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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말투가 원래 이렇게 단순하고 무심했었나, 라는 생각을 내내 했다. 엄마의 장례식에서도, 돌아와서도, 이 모든 이야기를 감옥에서 마지막날을 보내며 되돌아보는 주인공의 말투는 너무나도 무심하다. 특별히 퉁명스럽거나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저 이해를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한 뫼르소의 성격과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현대지성에서 이번에 펴낸 책의 말투가 너무나도 잘 드러내주고 있다고 느꼈다.

 

2013년에 썼던 독후감(https://solleap.tistory.com/329)을 다시 읽어본다.

 <이방인>을 처음 읽었던 때다. 그 유명한 첫 문장에 대한 놀라움이나 감상보다 책의 뒤에 실려있던 해설에 압도되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책을 읽은 지 딱 10년이 된 거다. 그 사이 내가 달라져서일 수도 있겠지만, 이번 책은 번역가가 달랐고, 그것이 현대지성에서 펴낸 이번 책을 읽어보기를 바라고 받아서도 기대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예전에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서로 다른 번역가가 옮긴 버전으로 두 권 한 번에 빌려와 읽었던 적이 있다. 내용은 분명 동일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말투가 느껴져 재미있었다. 그냥 슥슥 읽으면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얼마 전 읽은 <다정한 서술자>에서 올가 토카르추크가 말했듯 번역은 완전히 새롭게 이야기가 탄생하는 과정이다. 분명 다를 수밖에 없다.

 

책의 앞쪽에 번역자 유기환님이 접속사 '그리고'에 해당하는 프랑스어 'et'가 많이 쓰였고, 문장을 다듬으려 하기보다 카뮈가 썼던 원문의 맛을 그대로 살려서 옮기려고 많이 애썼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책을 읽어보면 문장이 길다거나 중문이다, 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오히려 문장이 정말 간결하다, 뫼르소의 짤막짤막하고 단순하게 사고하는 방식이 정말 잘 드러난다, 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모든 일을 연결지어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일에 대해 생각할 때 무의식적으로 연관을 짓고, 인과관계를 부여한다. 그래서 우리가 희한한 꿈도 많이 꾸는 것이다. 하지만 뫼르소는 그렇지 않다. 그에게는 많은 일이 그와 무관하게 일어나는 것이며, '이래도 상관없고, 저래도 상관없는' 일들이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게 아니다. 문장 안에서 '그리고'라는 말이 많이 쓰였더라도(내가 그렇다고 많이 못 느꼈고 기억에 남지 않았기에) 모두 서로 연관이 없고, 무관한 것들이라서 '그리고'로 연결된 것이며 아주 자연스러운 문장이 되어버린다.

 

이번에 읽은 판에도 맨 뒤에 번역자의 해설이 실려있다. 유기환님은 카뮈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한 학자인데, 한 명의 독자로서 나는 사실 이 해제와 생각이 다른 부분도 있었다. 특히 법정 장면에 대한 부분이다.

법정에서 뫼르소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고, 그들이 내린 결론 역시 자신에 대한 것인데 모든 것이 자신을 제외하고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는 철저히 '이방인'이 되고 만 것인데 이는 절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당하여진 것이다. 시종일관 세상의 대부분 것이 자신과 상관없는 것이었던 뫼르소가 이때는 무엇인가가 자신과 연관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고, 자신이 이방인으로 '처리당했다'는 걸 느낀 거라고 난 생각했다. 물론 스스로 이렇게 인식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말투나 태도 변화가 그렇게 느껴졌다. 그래서 사제가 감옥에 면담을 왔을 때에도 화를 내고 만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일에 대해 자신이 얘기하고 결정해야 자신의 삶이 되는 것이라는 걸 뫼르소는 날 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인간은 각기 주어진 운명이 있고, 그것은 외부에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도, 평가하거나 판단할 수도 없는 것인데 이 세상은 너무나도 그렇게-외부에서 왈가왈부하며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뫼르소는 거기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생의 마지막에서,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고, 그것도 타인에 의해서 그렇게(시간이 얼마 남지 않게) 된 것인데, 그 시간마저 또다른 타인이 와서 뺏고 있으니 흥분하여 그를 당장 쫓아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013년에 읽었던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 때 쓴 독후감을 읽어보면 뫼르소의 태도는 끝날까지 상관없다, 무관심하다,는 걸로 느껴졌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뫼르소의 태도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무심해보이는 태도의 원인이 마음 속 깊숙이 있었고, 그것을 깨달은 기분이다. 카뮈가 이런 모습의 주인공을 그려낸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이전에 읽었던 다른 버전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 과연 내가 달라져서인 것인지, 정말 번역이 달라져서인 것일지 궁금하다.

Posted by solle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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