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쉬룩이 무슨 뜻일까 궁금했다. 수메르어로 '상자'를 뜻한다는 이 말은 소설에서 기억 속에 숨겨진 행복하고 편안하기만 한 곳을 가리킨다. 그곳에서는 영원히 함께하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과 나만 있다.
표제작인 천선란의 쿠쉬룩만 아니라, 나머지 이야기도 모두 쿠쉬룩을 찾는 이야기였다. 서윤빈의 이야기 속 '연화'도, 서혜듬의 '영'도, 설재인의 '수최', 육선민의 이야기 속 엄마와 이혜오의 '나(윤영)', 천선란의 '엔릴'과 최의택의 이야기 속 '샤샤 (또는 아리엘)'도,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편안하고 싶어한다. 이들을 움직이는 건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다.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또 사랑이 많은 사람은 얼핏 겉으로 잘 드러날 것 같다. 하지만 이 등장인물들은 외적으로 볼 때 세상에서 가장 고립되어있어 보이는 이들이다. 주위에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고, 사랑을 받고 싶다거나 주겠다고 겉으로 표현하는 일도 거의 없다. 하지만 가만히 보고 있으면 사실 세상을 향한 그리움과 누군가와 사랑을 주고받고 싶다는 생각이 누구보다도 강하다는 게 느껴진다. 이들이 사랑을 그래서 얻었는지에 대해서 대답해주는 얘기는 사실 없었지만 ,그 마음은 누가 줄 수 있는 것도, 의식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이 등장인물들은 사랑을 얻으려고 무진 애를 쓰거나 고난을 겪는다기보다 사실, 사랑을 원하는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거나 드러내지 못하고 슬픔과 고통 속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식적으로 사랑을 하고(받고) 싶어! 라고 생각하는 인물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본능적으로 편안함과 사랑을 찾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이들을 보면서 마냥 슬프거나 안타까운 감정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랑이라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왜 우리는 굳이 '노력'을 해야 하는 걸까? 라는 생각만 떠올랐다. 우연과 반복이 겹쳐 자연스럽게 도착할 수 있어야 하는 곳이 사랑 아닐까, 싶은데 왜 사랑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그토록 힘겹고 어려워야 하는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어쩌면 의식적으로 사랑을 하고, 드러내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세상이 다 잘못한 것은 아닐까 싶었다. 지구를 잊고 화성에 가짜 지구를 만들어낸 <돌아오지 않는다>의 세상처럼,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가짜에만 너무 몰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스템 속으로 '증발'해버린 <쿠쉬룩> 속 사람들처럼, 언제고 떠난 적 없었던 '영'처럼, 그 자리에 자연스럽고 솔직한 그대로 있으면 되는데 우리는 그 방법을 오히려 다 잊어버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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