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는 기다려도 오고, 기다리지 않아도 온다. 하루하루를 내 마음에 드는 날, 좋은 날로 채워나가자.
엄마와 떡국 끓일 재료도 살 겸 산책을 나갔다. 스타벅스에 앉아서 돌체라떼를 시키고, 떡집에서 사온 찹쌀모찌를 나눠먹었다. 엄마는 내게 새해가 좋은 해가 되길 여느때보다 더, 아주 많이 기원하고 계셨다. 내게 2022년은 정말 많이 아프고 힘들었던 한 해였다. 물론, 그걸 바로 옆에서 한 시도 놓치지 않고 지켜본 엄마에게도. 엄마는 내게 2022년을 다 잊으라고도 2023년을 잘 만들라고 당부하시지도 않았다. 다만, 새로운 해는 기다려도 오고, 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것이라고, 그러니 매일을 내 맘에 드는 날로 만들자고 하셨다.
2023년이 오기를 그리 기다린 것 같지는 않지만, 2022년이 끝나기는 은근히 기다렸던 것 같다. 그 어려움이 기한을 두고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이 해가 끝나면 힘듦도 아픔도 끝나고 모든 게 새로 시작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2022년을 닫는 말
지난 해를 돌아보면 정말 지루하기 그지없다. 매일이 똑같고, 즐거운 일이나 기억나는 일이 딱히 없다. 그러면서도 하루, 한 달, 한 계절이 어떻게 지나는지 알 수 없게 시간이 빨리 흘러갔다. 정말 어느 새 봄, 어느 새 여름 끝, 어느 새 겨울이었다. 이렇게 한 해를보낸 적은 정말 처음이다.
감정의 변화도 적었고, 사람들과의 교류가 거의 전무해서 관계에서 되새길 일도 떠오르지 않는다. 회사와 관련해서도 사건이 없었고, 회사 외적으로도 한 일이 없다. 이렇게 지루하고 매일 똑같았던, 정말 평행선같은 날들을 보냈는데 시간은 왜이리 빨리 갔나 모르겠다. 정말 어느 해보다도 빨리 지나간 해였다.
눈을 감았다 뜨니 31살에서 33살이 되고 말았다. 처음엔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의미로 한 말이지만, 정말로 지난 한 해가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버린 느낌이다.
#지루함
1월 8일 토요일. 내 생에 너무 늦은, 그리고 어쩌면 인생 최고의 일탈을 벌였다. 어릴 때 못 놀아 본 티가 난다, 고 스스로 많이 생각했다.위험한 상황이 되지 않고 단순한 사건이자 일탈로 끝나고 만 것은 주위에 좋은 사람이 많았던 내 복이고 운이라고 생각한다. 이날 무슨 일이 있었냐보다도 이날 이후로 사람의 인생에서는 다 어느 때가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사실 사람에게 일어나는 어떤 상황도 행동도 다 '나에겐 왜 이런 일이'라고 할만한 일은 없는 것 같다. 다만 그게 적절한 때에 벌어진 것이냐 아니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데 턱이 높아지냐 낮아지냐는 다른 것 같다. 올해(2022년)가 이렇게 지루하게 흘러가는 시간이었던 것, 내가 (이 나이를 먹고, 이 정도 사회생활을 하던 중에) 부모님 집에서 1년간 24시간을 부대끼고 보내게 된 것에 대해서도 다 나에겐 올 해가 이런 때다,라고만 생각했다. 친한 친구 중 하나는 일에 너무 치여서 바쁘게 한 해를 보냈는데(내년은 더 바쁘고 힘들 것 같아보이지만), 그는 종종 자신의 바쁨을 미안해했다. 하지만 난 그의 바쁨과 거기서 비롯된 어려움이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 친구에게 올해(2022년)가 그런 바쁜 때인 것뿐인 거라고 생각했다(그리고 그에게 이 말을 정말 많이했다).
