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 전쯤인가 성곡미술관에서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전을 본 적이 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나 마크 리부같이 유명한 사진작가들의 전시를 몇 번 가본 적이 있었는데, 그들의 사진과는 느낌이 달랐다. 멋진 사진이 아니었다. 예술적이거나 이런 게 잘 찍은 사진인거야, 하는 면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의 사진은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찍은 사진이 대부분이었고, 거울같은 데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찍은 것도 있었다. 어디서 누굴 찍은 것이든 그 시선이 몰래 살짝 찍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더 사진 속 사람들과 장면이 사실적이고 생생한 느낌이었다. 마치 내가 사진 속 그 길에, 거울 앞에 서서 같이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사진작가나 기자가 아니었다. 그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기보다 살아가는 사람이었고, 살아가는 그 시간들이 사진으로 남은 것뿐이었다.
이 책을 보고 그때 사진전에서 찍었던 한 장의 사진을 찾으려고 외장하드며 SNS, 블로그를 모두 다시 열어봤다. 어딘가에 찍어서 남겨둔 것 같았던 그 사진전의 포스터는 비비안마이어의 코쯤부터 허리께까지가 찍힌 사진으로, 사진 속 입매는 무표정하고 손에는 그의 롤라이플렉스 카메라가 들려있었다. 그 사진은 결국 찾지 못했다. 아마 삭제했는지도 모른다.
비비안 마이어는 "유모"라고 불렸다. 그 전시에서도 비비안 마이어를 유모라고 소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장 오래 직업삼은 것이 유모였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영화나 책같은 데서 자주 접하던 유모의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지만. 어쨌든 그는 유모라고 불렸지만, 유모는 아니었고 유모처럼 사랑받은 사람이었다.
사실 이 책에 사진은 몇 장 없다. 사진이 궁금해서 책을 펼친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사진을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상태에서 보게 되면 이게 무슨 내용이지? 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 책이 그의 삶을 시간순서대로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그의 사진을 접해봤다면, 이 책에 실린 그림을 보면서 아 이게 그 사진인가? 생각하기도 하고, 그래 그 사진 뒤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을 수 있겠다, 라며 웃음지을 것이다. 내가 그랬고, 작가 파울리나 스푸체스가 그랬던 것 같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은 정말 눈을 뗄 수 없이 자꾸만 내가 그 사진 속 시간과 공간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스푸체스는 마이어의 사진을 보고 그 장면 속 이야기를 몇 컷의 그림으로 그려냈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에 대해서 남은 설명이나 그의 삶에 대해 자세한 기록은 남은 것이 없다고 알고 있다. 이 책도 픽션이라고 뒷면에 분명히 써있다. 하지만, 책 속의 이야기는 정말 현실같다. 그리고 그림에 대해 아는 것은 없지만, 수채화처럼 번지는 듯한 색과 표정이 드러날 것 같으면서 무표정한 것 같기도 한 인물들의 얼굴이 참 매력적이라고 느꼈다.비비안 마이어의 사진과 같은 느낌을 주는 이야기와 그림들이었다.
어쩌면 요즘의 '스냅사진'이나 '스트리트포토'의 시초가 된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 왜 그 사진에서 그토록 눈을 뗄 수 없었는지 이 책을 보면서 좀 알 것 같았다. 그 사진을 찍는 마이어의 마음, 이야기, 그리고 삶을 좀 더 상상할 수 있었다. 정말 좋은 그림이었고 좋은 책이었다.
(진심으로, 이런 책을 서평단 신청해서 공짜로 받다니...... 진짜 내게 온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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