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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갖춘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왠지 가난해서 옷이 해지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데 아무렇지 않은 척 방에 앉아 책을 읽는 조선시대 선비가 떠오른다. 또는 전장에서 처참하게 지고 있는데 끝까지 용기를 잃지 않고 선두에서 칼을 휘두르는 장수라던지. 레이디 맥도날드의 모습은 이들과 좀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궁금한 이야기 Y>에 실제로 소개되었던 맥도날드 할머니의 실체는 아마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 사람이 특이해서라기보다 사실 이 세상 누구에 대해서라도 실체를 알아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소설에서 레이디 맥도날드는 현실의 맥도날드 할머니보다 조금 더 미화되고 조금 더 점잖게 그려졌음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 안을 들여다보려고 했던 한은형 작가의 마음에 약간은 공감이 됐다. 우리 모두 언젠가 그런 모습이 될 수 있다는 사실. 그렇게 사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그 누구도 말할 수 없는 것인데, 함부로 많은 이가 잘못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왜 그녀가 '그렇게' 되었는가에 대해 원인을 찾으려고 했다. 얼마나 거만한 태도인가.

그럼에도 평소 우리는 너무 쉽게 주위 사람들을 재단한다. 평가하고, 비교한다. 나 자신에게까지 그렇게 한다.

존엄을 갖춘다는 것, 품위를 지킨다는 것의 의미가 대체 무엇일까. 고급호텔 사우나에 가서 세신을 받고 목욕을 하고, 고급 재료로 만든 코스 요리를 먹고, 모범 택시를 타고 다니는 것? 유명 브랜드의 옷을 입고 외국어를 섞어서 사용하는 것?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레벨'에 도달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는 것?

이런 것들이 없다면 존엄하지 않고 품위가 없는 걸까? 몇천원 짜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하루에 세 끼를 다 챙겨먹지도 않으며, 하루 종일 몸을 쓰며 옷에 더러움이 묻고, 좁고 축축한 방에서 겨우 잠을 자는 그런 삶은 존엄하지도 품위있지도 않은 걸까?

사실 그 어떤 형태의 삶을 살더라도 사람은 존재 자체로 존엄해야 한다. 존엄이라는 것은 잃어버릴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품위란 것은 인간인 만들어낸 하나의 사치품에 지나지 않는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낸 새장에 자기를 자꾸만 가둔다. 그게 재미있는 놀이라도 되는 것 같다.

<궁금한 이야기 Y>에서 방영된 맥도날드 할머니의 모습과 방송에 나온 대화가 소설에도 많이 사용이 되었지만, 그녀의 실체와 소설 속 레이디 맥도날드의 실체는 어쩌면 전혀 다르다. 그리고 이 소설 속 레이디 맥도날드는 참 맑고 투명하다. 자신의 삶에서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자기 자신밖에는 없다. 오로지 자기를 잃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 그녀는 살아갔을 뿐이다. 죽지 않으니 살아있었고, 살아있는 동안 그렇게 자기를 지키다가 죽는 순간에까지도 그 모습으로 멈췄다.

작가가 레이디 맥도날드의 모습을 통해 어떤 더 깊은 얘기를 하고 싶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책의 뒤편 작가의 말에서 했듯이 언젠가 우리도 그녀의 모습처럼 될지 모른다는 마음은 어떤 느낌이었을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존엄이나 품위같은 건 사실 정의내릴 수 있는 어떤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단지 그게 어떤 모습이든 우리는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것, 그걸 잊으면 안 되겠다는 그런 느낌 말이다.

Posted by solle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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