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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뒷표지에 써있던 추천사를 보며 아! 했다. 너무 공감이 되어서였다. 명랑한 은둔자라는 제목이 작가 자신을 나타내는 말이었다는 게 너무 귀엽기도 하고 마음에 들기도 했다. 혼자 있고 싶고, 숨어있고 싶지만, 그렇다고 우울한 것이 아니고(물론 우울하기도 하다), 명랑한 기분이라는 것이 너무나 지금을 살아가는 내 또래, 내 주변의 여자사람에게 필요한 인식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프기 전보다는 아프고 난 후의)내 모습이 투영되기도 했고.

책 날개에 있는 작가 소개에서 작가가 폐암으로 40대 초반에 세상을 떠났다는 걸 보고 많이 슬펐지만,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했다. 오래 살아봤자 뭐해, 라는 말이 아니라 그녀는 인생을 충분히 잘 살다가 갔을 거라는 왠지 모를 믿음이 있어서 죽음이 슬프지 않게 느껴졌을 뿐이다.

짤막한 글들은 모두 90년대에 쓰인 것이었지만, 요즘의 우리가 하는 말과 생각과 크게 다르지도 않았고 시대적 차이가 느껴지는 부분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왜 요즘 이런 얘기가 더 많이 나와야하는데 없을까? 라는 의문까지 들었다.
여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 그것도 사회에서 똑똑하고 엘리트로서 여겨질법한 여성이고 미국에서 백인이고 금발이며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을 가진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게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는 걸 사람들은 얼마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바라보며 거식증과 알코올 중독에 빠지기도 했던 저자의 경험은 드라마틱하거나 안타깝지는 않았다. 작가가 중독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대단하거나 중독에 빠져있을 때의 모습이 어떻다, 라는 것보다 그에서 벗어난 지금(글을 쓰던 시점)에 자신이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 상태로서 얻고자 했던 게 무엇이고 벗어날 수 있게 했던 생각은 무엇일까, 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잘 알아차렸다는 게 굉장히 멋있었다. 이러한 시선과 태도로 들려주는 이야기가 이전에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좋았다.
물론 나는 거식증이나 알코올 중독을 겪어본 적은 없지만, 자신을 끔찍하게 옥죈다고 여겨질 정도로 상황을 통제하려 들거나 자신을 압박하고 규칙 속에서 살아가려 하는 행동과 생각은 워낙 많이 했기에 쉽게 공감을 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결혼하지 않았던 작가는 삶의 마지막에 가까워서는 남자친구와 함께 살긴 했지만, 강아지 한 마리를 돌보며 이웃들, 여자 친구들과 느슨하지만 속깊은 친구관계를 삶에서 이어갔다. 혼자서 계속 잘 살아가려면 친구들-나를 이해해주고, 내가 이해하는-과 가까이에 모여 살아야 한다는 생각과 말을 거의 매일 하는 요즘, 나는 이게 매우 부럽긴 했는데, 작가가 이 관계들로부터 엄청난 삶의 에너지를 얻은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 더욱 중요한 지점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명랑한 '은둔자'였고, 이웃들에게서 파티에 오지도, 자기 집에 이웃을 초대하거나 담장을 사이에 두고 혹은 길에서 이웃과 수다를 떨지 않아 아니꼬운 눈길을 받는 사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성애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 집을 사는 것과 같이 정형화된 시간순서의 삶을 따라가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히 여기고 또 강요하기도 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명랑한' '은둔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우며 대단한 일인지 이해받기 어렵지만,
나, 그리고 나와 비슷한 경험이나 조건, 배경 등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 내 꿈은 명랑한 은둔자가 되는 것에 가까웠구나, 라고 분명 생각하리라 다. 자신과 환경을 통제하려 하고 엄격한 규칙을 적용하려는 것. 내 주변에서 이런 생각과 태도를 가지는 친구들을 보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기도 해서 친구들에게도 매우매우, 나누고 싶었고, 우리가 이대로 은둔하며 살아가도 괜찮고, 충분히 휴식하고 나를 충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 결과로서 우리가 서로 잘 지내고 안전해질 수 있다, 라는 자신감과 명랑함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책을 통해서.

Posted by solle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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