보다가 경기 시작 직전 잉글랜드 선수들이 모두 무릎을 꿇는 장면을 봤다. 잉글랜드가 카타르의 인권문제와 관련해서 가장 강하게 대립했다고 한다. 유럽 7개국이 반발을 했지만 결국 1LOVE 완장은 착용 못한 걸로. 8강에 제공된 no discrimination 완장이 이날도 제공되었다고 한다. 이란의 주장은 파란색에 football unites the world가 쓰인 완장을 착용했다. 경기 전날까지 케인은 1LOVE 완장 착용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그래서 케인의 사진과 기사가 가장 많았던 것.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