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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와 영주>에서 나온 말처럼 이 책에 실린 이야기 모두가 고생대의 화석처럼 어딘가에 늘 존재하고 있는 무엇에 대해 얘기하는 것 같았다. 단편집을 읽을 때면 꼭 거기 모인 이야기들을 한 번에 관통하는 주제가 있을 것만 같다.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의도적으로 많이 하며 읽으려고 하는데 이번에도 하나하나를 기억하기보다는 최은영 작가가 하려는 이야기가 항상 무엇인지에 대해 떠올리게 됐다. 작년 이맘때쯤 읽었던 장편 <밝은 밤>까지 떠올랐다.
최은영 작가의 이야기에는 여성과 조손관계가 항상 등장하는 것 같다. 맨 뒤에 있었던 심사평에서도 그런 얘기가 계속 나왔지만, 소재는 아주 새롭지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먹하고 진하게 감동적이다. 사실 <밝은 밤>을 읽을 때는 꼭 이렇게 여성서사에서 슬픔에 잠겨 눈물 흘리게 해야만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어 질려버리기도 했다. 엉엉 울고 난 뒤였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를 지어낼 수 있는 것이 최은영 작가밖에 없다는 생각을 이번에 했다. 그가 그릴 수 있는, 여성만이 드러낼 수 있는 어떤 감정이 존재한다는 걸 느꼈다.
손에 쉽사리 닿거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마음 안에 존재하고 있는 어떤 감정을 우리는 품고 살아간다는 걸, 그리고 그 감정을 굳이 드러내려고 애쓸 필요도 없지만, 없애버리거나 잊으려고 할 필요 또한 없다는 걸 생각했다. 마음 속에 그런 아픈 조각 하나 없는 사람은 절대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걸 확신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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