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황소웅 교수님의 '읽기와 토론 특강<인문>' 수업을 듣고, 마지막(이자 하나 뿐이었던)과제로 독후감을 썼다.
블로깅 평소에 하는 것에 비하면 양이 좀 많은 듯 싶지만! 그대로 업로드, 일단.
‘엄마를 부탁해’는 다른 소설들에서는 보지 못했던 특이한 화법을 사용하고 있다. 처음 읽을 때는 대체 누가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말투의 화자가 나온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듯한 시선이지만, 지켜보고 있는 주체가 드러나질 않는다. 독특한 화자의 시선 때문에 소설의 내용 자체뿐 아니라, 그 화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좀 더 집중하게 되어 읽는 재미가 있었다.
생일을 맞이하여 엄마와 아빠가 서울에 사는 자식들을 찾아왔는데, 아빠가 서울역에서 엄마를 놓치게 되고, 잃어버린 엄마를 찾기 위해 가족들이 노력하는 이야기는 딱히 특별하거나 눈길을 끌 만한 소재는 아니다. 마지막에 가서 엄마를 극적으로 찾게 되는 것도 아니고, 엄마가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라는 간접적인 암시를 주며 소설은 끝이 나는데,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그 사실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는 점이 이 소설을 흥미롭게 만들었던 것 같다.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그 사건으로 인해 소설은 시작되지만, 실제로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은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것과 엄마를 다시 찾기 위해 가족들이 애쓰는 과정이 아니라 엄마를 잃어버린 뒤 가족들이 엄마라는 존재에 관해 가지고 있던 기억들과 항상 그 자리에 있었기에 평소엔 생각하지 않고 지냈던 ‘엄마’에 대한 잊혀진 감정과 생각들이다.
실제로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뿐 아니라, 나 역시 엄마라는 존재는 당연히 항상 같은 자리에 있고, 내가 필요로 할 때마다 항상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라고 느껴왔던 것 같다. 지금까지 자라오면서 내가 필요로 할 때뿐 아니라, 굳이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도 먼저 알고 날 보살펴준 사람이 바로 엄마이기 때문에. 하지만, 엄마 역시 엄마이기 전에 자신만의 꿈이 있고 인생이 있는 한 여자이다. 이 사실은 엄마가 나의 엄마가 된 이후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그런 엄마를 얼마나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 인정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어렸을 땐 엄마의 관심과 간섭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면서, 조금 자란 뒤에는 내가 원하는 그 선보다 조금만 더 엄마가 나에게 간섭하려는 듯 하면 발끈 화를 내고, 내 인생에 엄마가 끼어드는 것을 원하지 않아했다. 정말 이 책에 나온 인물들과 꼭 같이 엄마가 사실은 나의 것이 아니라 엄마는 ‘나’에게 관심을 가졌던 것인데, 나의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귀찮아하고, ‘엄마는 몰라도 된다’거나 ‘엄마는 말 해줘도 몰라요’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중학교 때 국어 시간에 읽었던 한국현대단편소설 중 지금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 어떤 소설이 기억난다. 아들이 아내와 함께 시골의 어머니 댁에 내려갔는데,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어머니 집도 지붕을 갈게 되었는데, 어머니는 갈지 않으려고 고집을 부리고 있어서 어머니와 아들이 실랑이를 했었다. 그리고 이 아들은 매 번 내려갈 때마다 오래 머무르지 않고 일 때문에 바빠서 항상 금방 돌아왔었는데, 그날 밤 따라 잠자리에 누웠으나 잠이 들지 않는 것이었다. 어머니와 아내 역시 잠이 들지 않고, 둘이 얘기를 두런두런 나누는데, 어머니가 아들이 어렸을 때 있었던 얘기를 해주는 것이었다. 아들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 도시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아들을 보내준 뒤 역에서 집까지 털레털레 혼자 걸어오셨던 얘기, 세간살이를 다 팔았지만, 아들이 집에 돌아오는 날에는 이부자리며 문갑을 그것을 팔았던 집에서 다시 빌려와 아들이 편안하게 집에서 쉬다 갈 수 있도록 했었던 이야기를 해주는데, 잠든 척 하고 있던 아들 역시 이 이야기를 다 듣는다. 그는 어렸을 적 객지에 나가 학교를 다니며 지내고 성인이 된 뒤에도 홀로 도시에 살며 독립했기 때문에 자기는 어머니에게 어려서부터 받은 것이 없다고 생각을 해왔다. 자신은 어머니에게 지고 있는 빚이 없으니 어머니를 보살펴드릴 의무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마음 한 켠에는 그런 자신의 생각과 행동들에 대해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이 소설을 읽었던 중학생 때 나는 한창 내가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 빠져 엄마가 나에게 간섭하는 것에 잔뜩 불만을 품을 때였다. 