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쩜 이렇게 멋진 여성이! 비록 그 사람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지만, 글을 통해 보여지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멋있다. 요즘 어디서도 볼 수 없고, 과거에는 더더욱이 볼 수 없었을 것 같은 사람이다. 털털하다못해 조금 퉁명스럽게까지 느껴질 때도 있는 장영희씨의 말투는 그만의 매력이고 특징이다. 오히려 그래서 더 위로를 주는 그 목소리에 반해버렸다.
평생을 살면서 그는 다른 것보다 자신의 신체적 특징(이게 적확한 표현일지 모르겠다)에만 관심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몸이 힘들면 마음도 힘들다는 말은 진짜다. 내 자신에게 자꾸만 신경쓰고 나를 감각할수록 세상에 관심을 가지기 어렵다. 몸이 불편했던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면 난 항상 그랬다. 몸이 움직이는 만큼만 세상을 감각할 수 있었다. 내 몸이 움직이는 반경이 줄어들면 세상은 너무나도 빠르게 내 자리였던 영역을 차지하고, 좁아진 내 자리를 무섭게 넘봤다. 이런 내가 보기에 장영희씨는 몸이 차지하고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이 정말 좁은 사람이었을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물론 글에 그런 얘기를 많이 담지 않았을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무작정 희망차거나 밝지도 않으면서 너무나도 씩씩하다. 글에서 스스로 밝혔듯 '저벅저벅' 걸어다니면서 좋고 나쁜 모든 운을 흔들어 깨우는 사람이었다.
일부러 위로하거나 기운내라고 말하는 보통의 말들은 너무 질린다. 질리고, 뻔하고, 할 말이 없는데 지어내는 것 같은 상대의 반응이 오히려 나를 더 피로하게 만든다. 괜찮다, 고맙다는 대답을 실컷 해주다보면 위로의 대상은 어느새 나에서 상대방으로 넘어가버린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상대들에게 너무 익숙해져버렸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내 자리를 점점 좁히면서 침울해지고 가라앉고, 장롱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 앉아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내 자격이고 그래야 하는 일이라고 여겼던 것도 같다. 장영희씨의 글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담긴 글 속의 그는 아무렇지 않게 살았다. '~보다'라는 말이 그의 삶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무엇을 이겨낸 적도 없고, 무엇에 시달렸던 적도 없이 그냥 누구보다 평범하게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멋있다. 짜증날 땐 짜증을 내고, 신경질이 나면 신경질도 화도 내고, 누구를 미워도 하고, 비웃기도 하며 살았다. 그러면서 또 행복해하고 웃고 감탄하기도 하면서 살았다. 자신을 찾아온 제자에게 어떨 땐 뻔한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했고, 게으름을 있는대로 부리기도, 독자의 말에 고마움을 느끼기도 하면서 살았다. 하지만, 그 어느것에도 아주 힘을 써버리지는 않으면서 살았다. 거의 매 순간 내 모든 간장을 다 녹여내듯 살아온 나는 그의 모습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영희씨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책에 나오는 김점선씨의 그림을 보고 그는 빨간 말이 어딘가로 웃으며 달려가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계속 그 그림 속 빨간 말이 풀숲에 누워 웃으며 쉬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내가 달리고 있을 땐 항상 긴장된 얼굴로 주위를 보기에 바빴던 것 같다. 반대로 그는 항상 멀리 보이는 재미난 것을 향해 달려갈 때야말로 웃는 얼굴을 했던 것 같다. 주위에 누가 어떤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지, 무슨 말을 하고 있고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연연하지 않으며 멋지게 웃으면서 달려갔던 것 같다. 그 기운이 글에 담겨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엄청난 위로가 되었다. 이거야 말로 진짜 위로였다. 멋지게 사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게, 일부러 힘내라고 말할 필요 없는 모습이 위로였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사람이지만, 그를 꼭 알고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처럼 살지 않으려고 말이다. 이제라도 장영희씨처럼 항상 '저벅저벅' 걷고, 게으름도 부리고 짜증도 많이 내고 그러면서 또 껌뻑 속기도 잘 하면서 살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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