무엇보다 '정해진 때가 있다'는 것은 그 '때'에 대한 이유도 있다, 완성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인생을 살면서 꼭 배워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게 아닐까. 이게 올해(2022년)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1월 8일 #때 #턱
가을쯤이었나 인터넷에서 이런 글귀를 봤다. "당신이 가장 많이 교류하는 5명의 평균이 지금 당신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웃기게도 나는 자주 교류하는 사람이 5명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곧 내 표정은 심각해지고 말았는데, 내가 자주 교류하는 사람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인간상이었기 때문이었고, 삼십여년을 쌓아온 '나'라는 인간상에 내가 싫어하는 그의 모습이 굉장히 많이 보인다는 걸 계속해서 깨닫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한 해가 다 지나갈때 쯤에야 올해는 내게 터닝포인트가 될 거라는 걸 깨달았다. 너무 괴롭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이 환경에 이정도 시간과 강도로 노출되지 않고서는 난 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름쯤 되었을 때 난 내 안에 부정적인 감정이 너무나도 가득차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 소재로 어떤 글을 써도 부정적이고 어두운 감정이 묻어났다. 글자들이 큰 소리로 화를 내는 것만 같았다. 그 감정을 떨쳐내기 전에는 문장 하나도 쓸 수 없을 거라는 걸 알았지만 어떻게 해도 털어지지가 않았는데, 조금 지나고 보니 난 그 감정을 털어낼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난 그것들을 '표출'하는 방식으로 털어내고자 했는데, 내가 가진 환경과 조건에서 이렇게 털어내는 방식은 작동하지 않았고 난 그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상태였다.
난 내가 좋은 부모나 좋은 선생이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기보다 스스로에게 영향을 주는 데에 더 관심이 많고 애를 쓰기 때문이다. 올해(2022년)를 지나면서-라기보다 사실 12월이 지나서지만, 적어도 난 내가 싫어하는 말투, 태도, 행동 등 "인간상"이 어떤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보는 데 80%정도 성공했다. 이전에는 내가 바라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 몰랐던 것 같다. 이제 그걸 알았으니 내 모습을 고치고 고정시켜나가는 데 얼마나 성공하는지가 중요해졌다.
#인간상
작년(2021년)과 비교해서 2022년의 내 생활은 정말 많이 달라졌다. 네 평 남짓한 방 안에서 가만히 누워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가만히 누워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았고, 생각보다 어려웠다😊.
대부분의 시간을 책을 읽고 5.4인치의 작은 스마트폰 화면으로 영상을 보며 보냈다. 리더스(RDRS) 앱을 이용해서 읽은 책을 기록했고, 독후감은 정말 한 편도 쓰지 않았다. 출판사 이벤트에 응모해서 받아 읽은 책도 몇 권 있는데, 그 리뷰도 간단하게 인스타로 마무리하고 말았다. <저항할 권리> 한 권만 조금 생각을 정리해서 쓰고 싶어서 블로그에 남겼다. 초여름쯤에 페이스북의 기록을 다 없애고 싶어서 블로그에 아카이빙을 시작했다. 학교에 다닐 때 페이스북에 독후감을 많이 남겼는데, 그때 남긴 글이 재밌는 게 많았다. 한참 옮기다가 멈췄는데, 이것 때문에 블로그 '책' 카테고리에 올해 올린 글 수는 좀 있다. 독후감을 안 남긴 것은 오랫동안 앉아 글을 쓰기가 힘들다는 핑계를 대기 싫을 정도로 부끄러운 일이다. 어쨌거나 읽은 책은 총 61권이다. 2-3월에는 집에 있던 책들을 다 읽었고, 4월에 조금 걷기를 시작하면서 방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며 책도 적게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오히려 동네 도서관 이용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책은 꾸준히 읽었다. 그러다가 6월에 다시 움직임이 줄어들면서 누워서 책만 왕창 보는 결과를 낳았다. 그런데, 컨디션이 정말 안좋아지면서 6월 말부터는 책보기를 멈추고 핸드폰만 주구장창 들여다봤다. 직접 도서관에 갈 수도 없고, 누가 책을 대신 빌려다주지도(반납해주지도 ㅠㅠ)않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집에 있던 두꺼운 책을 집어들어서 세 권을 꾸역꾸역 읽었다.