그래서 어머니가 자신을 돌봐준 것을 하나의 빚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은 “빚이 없다”, “어머니와 자신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으나, 밤중에 아내와 어머니의 대화를 들으며 어머니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 내 존재의 이유가 되어주시고,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에게 우린 절대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 주인공의 모습이 마치 나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엄마를 부탁해>에서 보면 첫째 딸, 첫째 아들, 남편, 막내 딸의 이야기가 차례로 나온다. 이 중에서 나는 막내 딸의 이야기가 가장 마음이 아팠다. 막내 딸은 다른 자식들과는 달리 엄마가 그리 많은 간섭을 하지 않고, 가장 자유롭게 자랄 수 있게 한 자식이다. 그리고, 자식들이 다 자란 뒤 엄마에게 그들의 세상을 보여주고 공유하려고 했던 유일한 자식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다른 자식들처럼 어렸을 때 엄마에게 간섭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년기에 부모님이 나의 일에 대해 얼마나 간섭을 했느냐와는 상관 없이 나를 태어나게 하고 지금까지 자랄 수 있게 해준 것이 부모님이라는 것은 모두에게 해당하는 사실이다. 이 사실 때문에 나라는 사람과, 나와 관련된 모든 것이 지금 여기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부모님께 한없이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사실 이 점은 네 사람의 이야기 모두에서 느끼게 된 생각이지만, 내가 특히 막내 딸의 이야기를 읽을 때 가장 마음 아팠던 이유는, 네 명의 가족들 중 막내 딸의 모습에서 내 모습이 가장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엄마는 내가 기숙사 생활이 3년째인데도, 대학에 와서 기숙사에 짐을 옮긴 뒤 나를 두고 집에 가시며 펑펑 우셨다고 한다. 나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하고, 부모님과 떨어져서 사는 것이 독립적인 것이고 자랑스럽다고 느꼈지만, 엄마에게 난 ‘아직까지도’가 아니라 평생 동안 지켜봐야 하고, 눈 앞에 두고 싶은 엄마의 아이인 것이다. 또, 엄마에게 난 아직 어린아이이지만, 그래도 다 큰 자식이기 때문에 나와 멀어지지 않고 계속 가까이 있으려고, 나를 이해하고자 하신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하는 것들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엄마가 어렸을 때와는 달라진 지금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하신다. 이 책에서 엄마가 막내의 손을 잡고 장례행진에 갔을 때, 무엇인지 굳이 그걸 이해하지 못했지만 딸과 함께,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그 아이의 세상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중요했던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내가 대학생이 된 뒤에 엄마가 나랑 둘이 어디에든 놀러 가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몇 번 있다. 1학년 때는 대학생이니까 이제 나도 독립한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과 그러니 집에서 좀 더 벗어나고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에 엄마의 이런 말을 못 들은 척 넘어갔는데, 그런 생각을 했던 내 자신이 너무 어렸던 것 같고,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엄마의 입장에서 엄마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 독립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엄마(혹은 가족)에게서 벗어나고, 떨어져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것은 가족들에게 바라고 기대만 해서 상처받고 벗어나고 싶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더 챙겨주고 사랑하면서도 서로의 독립된 인생을 이해하고 지켜주고, 또 지지해줄 수 있는 관계로 변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내 인생에서 엄마라는 존재를 밀어내는 게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자라오면서 엄마가 나에게 엄마의 세상을 보여줬듯, 새롭게 생겨난 나의 세상을 엄마에게 보여줄 의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름 방학에는 꼭 엄마와 함께 가까운 근교에라도 나가서 엄마와 맛있는 것도 먹고, 그 동안 하지 못했던 소소한 이야기들을 천천히 오랫동안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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