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중. 요즘 답답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 건 후회되는 내 모습을 많이 발견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지쳤는데 끌려가는 데 핑계를 대고 싶은 걸까. 왜 하필? 이라기엔 그냥 그게 현실인지도.
하하버스가 아니라 그저 핸리맥헨리인지도.
그래서 4번도 5번도 아닌 1번에.
한국, 이공계에서 오랫동안 공부한 사람으로서 심채경 박사의 이야기에는 공감 되는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역시 이공계는 어쩔 수 없어, 싶은 부분도 많았던 건 좋은 감정이었을까 나쁜 감정이었을까.
요즘 들어 회사에서도 이 생각이 점점 자주 마음에 떠오르는데,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가장 많이 했던 생각과 말이 "여기서 성공하려면 진짜 세상 모르고 미쳐버린 과학자던지 아무 생각 없는 멍청이던지 둘 중 하나여야 돼. 그 중간이면 제일 괴로워." 이거였다. 근데 난 바로 그 중간에 있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좋아하는 것도 많은데 잘 되는 것도 많았던 사람.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천재도 아니고, 속으로 끝없이 고민하지만 겉으로는 잘 드러내지 않는 수재 정도. 겉으로 드러내 봤자 사람들은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천재인 척 애쓰는 사람. 평균적인 사람들보다 겨우 1센티미터 정도 앞에서 출발하는 애. 딱 그 정도라서 죽지는 못하고 죽을 만큼은 괴로웠다.
본인은 정작 겨우 1cm 앞이라 남들과 시야가 다를 게 없으면서 다른 사람들처럼 서로 간에 눈을 맞추지도 못하는 애매한 자리. 하지만, 남들이 보기엔 그 1cm가 100m 달리기의 10m는 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그런 자리에 내가 있었다.
모든 일은 우연히 일어나고, 거기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느냐는 각자의 마음에 달려있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것. 그것 참 bullshit이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예전에는 하고 싶은 게 많았다. 긴 인생을 두고 하는 말 뿐 아니라 당장에 먹고 싶은 것도 가보고 싶은 곳도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하고 싶은 게 없다. 어쩌면 하고 싶은 걸 찾을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기 전에 이미 해야 할 게 정해져 있으니까. 재미있는 일이란 게 따로 있지 않다는 걸 안다. 재미는 느끼는 사람의 몫이라는 걸 알면서도 뭐든 해보고 난 뒤 "재미없어" "시시해" "현타와" "노잼!"을 외치고 만다. 그러고 나서 돌아서 마음을 들여다보면, 왜, 그래도 재밌었잖아. 너 즐거웠잖아, 라는 목소리가 내면에서 들려온다.
얼마 전 영화 <아네트>를 봤는데, 거기서 헨리맥헨리가 관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왜 안과 결혼하기로 했냐고 묻는 질문에 "Abyss" 심연을 들여다봤다고, 그런 답을 했던 것 같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보고 넘겼던 대사였는데 지금 다시 떠올려보며 찾아보니 니체가 한, 악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사용된 유명한 표현이라고 한다. 과장과 자기자랑, 허풍으로 가득찼던 그래서 인기가 넘쳤던 헨리 맥헨리의 공연 제목은 "The Ape of God" 신의 유인원이었다. 보는 내내 멀미가 났던 영화인데, 읽던 책 속에서, 또 이어폰에서 나오던 노래 가사가 나를 향해 자꾸 비수를 꽂는다. "네가 바로 그 멍청이(장 프랑수아 마르미옹의 왜 내 주변에는 멍청이가 많을까)" "너 좀 짜증나 이제 그만해(015B의 고귀한씨의 달콤한 인생)"같은 말들. 그는 관객들에게 죽음을 주었고, 안은 관객을 위해 죽었다. 안은 자기 자신만으로 행복했고 아름다웠지만 헨리 맥헨리는 그렇지 못했다. 다른 사람을 죽이고, 그럼으로써 자신은 살았다. 어떤 대단한 상징이 아니라, 그냥 그랬다. 죽이지 않고는 살 수 없었다. 그 마음을 나는 알 것 같다. (2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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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데 이유가 없다는 말을 왜 사람들은 간과할까. 연인 사이에서도 왜 나를 좋아해? 내 어떤 점이 좋아? 라는 질문에 그냥. 다. 같은, 이유가 없다는 대답은 대답으로 여기지 않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달라졌을까? - 묻는다면, 성큼 그렇다고 답하긴 어렵지만 이 말은 정말 중요하다.
이유가 있는 좋아하는 마음에는 끝이 있으니까.
통조림처럼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냐는 말-을 오늘 멜론스테이션에서 들었다. 좀체 봤던 영화를 다시 보지 않는 편인데 요즘은 다시 보고 싶다. 크리스마스같은 날, 차가운 바깥에서 너나없이 서로의 체온으로 온기를 느끼는 사람들을 창밖에 두고 나는 방 안에서 따뜻한 이불을 덮고, 얼음을 넣은 술을 마시며 봤던 영화들을 눈물흘리며 다시 보고 싶다. 이미 다 아는 얘기라서, 그런데도 혹은 그러니까 더 깊이 슬퍼하며 엉엉 울고, 또 술기운에 울고 그런 날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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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걸 좋아하지? - 그게 일이든 사람이든 사물이든 어떤 생각이든. 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는 사람은 행복하기가 어렵다.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없어야 한다. 좋아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뿐이다.
오히려 무언가를 싫어한다면 이유가 명확해야 한다. 싫어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곰팡이같아서 아무리 닦아도 깨끗이 잘 지워지지 않고 끝없이 번져가기 때문이다.
누가 이런 걸 왜 좋아하지? 라고 생각할만한 것을 본인이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무슨 심보일까. 심보. 의도나 마음이 아니라. 무슨 심보일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것인지, 다른 사람은 쉽게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어떤 특별함이나 남다름을 부여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다.
기왕 좋아할 거면 편안하게 당당하게 좋아하면 안 되나. 또 좋아하는 걸 꼭 티내지 않아도 실컷 좋아하면 안되나. (2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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