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에 출간된 제임스 홀리스의 책이다. 2023년에 읽어도 여전히 그리고 어쩌면 더욱 더 중요한 내용이다. 제목처럼 '사랑'에 대해서 얘기하기보다 '나'를 잘 인식하고 좋은 관계를 맺는 데 있어 우리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도록 도움을 준다. 사실 이것이 곧 사랑인지도 모르겠다.
내용 자체는 어렵지 않고 말도 되게 이해하기 쉽게 흘러간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 한 문장씩 읽어나가면서 내 모습이 나도 모르게 툭툭 떠올라 빠르게 다음 문장을 읽는 걸 방해하기도 했고, 또 어떤 문장을 읽을 땐 스스로 내 모습을 돌아보느라고 몇 분씩 머무르기도 했다.
책 내용은 관계의 종류에 따라서 챕터로 나뉘어있다. 원가족과의 관계, 커플(연인관계)이나 종교(신과의 관계) 등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지만, 끝까지 읽고 나니 오히려 관계맺기와 사랑이라는 것이 그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더 깨닫게 됐다.
제임스 홀리스는 '관계'라는 주제를 융 심리학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다른 유명한 심리학 이론(주로 프로이트의)과 함께 비교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심리학 이론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해도 읽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심리학에서 쓰이는 용어가 이해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다 읽고 나서 내 머릿속에 가장 중요하게 남은 것은 '투사'라는 말이었다.
책의 원제이기도 한 'Eden project'가 바로 이 '투사'라는 말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한다. 모든 타자와 맺는 관계에서 우리는 어떤 완벽하고 완전한 무엇, 에덴동산을 찾거나 이루는 걸 무의식적으로 목표한다. 연인관계는 물론이고 선택할 수 없는 원가족에서도 우리는 에덴을 꿈꾸고 있었고, 그게 바로 인간이라는 동물의 본성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대체로 완벽한 완전체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순적인 것은 이 사실 역시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매번 우리는 완벽한 관계를 이루지 못함으로 인해 불만과 어려움을 겪을까? 최종적으로 완벽하지 못함에 따라 스트레스를 받고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 앞 단계, 즉 우리가 '에덴'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해서라고 이 책은 설명하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문제, 불만만을 바라본다. 그 불만은 내가 이루고 있는 관계 속에 있다. 관계를 함께 이루는 상대방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얘기로, 상대를 바꾸어야 해결될 것처럼 보인다. 결국 '에덴'을 추구하는 나의 목표는 변화하지 않은 것이다.
시선을 바꿔서 내가 어떤 모습을 상대방에게 '투사'하고 있는지, 그보다 또 앞단계로서 내가 상대방에게 '투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바라봐야 한다. 나 자신을 먼저 이해하고, '에덴'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받아들이면(이것이 현실이고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사실 이걸 알고 있다. 받아들이지 않고 자꾸만 잊어버릴 뿐.)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나 역시 지난 관계들과 현재 내 상황을 얕게나마 돌아보며 관계 안에서 내가 '투사'를 했던 장면들을 떠올려봤다. 그리고 내가 불만과 어려움을 느끼는 순간들을 찬찬히 다시 생각해보려고 했다. 단번에 되는 것이 당연히 아니다보니 책을 읽다가 잠깐씩 멈춰서게 되었다. 제임스 홀리스도 말한다. 이같은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고(뤄진예의 말보다 훨씬 도움이 되었다...).
제임스 홀리스는 이 책에서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영혼'을 찾는 일이라고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상담사들이(1997년인데!) 영혼을 찾는 일을 안 하는 것뿐 아니라 영혼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 자체를 잊고 있다는 걸 지적한다. 아무래도 이것은 15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면서 개선되기는 커녕 더욱 심해진 게 아닌가 싶다. 마음 건강이다, 명상이다 여러 가지가 인기를 끌고 있지만 사람들은 진정한 '나 알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더욱 의문스럽다. 자기위안을 하면서 스스로 진짜 마음 속에 숨어있는 콤플렉스나 이 책에서 말하는 '아니마'같은 것을 들여다보고 확인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더 잘 덮을 수 있을지가 발달한 것 같다. 물론 그 방법이 어쩌면 더 나은 해결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오히려 진짜 필요한 해답을 찾았다, 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나 자신에게 너무 침잠해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외부에 어떤 보호막을 잘 쌓는 것도 아니라 관계에 있어 문제는 항상 같다는 것, 그리고 그 문제를 만들어내는 하나의 원인이 '투사'와 '완전체(에덴동산)'를 추구하려는 우리의 본성이라는 걸 찾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두고두고 내가 '투사'라는 말을 잊지 않고 자주 떠올리게 눈에 띄는 곳에 놓아두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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