8월에는 이러한 상태가 좀 더 심화되었는데, 10월 초까지 <플라톤의 국가론>을 붙들고 꾸역꾸역 읽는둥 마는둥 했다. 이때는 정말 넷플릭스만 봤던 것 같다.
4월 중순부터 재택근무로 회사에 복귀했는데, 7-8월에 컨디션도 나빠졌지만 업무-특히 회의가 많아져서 낮시간에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고 기억한다. 그리고 저녁이후에는 날도 덥고, 에어컨 때문에 배탈도 자주 나고, 컨디션이 안 좋아서 끙끙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게 대부분이었고. 3월까지는 밤에 잠이 잘 안 오면 새벽까지 넷플릭스를 본 적도 꽤 있었던 것에 비해 정말 상태가 안 좋았다. 시간을 '보낸다'기보다 시간이 흘러가는데 내 몸이 거기 어딘가에 껴서 둥둥 떠내려갔다.
9월부터는 진료과를 바꾸고 마음도 좀 추스르고 컨디션을 끌어올리려고 스스로 좀 애썼던 것 같다. 내가 뭔가 노력하기보다 몸도 마음도 스스로 나아지려고 다잡았다는 느낌이 있다. 10월에는 <플라톤>을 드디어 끝을 내고, 다시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오기 시작했다. 또, 이때 읽은 책을 보면 출판사 인스타그램 이벤트로 받아 읽은 게 다섯 권(한 권은 11월에 마무리)이나 된다. 하지만 11월에는 다시 책읽기가 조금 게을러지기 시작했다. 조금 큰 책을 두 권(곰브리치 세계사와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이 책들은 각각 이렇게 무거울 줄!! 그리고 이렇게 두꺼울 줄!! 모르고 빌렸다!) 읽었지만, 전체적으로 독서 시간이 줄어들긴 했다. 회사는 10월에 잠깐 남은 병가를 소진하고 복귀했지만, 업무량은 연말도 되고 해서 많이 줄어있었고, 마음가짐 자체가 많이 달라져서 업무에 매이느라 다른 시간이 없어진 것은 전혀 아니었다. 넷플릭스에도 사실 재미있는 볼거리가 많지 않았는데 이 시기에는 정말 아무거나 대충 봤던 것 같다. 그리고 팟캐스트도 별로 듣지 않고, 산책 시간이 늘어난 것도 아니었다. 인터넷 서핑을 괜시리 많이 했던 것 같다. 11월 마지막주에 월드컵 경기가 시작됐고, 네이버 스포츠에서 월드컵 영상을 다시 보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일주일 사이에 인스타에도 축구선수 관련 포스팅이 엄청 많이 보였고, 결국에는 유튜브의 맛을 알아버렸다...... 영상 들여다보는 걸 정말 이해 못하던 사람이었는데(!!), 유럽 리그를 생중계하는 채널은 전부 유료라는 것을 깨닫고(990번대인 마지막 채널까지 부모님이 외출하셨을 때 TV를 돌려봤다ㅡ세상에) 유튜브에서 관심 리그와 구단을 구독했다. 그런데 경기가 매일 있는 게 아니라서...... 이것저것 짧은 영상들을 보게 됐다. 일단 손세이셔널 정주행. 그리고 마리텔 영상은 몇 개 보다가 질려버렸고... 거실에 나가 TV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유퀴즈도 유튜브로 짤막하게 보고, 주로 보는 것은 <아빠 어디가 시즌2>. 아마 안정환때문에 내 피드에 나오기 시작한 것 같은데 아이들이 너무 귀엽고 예뻐서 엄청나게 보고 있다. 그리고 리그 재개된 뒤에 하이라이트들을 보고. 90min에서 평점은 직접 보면서 유튜브 시청 시간은 조금씩 줄이고 있다. 다만 너무 핸드폰에 익숙해지다보니 12월에는 책이 손에 잘 안 잡히고 잡아도 집중해서 읽히지가 않게 되었다(이렇게나 빠르게??).
