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쥬스.

日번 국도 2013. 11. 19.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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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가 날 땐 당근쥬스가 도움이 된다.

 

11살 때 여름방학 내내 부모님과 오빠와 전국 일주를 하고 돌아와선 거의 한 달 동안 매일 밤 코피를 쏟았다.

자는 중에 코피가 나기 시작하고 멈추지 않는 게 매일매일 반복되어서 나중엔 코피가 나도 에이 몰라 하고 목 뒤로 넘어가는데 그냥 무시하고 자버리기도 했다.

코피가 자꾸 날 때 당근쥬스를 갈아마시면 좋다고 해서 엄마가 매일 저녁 당근쥬스를 갈아주셨는데, 냄새에 민감해서 오이와 당근을 생으로는 절대 입에 대지도 못했던 11살의 나는 당근쥬스가 담긴 잔을 얼굴 근처에만 가져다대도 그 냄새를 참지 못해 구토를 하기까지 했다.

지금은 오이도 가끔 먹고, 당근은 아주 좋아라하기까지 하지만 말이다.

 

무튼. 페이스북에서 누가 코피가 자꾸 난다고 하길래 그 생각이 또 나서 코피엔 당근쥬스가 좋다고 댓글을 달았다.

 

댓글을 달고 나니, 참 답답한 마음이 드는거다. 당근쥬스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냥 아 이 말을 괜히 꺼냈나 싶고. 내가 말을 꺼낸 방식이 뭔가 잘못되었나 싶고. 그래서 내가 너무 멍청하게 느껴져서 울고싶다.

당근쥬스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오늘 하룻동안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하던 첫 눈이, 이도저도 아닌 반 쪽짜리 티켓이,.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지 말라고  하던데, 정말 내가 자꾸만 어렵게 생각하는걸까?
나를 좀 더 쉽게 받아들여주면 안되나? 이렇게 생각하면 안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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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olle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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