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씨가 특별히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특별히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한다.
양평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어서 나도 문호리 리버마켓에 가보고 싶어졌다. 그가 그리는 그림을 더 보고 싶어서다.
이 책은 은혜씨의 그림뿐 아니라 짧은 시도 많이 실려있다. 시가 하나같이 예쁘고 따뜻하다. 아픈 마음도 가끔 담겨있지만, 그래도 다시 일어나고 웃으려는 은혜씨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여성의 얼굴 옆에는 "예쁘시는"이란 수식어가 많이 붙어있다. 은혜씨는 사람을 참 기분좋게 해주는 이 같다.
그의 그림은 정말 세밀하다. 보이는 그대로를 표현하는 능력이 정말 뛰어나다. 그런데, 그 그림의 표정이 하나같이 편안하고 솔직해보이는 데는 은혜씨의 힘이 당연히 가장 중요하게 작용했을 거다. 바로, 그림이 완성되길 기다리면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다. 은혜씨가 그린 얼굴들은 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표정이다.
사람은 자신을 볼 때 가장 솔직할 거다. 상대방-그러니까 내가 알지 못하는 대상을 짐작하고 생각하고 계산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자신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 알 수 있는 대상이다. 그러니 나 자신을 볼 때 가장 두려움이 없고 솔직할 수밖에 없다. 은혜씨의 그림 속 얼굴은 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보는 솔직한 얼굴이다.
그런 얼굴을 지을 수 있게 만드는 은혜씨의 힘은 정말 어마어마하다. 은혜씨는 그걸 알까?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다른 이들이 부러워 자기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은혜씨는, 이제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그림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나도 그래서 그에게 내 얼굴을 보이고 싶다. 내가 나를 보는 얼굴을, 나도 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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