돌아보면 상반기에만 넷플릭스를 냅다 봤던 것 같은데, 영화는 총 160편, 예전에 봤던 걸 다시 본 게 2편(이터널 선샤인, 노팅힐), TV프로그램으로 분류되는 것은 39편 리뷰를 남겼더라(왓챠피디아). 역시 감상은 하나도 글로 남기지 않았다.
올 한 해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건 <동쪽 빙하의 부엉이>. 너무 좋았다(주제가 비슷한 <두더지 잡기>는 그냥 그랬다). 그림책인 <오늘의 개, 새>와 이 책을 출판한 사계절출판사는 언제나 사랑한다. 그리고 지금 이 그래프를 보니 <H마트에서 울다>도 추천하고 싶다. 정말 좋은 책이었다. 자꾸 하나씩 눈에 들어오는데 <위빳사나 명상>도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몇 번 더 다시 읽고 위빳사나를 연습하고 싶다고 계속 생각하고 있다. 역사에 정말 무지한 나에게 <곰브리치 세계사>는 진짜 좋은 역사책이었다. 어릴때부터 위인전을 정말 싫어했고, 역사는 알아야 한다고 의무적으로만 생각했을 뿐 어찌 읽어야할지 알지 못했는데, 정말로 좋은 역사책이었다.
올해 내가 '발견'했다고 할 수 있는 저자는 압둘라자크 구르나. 디아스포라 문학의 거장이라고 하지만, 난 그의 글이 단순히 '디아스포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내가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줬다. '다른 것'을 '다르다'고 받아들일 수 있게 내 정신을 완전히 바꿔버린 작가다. 도서관에 세 권의 책이 있었는데 두 권을 봤고, 다른 하나는 그사이 누군가 빌려갔더라. 우리 동네가, 지나면 지날수록 도서관이 잘 되어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리고 구민들이 책을 정말 많이 보는 것 같다. 아 읽어야 하는데 누가 빌려갔어! 가 아니라, 너무 좋은 작가, 또 다른 사람이 읽는구나, 너무 행복하고 좋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영화나 TV프로그램은 정말 의미없이 생각없이 본 게 많은 것 같아서 기억에 크게 남는 건 없다. 평도 워낙 많이 나와있는 것이 많고, 나도 대부분 그러한 평을 보고 좋다고 하니까 보게 되는 게 많으며 이 말은 선입견을 이미 갖고 시청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일년 내내 너무나 호평 일색이었던 <헤어질 결심>은 오빠부부의 티빙 아이디를 빌려서까지 보았는데(청룡영화제 직전에 보았다), 마지막 장면이 너무 영상미가 뛰어났지만 대체로 나는 감동을 크게 받지 않았다.
왓챠피디아에 본 날을 기록해야하는데, 그게 자동으로 안 되고 예전에 평점 줬던 작품을 다시 확인해보다가 별점을 고친 경우가 몇 번 있어서 담은 날짜가 2022년으로 바뀐 게 몇 편 있다: 캡션 확인
역시 에드워드 양.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정말 좋았고, <아무르>는 충격적일 정도로 좋은 영화였다.
<20세기 소녀>도 굉장히 좋았다. 이런 느낌의 영화 정말 좋아하는데 요즘은 정말 잘 안 나오고, 진짜 좋았다. <굿타임>도 꽤 좋았다. 로버트 패틴슨 연기 정말 잘 하고 영화들도 좋다. 다니엘 래드클리프와 함께, 해리포터 영화 시대에는 내 맘에 별로 들지 않았던 배우인데 성인 연기에서 최애 배우로 바뀌었다.
