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영화 이벤트를 통해 시사회에 참석한 뒤 쓰는 리뷰입니다.
영화 <제보자>는 내일, 10월 2일 개봉 예정이라고 합니다.(다음 영화 검색 결과)
2014년, 나는 겨우 중학생이었다. 그 당시 우리 나라에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해 모든 뉴스와 신문을 장식했던 슈퍼스타는 아프리카에서도 간주만 나오면 춤을 따라 춘다는 아이돌도 이름만 대면 다 안다는 맛집 블로거도, 찬 바람이 인다는 이유로 빙판을 넘어 에어컨까지 정복했다는 아름다운 스포츠 요정도 아닌 한 과학자였다. 과학의 "과"자만 들어가는 곳이라면, 아니 과학이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는 곳이라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곳이라면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그 사람은 대한민국 모든 어린 학생들이 장래희망 란에 "과학자"라는 단어를 적어넣게 했으니 실로 엄청난 위력이 아닐 수 없다.
사실 5살밖에 안 되어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인 1995년, 우리나라는 대전에서 과학 엑스포를 개최했고, 나의 아버지가 고등학생이시던 80년대에는 대통령에 의해 과학과 공학 산업의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으며, 나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도 겪어보셨을 지 알 수 없는 문헌 속의 시간에서도 '과학자'라는 존재가 있었던 우리나라는 과학에 대해 대단한 관심을 가진 나라가 확실하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시공간적 관심에도 불구하고 과학 분야에 있어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과학자,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진 못한 것은 아쉬워도 너무 아쉽다. 그렇기 때문에 엄청나고 유명했던 그 과학자의 등장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지식'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손꼽히는 강대국이 될 수 있는 기회였다는 점에서 정말 엄청난 "황금열쇠"(?)였을 것 같다. 하지만, 그 과학자는 대중들이 기대했던 결과를 단 하나도 안겨주지 못한 채 몇 년 후 몰락하고 만다. 여기서 '몰락'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옳을런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글의 시작에서 언급했듯 난 단지 14살짜리 중학생이었을 뿐이고, 그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또 난 이 글을 통해 그 때 그 사건의 시비에 대해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 영화는 바로 이 과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모티브로 제작되었다. 영화의 시작부에 분명히 '사실을 기반으로 한 픽션'이라는 점을 언급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기억에 이 문구가 얼마나 남을런지 모르겠다.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던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 역시 '사실을 기반으로 한 픽션'아니던가? 하지만 그 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에게 실제 남은 것은 이 이야기가 사실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픽션'이라는 점이 아니라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은 대체 누구였을까,하는 의문과 영화 속 송강호와 김성경의 조합같은 경찰이 그 사건을 담당하지 않았더라면 범인이 잡혔을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께름칙한 느낌이었을 거다.
마찬가지로 이 영화 역시 당시 그 과학자에 대한 사건을 직접적으로 자세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경우 아 그 때 그 사건이 이런 식으로 진행됐겠구나,하는 인상만을 남길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본다. 특히 지금, 2014년이라는 시점에서 이 영화를 소비하게 될 대다수의 사람들은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나는 더욱 확신이 든다. 지금에 와서 그 때 그 방송, 그 때 발행됐던 기사들을 열심히 찾아볼 이유가 있을까? 개인이 가질 수 있는 단순한 호기심에서가 아니라면 그러기 위한 강력한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첫째, 그것은 이미 끝나버린 사건이다. 화성 연쇄살인사건과 달리 이 사건은 의문 없이 종결이 된 것이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의문을 가질만한 요소가 아주 적다. 사건 자체 뿐 아니라 사건에 연관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봐도, 그 과학자의 현재 거취가 모두 알려져 있는 상황에서 추가적으로 궁금증이 발생할 요소는 역시 적다. 둘째, 이 영화는 그 사건과 과학자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제목인 '제보자'에게 초점이 맞춰져있지도 않다. 이 영화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방송인들. 진실을 대중에게 드러내보인 PD다.
몇 달 전 일본에서 줄기세포 논문이 네이처에 발행되었다가 철회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보고 나는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이 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아마 이런 대중의 관심을 염두에 두고 이 시점에 개봉된 게 아닌가 싶다. 이 영화를 보고 우리는 과연 과학자들의 윤리의식을 의심해야할까, 과학자가 자기기만의 유혹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어떤 사회적 압박이나 환경에 대해 고민해봐야할까, 아니면 정치적 사회적 압박에 굴하지 않고 진실만을 보도하며 정의를 추구하는 방송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는걸까. 내 경우, 이 셋 중 어느 것도 아닌,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첫 번째 목적이 무엇이었을까, 하는 것이 제일 큰 고민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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