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월 부산에 갔을 때 '많이 달라졌다'고 느낀 곳이 한둘 아니었지만, 그 중 가장 충격적이라고 할 만한 곳은 온천천이었다. 한 아트북전문 서점을 가려고 온천장까지 갔던 건데, 그 골목과 동네는 다른 '달라진' 곳들과 느낌이 좀 달랐다. 여러 곳의 책방을 찾아다녔던 그 일정 중 첫 번째 책방이어서 그랬던건지도 모르겠다. 그 골목에는 빈 데가 굉장히 많았는데, 천변에 벚꽃이 가득 피면 공기까지 꽉 차서 사람 발 하나도 디디기 어려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직 물이 오르지도 않은 나뭇가지를 바라보는데, 벚꽃이 터져서 흩날리는 가득 찬 그 동네가 눈앞에 갑자기 선했다.
12월의 겨울(11월은 겨울이라고 해야할지 가을이라고 해야할지 분분하니까)과 2월의 겨울은 정말 다르다. 그 바람과 공기와 햇살이, 모든 게 다르다.
2월의 겨울공기에는 봄에서부터 날아온 꽃가루가 묻어있는 게 분명하다.
가벼운 찻잔에 담긴 카푸치노 거품은 정말이지 가벼워서 가라앉을 생각을 않는다. 일본에서 온 나루미(NARUMI) 커피잔이네. 일본에 가고 싶다. 아니 그보다 사실은 작은 공간을 여러 개 갖고 싶다.
부산 온천천의 벚나무 꽃가지들처럼 얼만한 공간이든 꽉 채울 수 있는 것은 자연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결국 인간은 아무런 공간도 채울 수 없다. 설령 작은 아기의 손 하나 겨우 들어갈만한 좁고 작은 공간이라도.
순댓국 냄새는 계속 나고, 회사 얘기를 쓰기 싫은 나에게는 회사 얘기에 대한 아이디어밖엔 없다. 속에 있는 모든 걸 쏟아내고 싶다. 충분히 텅 비었다고 느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