한국 영화였던 <습도 다소 높음>이 꽤 마음에 들었다. 웬일로! 그리고 이때 은근 크리스틴 스튜어트 영화를 봤는데, 정말 나랑은 잘 안 맞는 듯한... 하지만 그녀가 나오는 영화는 영상 연출이 진짜 너무 좋다. <엄마라는 집>은 구성이, <걸후드>는 소재와 그것을 표현한 방식이 정말 별로였다... <큐티스>가 살짝 생각나서 더욱 별로였지만 의외로 세간의 평은 좋았던 영화였다. <완탕 가게 수호신>은 매체 평이 별로였는데 난 굉장히 좋았다. 작년에 본 <듄>이 난 너무 좋았고 마침 내년 하반기에야 후속편이 나온다고 해서 그걸 영화관에 앉아 보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런데!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보고 그야말로 웃음이 빵 터졌다. 드니빌뇌브 감독은 정말 능력은 뛰어나지만 상상력에 한계가 명확한 사람인가 싶었서.
<홀로그램 포더 킹>을 보면서 정말 나는 톰행크스 영화랑 안 맞는다고 생각했고(하하핫). 너무 웅장하고 음악과 영상이 클래식하게 멋지지만 브래드 피트의 영화는 일부러 그만 봐야겠다고도 생각을 많이 했다.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캐리 멀리건은 정말 언제나 좋다.
전주 국제영화제에서 놓쳤던 <한나>를 드디어 봤다. 프레디 하이모어는 너무 역변한 것 같아 슬펐고.
<슬램>과 <우리, 운명일까?>가 정말 좋았다. <더 킹 오브 스테이튼 아일랜드>도 좋았고. <이터널 선샤인>와 <노팅힐>을 다시 봤는데, 다시 보니 더 좋았다.
<보이지 않는 끈>도 좋았고, <남색대문>도 좋았다! 홍콩/대만 영화를 내가 꽤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엄마라는 집>같은 것도 있어서 정말 좋거나 최악이거나 너무 모아니면 도인듯하다.
<허니와 클로버>는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는데, 막상 보고 나니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랐다. 지금 보니 작년 말에 본 영화들이 좋은 게 정말 많네...... <헬로 케이티>도 올리비아 쿡을 발견하게 해준, 좋은 영화였고.
하반기에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일부러 좀 봤고, 옛날 영화와 다큐를 많이 봤다. <미국 소녀>, <h다이어리>, <우리의 4일> 같은 영화도 포함해서.
한국: 1월에 파견을 가서 <그 해 우리는>을 진짜 열심히 봤다. 김다미 배우, 최우식 배우의 연기도 좋아하고 영상과 음악도 겨울에 어울리고 좋아서 정말 빠져있었다. 한 친구가 이 드라마가 왠지 모르게 '현타오게 하는 느낌'이 있다고 언젠가 말했는데 이 말에 정말 공감한다. 뭐라고 설명을 더 하기는 좀 애매하지만.
<변혁의 사랑>이라는 한국 드라마...를 은근 귀엽다고 생각하며 봤고, 2018년 여름에 TV를 돌리다 우연히 <청춘시대 2>를 몇 편 봤었고, 그때 기억이 굉장히 좋았는데, 곧 넷플릭스에서 사라진다고 해서 시즌 1, 2를 정주행하고 나니 너무 별로였다. 실망을 왕창 했다. <호텔 델루나>도 정말 좋았다. 대사나 소재를 다루는 방식들이 정말 너무 마음에 들었다. <서른, 아홉>은 재미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을 때우려고 시작했다가 의외로 꽤 좋아서 뒤로 갈수록 재미있게 봤다.
