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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와 혼자가 모이면 더 이상 '혼자'일 수 없게 된다. 사진은 언제나 찍는 자와 보는 자를 동반한다. 사진 속의 그 어떤 '혼자'도 혼자로 남기 어려운 이유다. 혼자와 혼자가 모였을 때, 혼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로부터 사진은 만들어진지도 모른다. 혼자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누군가가 만들어낸 것이다.

 

1. 나에게 사진 찍는 방법을 알려주었던 한 사람은,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하나의 피사체만 담으라고 했었다. 사진에는 집중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피사체만 담기는 게 좋다. 피사체가 너무 많으면 주의가 흐트러지고, 사진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기 어려워진다. 이는 예술 사진, 상업 사진, 일상을 기록한 개인적인 사진 등 모든 종류의 사진에 해당한다. 복잡한 틀린 그림 찾기를 만들고자 하는 게 아니라면, 피사체는 단 하나만 두는 것이 좋다.

피사체를 단 하나만 둔다는 것은 사진 속 누군가를-그게 사람이든, 사물이든 혼자가 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럼 좋은 사진은 혼자일 때, 혹은 혼자인 대상을 촬영할 때 얻어진다는 얘기인 걸까.

보스토크 12<모두의 혼자>에 실린 여러 작가의 사진 중, 루카스 짐머만과 로라 판낙의 사진은 철저히 혼자가 된 사람들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역설적인 것은, 우리는 혼자인 사람의 사진을 볼 때 더 많은 이야기를 떠올린다는 점이다. 두 사람 이상이 함께 담긴 사진에서는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의 폭이 확 줄어든다. 이렇게 사람은 혼자일 때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더 많은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여 (적어도 관객의 마음 속에서)혼자인 상태에서 벗어나고 만다. 사람이 아닌 모든 것들은 쉽게 혼자가 되지만 사람은 아무리 애를 써도 혼자가 되기 어려운 것 같다짐머만과 판낙의 사진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 둘의 사진은 혼자이고 싶지 않은, 혼자인 사람들의 사진이다.

사진이라는 것은 혼자가 될 수 없는 인간을 기어코 혼자로 만들고자 발버둥친 결과인지도 모른다. 결코 혼자일 수 없는 사람을 사진이라는 순간 속에서나마 혼자로 가둬놓을 수 있도록 말이다.

 

2. "이제는 카메라 앞뒤를 자유롭게 오가는 젊은 여성 작업자들이 많다."

이 문장에서 다큐멘터리 '핫 걸 원티드'가 떠올랐다. 렌즈를 사이에 두고 찍는 자와 찍히는 자의 관계가 종속적으로 받아들여지던 때가 있었다. '핫 걸 원티드'의 한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누군가/어딘가에 종속되기를 바라며 또 그 상태를 편하게 느끼는 듯 보인다. 하지만, 정말 그들의 태도는 자발적이고 태생적인 것이었을까.

잡지에 실린, 카오리가 던진 질문을 떠올려봐야 하는 순간이다: "무엇이 예술인가?"

그들이 등장하는 사진이나 영상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 그것을 예술로 만드는 것은 누구인가? 이 질문은 사진을 촬영하는 사람, 또 사진으로 촬영되는 사람보다 사진을 소비하는 사람, 관객이 더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지도 모른다. 사진 속 혼자인 사람은 정말 그 자체로서 혼자인가. 사진을 바라보는 우리는 지금 그 사람을 '혼자'로 내버려두고 있는가, 돌아봐야 한다.

"너무 많은 디테일이 오히려 관찰하는 이가 본래 추구하려던 것들을 혼란에 빠뜨린다고 주장한다."

어쩌면 사진은 찍히는 사람보다 찍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혼자'가 투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대상을 철저히 '혼자'로 만들어 사진을 찍고, 보는 사람의 마음을 투영할 수 있도록 만든 무엇인 것이다.

 

사진 속 순간에서만큼은 모두가 혼자다. 하지만 이 문장은 사진을 찍는 사람과 보는 사람 역시 혼자이길 포기하지 않을 때에만 참으로 남는다. '혼자'일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혼자'의 사진을 볼 수 있다. 사진 속 '혼자'를 지켜줄 수 있다.

Posted by solle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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