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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시간 반이라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질 정도로 굉장히 힘들었다. 적나라한 육체와 시뻘겋게 피가 쏟아지는 장면은 정말 보기가 힘들었다. 이걸 보고 집에 가서 잠을 잘 잘 수 있을까 물론 결국 잘 자긴 했지만, 그런 생각이 심각하게 들었다. 시계를 봤더니 겨우 한시간 반이 조금 안 지난 때였다. 이걸 한시간 넘게 더 봐야 한다는 생각보다, 그 모든 장면이 불필요하거나 과하다고 느껴지지가 않는다는 게 더 힘들었다. 영상의 클로즈업과 대비도 굉장히 심했는데, 그것 또한 역겹지 않고 조화로워서 더 괴로웠다. 이런 장면들을 볼만하게 만들어서,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요즘 사람들은 얼마나 잔인하고 자극적인 취향을 가진 것일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그런 취향들, 그 취향에 대한 사회의 강압이 바로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문제라는 사실이 떠오르는 순간 경악하게 됐다.

예외가 없는 교체의 시간. 당신은 하나라는 걸 잊지 말라는 말. 나에게서 태어난 더 나은 나역시 결국 라고 했지만, 어떻게 그게 같은 나라고 볼 수 있는 걸까. 게다가 새로이 태어난 가 기존의 나를 바라보는 방식은, 늙고 더러운 물건 그 이상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하고 충격적인 사실은, “더 나은 나가 기존의 나를 없어져야 할 무엇, 자신의 삶을 방해하는 어떤 존재로 여기게 된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가 아니고 날 때 부터였다는 것이다. 나 자신, 그러니까 엘리자베스 스파클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던 혐오와 부정이 물리적인 신체가 분리됨으로써 드디어 표현 가능하게 된 것뿐이다. 내 뇌와 심장, 신체가 하나로 이어져 있을 때는 아무리 밉고 싫어도 자기 자신을 부정하지도 파괴할 수도 없다. 하지만, 신체가 물리적으로 분리되어버리니 얼마든지 혐오할 수 있고 괴롭히고 무시할 수 있어졌다.

, 아니 엘리자베스는 자기 자신의 뭐가 그렇게 혐오스러웠던 걸까. 그녀는 여전히 예쁘고 멋진 몸매를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이고 멋진 배우다. 그 누구도 그녀가 아름답지 않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실은 스스로도 그걸 알고 있다. 서브스턴스에 전화해 교체를 그만두겠다는 전화를 하고 난 뒤 더 나은 나()’가 치워버렸던 자신의 사진을 다시 끌어내는 것도, 물론 지금 현재의 자신을 이전만큼 사랑하지는 못하지만 분명 자신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엇이 자꾸 그녀를 의심하게 하는가. 바로 쩝쩝거리면서 새우를 먹는 하비다. 오디션장의 면접관이고, 흰 머리의 주주들이고, 옆집 남자다. 엘리자베스는 한때 자신을 사랑하고 찬찬하던 그들의 눈으로 자신을 보지 않는 데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이 모든 남성성은 하비라는 모체에서 출아되어 나온 개체처럼 보인다. 우글거리는 바퀴벌레 떼 같다. 수가 엘리자베스가 구겨서 던져버렸던 신문에 실렸던 오디션을 보러 갔을 때 두 명의 면접관이 했던 말은 꽤 의미심장하다. 코가 있는 자리에 차라리 가슴이 있는 게 낫겠다, 라는 말. 코와 가슴-그러니까 유방은 무엇을 하는 존재이길래 그런 말을 한 것인가. 그들은 사실 자기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이다. 후에 그들이 말한 그대로가 눈앞에서 이루어질 때 그들은 눈앞에 보이는 것을 죽이고 제거하려 한다. 얼마나 어이가 없는가.

무엇이 더 나은 나일까?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더 낫다라는 말 자체를 정의할 수 없을 것 같다. 마지막 장면에서 엘리자베스 스파클의 얼굴은 자기 이름 위에서 사라진다. 결국 한 줌 액체로 변해버릴 것이 대체 어떤 의미가 있어서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나, 싶을 정도로 순식간이다. 청소차량에 의해서 단 한 순간에 멀끔하게 지워지고 말 어떤 존재가, 무엇이 어디에 붙었나에 따라 그렇게나 다르게 인식되어야 하는가, 어떻게 그게 가능한 것일까. 엘리자베스와 수와 엘리자수에게, 엘리자수가 등장한 수의 연말 공연장을 찾은 모든 관객과 우리 모두에게 여러 번 되물어야 할 것이다.

사실 엘리자수의 모습을 봤을 때, 그가 절대 연말 공연장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엘리자베스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도 결국 실패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엘리자수는 무대에 오른다. 그 위에서 자신의 기괴한 육체를 마주한 사람들에게 여러분, 저에요, 수이고 엘리자베스라고요라고 외친다. 이제서야 자기 자신은 하나이고 예전에 사람들이 사랑했던 대상 그 자체라는 것을 스스로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몬스테로 엘리자수가 되어서야 엘리자베스, 혹은 수는 자기 자신이 하나라는 걸 깨달은 듯 보인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아도, 내가 나를 사랑하면 된다고 누구나 쉽게 말한다. 그게 더 중요한 사실이라는 걸 모두 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눈은, 몸짓은, 벽 뒤에서 하는 말은 그러지 않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 엘리자베스와 수와 엘리자수를 죽인 자들에게 다시 묻고 싶다. “그 말이 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 강렬한 핑크, 노랑, 그리고 시뻘건 색이 반복되는 영화에서는 중간중간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흔들리는 팜트리가 등장한다. 화면 속 팜트리는 한 그루였다가 두 그루였다가 세 그루였다가, 또 다섯 그루가 된다. 나무의 수가 변하거나, 바람에 흔들리느냐 조용히 있느냐하는 것이 엘리자베스의 내면을 보여준다고 하는 레딧의 의견을 하나 봤는데, 그럴 수도 있겠고, 이게 알프스-마리타임(프랑스)에서 촬영된 것이라고 해서 캘리포니아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촬영한 것이라고도 하는데 그게 다였을까, 싶다. 마지막 장면에서 엘리자베스 스파클의 얼굴이 하늘을 바라보는데, 이렇게 아래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엘리자베스 스파클의 별모양 발판이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하는 의견도 있었다. 난 이 마지막 의견에 그나마 가장 공감이 갔다. 그제서야 하늘을 보게 된, 세상이 자기를 사랑하던 때 박제된 그 발판과 하나가 된 엘리자베스는, 사실 언제나 존재하고 있었다고. 그걸 보여주려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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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olle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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