유럽: <인터넷으로 마약을 파는 법(빠르게)>도 좋았고, <삶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도 정말 좋았다. 제발 시즌 2나왔으면 할 정도였다. <더 크라운>을 정주행했다. <F1>은 언제나처럼 좋았고 올해 나올 시즌 4 기다리고 있다.
<크리스마스에 집에 가려면>은 시즌2로 더 완성도가 높아지고 따스해졌다. <클라르크>도 빠른 전개와 영상 구성이 개성있고 좋았는데, 지나치게 자극적이어서 뒤로 갈수록 질려버렸다(사실 마지막 에피소드 두 개는 안 봤다).
미국/남미: <스위트 투스>도 굉장히 좋았다. 시즌2 나온다고 하는데 대체 언제...? <3%>는 진짜 우연히 눌러서 봤는데 너무 좋아서 새벽까지 보고 또 올 해 단 한 개 썼던 원고(자음과모음 여름호)에도 언급할 정도였다.
최고의 드라마: 부요왕후!!! 올해 여름쯤부터 다시 듀오링고를 시작했는데, 중국어와 프랑스어를 동시에 시작했으나 중국어에만 집중하고 있다. 링고는 중간에 좀 시들해져도 그럴 땐 조금만 해도 되어서 부담이 없다. 중국어가 좀 들리나 궁금하기도 했고, 호기심이 생겨서 갑자기 중드를 하나 골라서 봤는데, 하필 그것이 부요왕후였고, 너무 최고였다. 정말 빠져서 한 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봤다. 다 본 뒤에도 한 1-2주는 여운에 허우적거리면서 다른 무엇도 보거나 읽지 못할 정도였다. 중국어 단어는 몇 개 정도씩 들리기도 했다(하하핳).
두 번째로 좋았던 드라마는 <퍼스트러브 하츠코이>인데, 내가 넷플릭스로 뭘 보다 운 건 거의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일본 특유의 우리는 동양의 유럽인 정신이 나와서 또 '굳이..?' 하는 스토리도 있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이유는... <그 해 우리는>처럼 별로인 구간도 많았지만 이유를 모르겠는 좋음이었다.
많이 읽고 많이 봤고, (팟캐스트!)많이 들었지만, 쓰는 건 정말 0에 가까웠다. 조금 쓰려고 했던 글들도 다 별로였고, 재미가 없고, 그 원인은 내 안에 가득한 부정적 감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감정을 걷어내거나 넘어서서 재치있게 바꿀 수 있을 여유나 기분을 도무지 만들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래도 괜찮아. 라고 생각했고, 생각한다.
#기록
↑읽고 본 기록에 대한 부분이 너무 기네.
올해는 '소유'에 대해서 회의를 많이 느꼈다. 몸이 좀 나아지고 나서는 정말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아니 사실은 몸이 많이 아팠을 때도 이 생각을 제일 많이 했다. 상태가 안 좋을 때는 회사를 그만두고 어떻게 살아야 하지, 라고 생각하며 조기 은퇴와 작은 가게(책방)를 하는 것에 대해 현실적으로 정말 많이 생각했다. 그리고 상태가 좋아지고 나서는 외국으로 떠나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엄청 많이 하게 됐다.
작년까지만 해도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 사람이었다(그 이유가 무엇이든). 그런데 올 해를 지나면서 정말 결혼따위 하고 싶지 않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주변에 좋은 친구가 많이 남아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결혼은 필요하지 않다고 정말 간절하게 속으로 목놓아서 많이 외쳤다. 물질적인 것도 굳이 소유할 필요가 없다고 많이 느꼈다. 특히 집. 다만 자유롭게 움직이기 위해서 돈은 많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 수단이 굳이 부동산일 필요는 없고, 또 부동산이면 오히려 매여있어야 하므로 안 좋다고 생각은 많이 했다.
