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살아요 (단 하루도 쉽지 않았지만)
제목이 매우 강렬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실제로 아주 강렬했다.
'채플런'이라는 직업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 듣거나 내가 잠깐 보았던 호스피스나 간병인, 병원 등에 찾아오는 종교인들과는 전혀 다른 일이고 역할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저자인 케리 이건 역시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책 제목처럼, 사는 것은 단 하루도 쉽지 않다. 행복-까지는 가지도 않고, 편안하게라도 사는 것은 (단 하루, 가 아닌 단 한 순간이라 해도 맞을 만큼) 정말 더 쉽지 않다.
그리고 누구도 그렇게, 살도록 도와줄 수 없다. 채플런으로서 케리 이건 역시 누군가 '살게' 도와주지는 못했다. 멋있었던 것은 그녀가 그렇게 누가 '살게' 도와주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그런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 끊임없이 내가 무엇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할 것만 같아서다. 그저 정해진 시간동안 옆에 있어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이 이야기하기 원하지 않으면 굳이 이야기해달라고 하지도 않고. '존재'해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그래서 너무 멋있고 감동적이었다.
그녀 스스로가 먼저 아주 힘든 시간을 거쳐왔는데, 그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거나 얘기하지 않고, 또 그것을 대단하거나 특별한 것이라고 계속 생각하지 않는 점도 너무.. 마음이 아프기도 하면서 대단하게 보였다.
그녀가 만난 사람들은 원하는 것도, 그녀에게 보인 태도나 행동들도 모두 다 달랐지만, 그녀는 매번 달라지지 않았다. 그녀와 그녀가 만난 사람들은 서로에게 뭔가를 꼭 내어주거나 서로에게서 받아서 변하고 달라지고 하지 않았다. 그것이 적어도 내가(사회가 다 그렇다고는 함부로 말을 못하겠다) 쉽게 떠올리는 간병인/호스피스/종교인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환자라던지)의 관계이고 그들 사이에서 쉽게 보이거나 상상된느 모습인데 채플런을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녀가 보여준 채플런과 환자들의 관계는 그랬따. 서로의 곁에 잠깐이라도 '존재'해줌으로써 둘 다 원래의 자기자신의 상태로, 완전히 평정한 상태로 순간적으로나마 돌아갈 수 있었던 것. 그게 그녀와 그녀가 만난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전부다. 엄청난 아픔을 겪었던 그녀라서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대단하고 또 아름다웠다.
영화 <마우스풀 오브 에어>도 잠깐 떠오름.
2. 겨울 일기
올해 초 폴 오스터 아저씨가 돌아가시고, 그에 대한 여러 구설수들이 다시 기사에 뜨기도 했다. 미뤄뒀다가 대충 읽곤 했는데, 누가 뭐래도 폴 오스터는 내가 20대에 읽었던 이야기의 별이다. 한창 폴 오스터의 소설만 주구장창 읽던 때가 있었다. "우연의 미학"이라고 하는, 그만의 글에 완전히 매혹됐었다. 아니 어떻게 이런걸 생각했지? 하면서 눈물 글썽거리기도 하고 숨을 헉 들이쉬기도 하면서 열심히 읽었다. 정말 재미있었다.
이후에 존 쿳시와 나눈 편지를 엮은 글도 정말 재미있었고. 물론 번역도 매우 좋았던 거지만, 그의 문장은 정말 재치있고 재미를 담고 있었다.. 건드리면 동굴처럼 낮게 우우웅 하고 소리를 낼 것만 같은 문장들.
겨울 일기는 그의 자서전같은 수필이다. 특이한 점은 살았던 장소를 기준으로 시간에 따라 글이 이어진다는 점. 생각해보면폴 오스터의 소설들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고정된 하나의 장소였던 것 같다. 그 장소들을 움직이는 인물들도 당연히 엄청 흥미롭고 재미있었지만, 장소가 차지하는 역할이 꽤 컸던 것 같고, 새삼 지금 독후기록을 남기면서 생각하니 폴오스터라는 사람이 장소를 엄청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읽은 그의 문장들, 물흐르는듯 따라가다보면 뭔가 나도 모르는 세계에 와있는 것 같게 만드는 그의 글솜씨. 여전히 매력적이고 나는 그의 글이 너무 인간적이라고 느껴진다. 좋았다.
3. 그림책들 - 은 회사 점심명상에서 그림책명상을 해서 우르르 읽었던 것들을 기록했다.
4. 일곱번째 파도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의 속편.
이야기는 이전과 아주 비슷한 형태로 이어지고, 결국에 둘이 만나서 함께하게 되었다는 결말 (갑자기 스포).
특이점은 없었고..... 대화는 전편보다 조금 더 진부해졌으며, 슬프게도 재미없는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6월이 되었고, 책은 두 권을 겨우 읽었다.
페브랑 노는 시간, 페브한테 집중하는 시간도 길어지고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집에서 폰을 붙잡고 있다가 잠들어버리기 일쑤였다. 주로 인더섬을 하다가...
안온을 4월부터 갔는데 5월엔 책을 꽤 읽었으니 안온에 가느라..는 아니었다. ㅎㅎ
1. 파과
구병모의 소설으로 <아가미>만 떠올렸는데 <위저드 베이커리>가 있었구나.
