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솔직하게 죽음을 다룬 작품, 이라고 했다. 세 편의 소설 모두 죽음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죽음을 맞이하는 상황이나 태도가 모두 다르다.
표제작인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알 수 없는 질병으로 통증에 시달리다가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이반 일리치의 시선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이 바로 묘사되는 것이 아니다. 첫 장은 이반 일리치가 죽어 그의 장례식을 방문한 친구이자 직장 동료의 시선이었다가, 둘째 장부터 이반 일리치가 죽기 전부터의 삶이 시작된다. 이런 구성때문에 이반 일리치에게 지나치게 이입되지 않고 외부에서 타자의 시선으로 그의 죽음을 살펴볼 준비가 된다. 그렇지 않다면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겠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내 든 생각은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몰라'였다. 어떤 명확한 병을 진단받으면 주위에서도 그 사람의 통증이나 괴로움을 좀 더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반 일리치는 통증을 분명히 느끼고 있으면서도 명확한 원인을 모른다. 의사도 여럿 만났지만 그 중에서 명확한 병을 진단해주는 이도 없다. 이런 이반 일리치의 마음과 상황을 정말 이렇게 아파보지 않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을까?
나 역시 아파본 경험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자주 오랫동안 아팠고, 최근에도 오랫동안 아팠는데, 병원을 가고 약을 먹는다고 이러한 통증과 괴로움이 가시는 것이 아니라서 더 힘들다. 통증과 괴로움, 불편함 따위를 오랜 시간-그러니까 개월이 넘어가는 단위의 시간 동안 느끼게 되면 주위 사람들도 지친다. 지치는 가장 큰 이유는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에서 이반 일리치는 내가 떠남(죽음)으로서 너희에게 자유를 주겠다, 는 얘기를 한다. 이 말이 얼마나 슬픈가. 아픈 그는 이해받지 못했다. 시종일관 옆에서 위로를 달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단순히 지금의 그 아픔과 통증을 이해하고 나를 그대로 받아들여달라는 것이었는데, 사람들은 그를 기만하고 속으로 다르게 생각하며 불쾌해했다. 이러한 것은 숨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 사람이 뭘 알겠어, 라는 태도를 더해 아픈 사람을 한층 외롭게 만든다.
이 소설은 나에게 있어 단순히 평생을 겉으로 보이는 '형식'과 '품위'를 유지하며 잘 살아오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알 수 없는 통증을 얻게 되고 그 이후 죽음을 받아들이고 죽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이상이었다. 알 수 없는 질병과 통증이라는 것을 안고 있는 사람의 심리상태를 이렇게나 잘 묘사한 이야기를 여태 읽지 못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죽음으로 나아가는 이반 일리치의 모습보다도, 그처럼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어야 하는 사람의 주변인들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어떻게 병자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야하는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이야기였다.
이어지는 <주인과 일꾼>은 좀 다르다.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다가 결국엔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 순간에서(라도) 주위를 돌아보고 사랑을 베풀고자 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결국 우리 모두는 어느 순간 피할 수 없이 죽게 된다는 것, 그리고 그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종교가 있든 없든, 인간다운 삶을 살고 주변에 사랑과 친절을 베푼다면 내 사랑과 친절을 건네받은 사람 안에 나는 죽어서도 남게 되는 것이다. 또 항상 그런 좋은 모습으로 살아오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더라도 내 모습이 나빴다는 것을 깨닫고 늦게라도 뉘우치고 가능한 때에 베풀면 되니, 나는 이미 글렀어 라거나 난 원래 그래, 같은 말은 변명거리도 되지 않는다는 것도 보여준다.
사실 <세 죽음>은 가장 짧기도 했고, 단편적으로 세 개의 죽음을 보여주는 데서 끝나서 특별한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다. 하지만 톨스토이가 죽음에 대해서 그 대상이 인간이든 자연이든, 병들거나 나이든 자든 건강하고 젊은 자든 가리지 않고 많이 생각했다는 것을 알게 해줬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나쁜 것도 약한 것도 아니다. 어느 정도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일이다. 죽음은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며, 사실 삶이라는 긴 선의 끝 점이나 마찬가지이고 삶과 분리되는 별개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어려서부터 가족의 죽음을 많이 겪었고 스스로도 우울함을 많이 느끼다 죽었다고 하는데, 비단 그래서 그가 이렇게 죽음을 많이 생각했다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우리도 역시 살아가면서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해야할 필요가 있다.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곧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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