혼자이기를 더 선호하고 조금은 원하게 된 것은 정말 내가 '아파서'였다. 첫 번째로, 나는 내가 아픈 것에 대해서 주위의 반응이 심해지면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는다. 주위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인 경우가 많은데 그 중 최악의 것은 누군가가 내가 아프다는 사실 자체에 화가 나는 것이다. 내가 아픈데 타인이 화가 난다는 건 사실 이해하기 좀 어렵다(이해하고 싶지 않았고, 앞으로도 이해가 될 리는 없을 것이긴 하다). 내가 좌우명이 '이아환아 이안환안'이고, 사회생활의 기조가 '강강약약'이라고 자주 말하고 다니는데, 여기에 너무 상충되는 상황에 처하면 나에겐 최고로 괴로운 순간이다. 내가 한 행동과 상대방이 하는 행동을 비교하기 시작하면 정말 괴로워진다. 대부분 해결하거나 피하기 어려운 상대일 때가 많다. 안타깝게도 나는 스스로도 그리고 주위에서도 누군가 아팠던 경험이 많아서 내가 원하는 반응이랄 것이 있다. 그런데 이런 반응을 받기가..... 쉽지가 않다. 잠깐 아프고 지나가면 괜찮은데, 스스로 아파서 나에게 오는 자극들(주위의 반응 등)을 조절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랫동안 꾸준히 원치 않는 자극들, 반응에 노출되자 심리적으로 점점 악화되었고, 여기는 한 번 가속도가 붙자 겉잡을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친구들의 도움이 엄청 컸다. 아픈 걸 웬만하면 많이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이 말하게 되거나 말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이 만났다. 그럴 때 사람들마다 반응이 정말 많이 달랐고, 친구들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굳이 얼굴을 보려고 멀리까지 찾아와써 잠깐만이라도 보고 가주는 친구도 많았고, 진짜 많은 힘을 주고 갔다. 전화나 메시지로도 응원해주는 친구도 많았다. 단순히 말로만 응원을 전달했다는 느낌을 주는 때도 당연히 많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응원이 되고 또 내가 상황을 다 말 하지 않아도 모든 감정을 다 녹여버리는, 표현이 멋져서가 아니라 그저 마음이 전해져서 모든 걸 다 상쇄시켜버리는 경우도 몇 번 있었다. 정말 말로 할 수 없게 고마운 친구였다. 무엇보다 '만나자'고 약속을 했거나 심지어 메시지를 조금 하다가도 내가 컨디션이 나빠져서 갑자기 조용해지거나 약속을 급히 취소해야 할 때 내가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기도 전에 먼저 나를 배려해주는 친구의 모습에 마음 속 가득히 고마움과 사랑을 느꼈다.
아프면서 대화를 할 때 조금 더 천천히해도 좋고, 조금 더 가라앉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어쩌면 삶에서 처음으로 했다. 아직 좀 어렵고 시간이 지난 후에 떠오르는 생각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생각이 자주 난다.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더 자주 하고 행동으로도 옮겨서 나중엔 '이래야지'가 아니라 그냥 내 모습이 되길 바란다.
아무튼, 5월에 있었던 오빠 결혼식에 두 명의 친구가 찾아와줬고, 내가 집앞에도 나가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10월부터 집앞으로 친구들이 찾아와줬다. 자신도 많이 바쁜데 와서 볼 수 있는 시간(내가 버틸 수있는 시간)도 매우 짧고, 우리 집이 매우 먼 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와주고, 와서 보고싶다며 마음을 전해준(난 이게 사랑이라고 본다) 친구들에게 힘을 정말 많이 얻었다. 고맙고 고맙고 또 고맙다고 말해도 부족한 친구들.
#바라는 것들
회고라고 깔끔하게 정리되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라고 적어본다. 좀 이말 저말 적었고 깔끔하게 적지도 못한데다 읽고 본 것들에 대한 내용만 엄청나게 긴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할 말은 다 적은 것 같(기도 하)다.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아깝고, 의미없다(!). 올해(2023년)도 생각 없이 의미 없이, 잘 살아야지. 소중한 사람에게 더 소중하게 대해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