뮤지컬과는 정말 달랐다. 그리고 뮤지컬을 먼저 본 게 정말 잘한 것 같았다. 순서가 많이 달랐는데, 뮤지컬은 그렇게 순서 구성을 해야만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책은 조금 더 자세하게 묘사한달까, 좀 더 서술이 많다보니 이해하기가 더 수월했다.
그리고 뮤지컬보다 좀 더 어둡고 좀 더 잔인한 것이... 위저드 베이커리를 다시 떠올리게 했고.
뮤지컬을 보면서는 엄청 오열했는데...... 책을 보면서는 감정에 휩쓸리거나 슬프고 눈물나고 그런 건 없고 오히려 머릿속에 "왜?"가 계속 떠있었다.
왜 투우는 손톱에게 그랬을까? 투우는 손톱에게 대체 뭘 원한걸까? 그녀에게서 뭘 그렇게 찾은 걸까?
과유불급 책모임에서 이 의문을 얘기했을 땐 투우가 진짜 사이코패스적인 사람같다고 했다. 음 그럴 수 있겠군. 이해가 가버림...
2. 스톤매트리스
리뷰이벤트 신청해서 받은 책.
2024.06.09 - [敖번 국도/책] - [스톤매트리스] 마거릿애트우드
받고보니 띠지에 <케빈에 대하여> 원작이 있다고 해서 오, 하고 기대하며 읽었으나 다 읽고 나서까지 어떤 글이 <케빈에 대하여> 원작인지 모르겠다.
마거릿 애트우드, 이름은 정말 많이들어본 작가이나 글을 읽은 건 처음이었다.
단편집인데, 처음 세 편이 연작소설처럼 이어지는 점이 재미있었고, 또 주인공들이 대체로 나이든 사람이라는 점도 되게 흥미로운 점이었다.
1. 패배의 신호
사강을 한때 정말로 많이 좋아했었다. 돌이켜보니 20대 초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진짜 좋아했었던 글인데, 이번에 율리가 읽고, 과유불급에서 다같이 읽자고 해서 나도 기억이 너무 흐려 다시 읽었다.
하지만 중간까지 읽고 5회차 모임 하고 멈춤 ㅋㅋ
2012.05.19 - [敖번 국도/책]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프랑수아 사강
율리가 이 글을 읽은 것 같아서 나도 다시 찾아봤는데 와.. 진짜 어렸다. 글부터. ㅋㅋ
2012년이니까,, 내가 그떄 소개팅하고 잠깐 만났던 사람을 나도 그 사람도 서로 사실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에게 진심으로 대하지 않으면서도 약간 전시성으로 서로를 계속 사귀고 있었던 시점이었던 것 같다.
책을 절반 정도 다시 읽고, 패배의 신호를 읽었는데, 확실히 이 두 소설에 대해 사강의 20대와 30대 때 시선이라고 말한 이유가 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예쁘고 잘생기고 돈 많고, 한 눈에 서로 반하고 사랑하고, 하는 사강 소설의 그 전제조건은 참... 공감하기 힘들었고^^
과유불급 책모임에서 다같이 말했듯 프랑스, 파리, 그리고 당시(1960년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알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게 사실인데, 그만큼 공감하기 어렵다는 뜻인것같다.ㅋㅋㅋ
하지만, 과유불급 책모임에서 얘기하다 생각한 것은 패배의 신호에서는 진짜 그 누구도 나쁘거나 흠잡을 사람은 없고, 단지 각자의 인생관이나 타고난 성격이 다를 뿐이다, 라는 걸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고, 이게 생각해보니 참 좋았다는 거다.
또, 사강의 심리묘사는 정말 엄청나게 대단하고...
남성의 시선으로 이 소설을 봤을 떈 어떤 느낌이 들까도 너무너무 궁금하고.
2. 작은 파티 드레스
1984books에서 나온 (지 좀 된) 크리스티앙 보뱅의 산문집.
1984books는 아니 에르노 책을 펴낸 것 때문에 알게 되었고, 아니 에르노의 글을 워낙 좋아해서 이 출판사도 좋아해왔다(글씨체가 예쁘고 종이가 두꺼워요).
그런데 작년엔가 읽었던 책이 산문집인 줄 알았는데 너무 시같지 않았나... 하고 리더스를 살펴보니 <어느 삶의 음악>이 보이고 이 책은 또한 너무나도 좋았었지... ㅎㅎ
보뱅의 글 역시 너무나도 시같고 음악같은 산문이었다.
서담숲에서 밤에 읽으려다 반쯤 읽고 숙취도 있고 집중도 안되어 덮었다가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마저 읽었다.
산문이긴 하지만 저자가 화자로서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삼자로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아서 특이하다. 누군가에게서 온 편지, 누군가에게서 들리는 소리, 어디선가 보이는 영상같은 것을 두고 나지막히 읊조리는 느낌. 하지만 실린 아홉 편의 글들 모두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랑'이다. 결국 남아있는 사랑. 이런 사람의 사랑, 저런 상황의 사랑.
책을 읽는데 이런 짧은 글이 왜이렇게 잘 안 읽히지, 했지만 맨 뒤에 편집자의 글에서 이 책은 잦은 숨고르기가 필요하다, 는 말을 보고 안도했다.
천천히, 그리고 찬찬히 읽고 나면 저자가 보여준 모든 풍경과 들려준 이야기 속 사람들이 마음 속에 잔잔하고 짙은 사랑을 갖고있다는 게, 입안에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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