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히틀러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만행을 직접 표현하기가 너무 괴롭고 힘들어서 "쥐"라는 캐릭터를 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양이와 쥐의 관계는 이 만화가 그려졌던 당시에 많이 쓰이던 소재라고 한다. 등장인물들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에 따라 구분하는 것(그렇게 함으로써 개인이 아닌 '나라'를 대표하여 말하게 하려고)이 유일한 이유가 아니고, 어떤 동물을 사용했는지도 의미가 있던 것이었다.
이 만화는 제 1차세계대전에서 아우슈비츠를 경험한 저자의 아버지 얘기를 담고 있다. 분명 1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 나치의 유대인에 대한 만행과 학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맞지만, 마냥 그 얘기 속으로 파고들거나 무겁고 힘들어지지 않는다. 이 모든 이야기를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다'는 식으로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 이야기를 전하는 인물인 아버지, 블라덱과 저자 아트 슈피겔만의 사이가 아주 돈독하거나 가깝지 않다는 점이(저자는 오히려 그래서 자신이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아버지를 너무 정형화하거나 아버지의 안 좋은 모습을 부각시키게 되는 것은 아닌지, 자신에게 그럴 권리나 책임이 없지 않냐며 고뇌하지만) 다른 어떤 책에서 다루는 것보다 히틀러 나치와 1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이 겪었던 참상을 더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느낌이 든다. 아버지가 전해주는 얘기는 분명히 주관적이고 단편적인 요소가 많다. 하지만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시 전해주는 아트 슈피겔만이 완전히 그의 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믿음이 가는 것이다. 아트 슈피겔만은 이 점에 대해 많이 걱정했지만, 사실 블라덱이라는 인물이 미국에 사는 백인 유대인 할아버지의 모습을 아주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점(유대인을 정형화한다기보다 사실 이 인물의 캐릭터가 확실하다는 것이다)은 이 만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라고 본다.
만화책을 거의 보지 않는 편이지만 좋아하긴 한다(그림책도). 그림을 좋아할 뿐이지 많이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잘 알지는 못한다. 아트 슈피겔만은 <쥐>를 그리고서 사람들이 내용에만 집중하는 것에 아쉬워했다고 한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 만화를 구성하는 방식은 확실히 특별한 점이 있다. 마치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초등학교 저학년 때 도이칠란드편 하나를 겨우 본 게 다지만)를 보는 듯 글이 많고, 글이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만큼 그는 만화를 그릴 때 구성과 배치를 매우 신경썼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칸과 칸을 넘어 이어지는 그림도 있고, 정형적이지 않은 순서대로 그림이 배치되어 있는데, 너무 자연스럽게 눈이 순서대로 움직인다. 얼마나 구성과 배치에 신경을 썼으면 이렇게 될까!
또, 선이 꽤 굵고 음영도 많이 들어가있어서 처음에는 '판화같다'고 느낄 정도였던 데다 얼굴이 다 동물이라 똑같은데도 불구하고 등장인물의 표정이 살아있다. 눈썹과 거의 점으로 찍혀있는 눈 모양만으로 표정이 다 달라보이고 생동감이 넘치는데, 그림을 보는 게 정말 재미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말 대단한 점은, 이 책이 히틀러 나치를 피해 도망다니고 숨어지내고 또 결국 아우슈비츠에 가서 생활했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그 상황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도면' 그림이 많다는 것이다. 건물의 구조, 단면도, 또 지도 같은 것들이 적재적소에 넘치지 않게 표현되어있어서 상황을 이해하는 데 엄청 큰 도움이 될뿐 아니라 읽는 재미를 배로 더해주었다.
단순히 그림이 자극적이고 빠르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풍부한 이야기를 담고 있고, 글로는 차마 다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담아내는 것이 만화책의 역할이고 좋은 만화책인 것 같다. 고뇌하고 힘들어하면서 이런 좋은 만화를 만들어낸 아트 슈피겔만의 다른 작품들에도 흥미와 관심이 무척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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