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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 일이 있고 난 뒤에, 내 상황이랑 정말 "똑같은" 상황을 얘기한 소설을 읽고 싶었다.

그런 소설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느냐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억지를 부려가며 그런 소설을 찾아 서가를 헤집고 다녔다.

그러다가 지나다니면서 여러 번 마주쳤었던 이 소설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내용일까 꺼내서 표지 안쪽을 살펴보는데, 정말 놀랐다.

내가 찾던 소설이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정리가 되질 않았다. 그래서 좀 '읽고'싶었다.

 

시작될 즈음에 이런 트윗을 한 적이 있다.

진짜 '마음'이 아닌 것은 다 가짜.

그 마음이 진짜냐 가짜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머리로 만들어낸 생각-얼마든지 의식적으로 나를 속일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닌

정말 '마음'이란 게 존재해서 그것으로부터 나온 것이냐가 중요한 거라는 얘기를 하고싶었던 거였다.

 

좋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랑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

얼핏 한 번만 읽으면 이 말 그냥 말장난처럼 느껴지겠지만, 아주아주 다른, 완전히 다른 얘기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이 책의 제목에서, 마지막의 점 세 개가 물음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과장하지 않고, 책의 표지를 보는 순간, 점 세 개가 찍혀있는 게 눈에 들어와 책을 집게 된 것도 있으니까.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여부를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브람스를 좋아했으면 좋겠어요." 혹은, "당신은 브람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난 생각하고 싶어요."

자신없지만. 안 될 거라는 것, 해피엔딩은 아닐 거라는 것이 뻔하게 보이지만.

그래도 사랑해서.

 

이 제목 자체가 벌써 모든 걸 말해주고 있다.

시작할 때 시작을 보지 않고 끝을 보는 바보같은 짓.

검은 천으로 마음을 둘둘 싸놓고 마음은 바깥을 절대 바라볼 수 없게 만드는 그런 바보같은, 어리석은 짓을 비웃는 것.

 

이 책의 줄거리에서는 소소히 말할만한 게 있진 않다.

세 사람이 등장하고, 그들이 서로 다소 얽힌 관계로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이야기의 결말은, 애초에 흘러가던 대로 흘러가서 끝난다.

 

마음은 속이려고 해도 속일 수가 없다.

다만, 내가 그 '마음'이라는 놈에게 신경을 안 쓸 수는 있다.

얼마든지 무뎌질 수 있다. 무뎌져서 그야말로 신경을 안 쓰는 상태가 되는 것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음이라는 게 사라지질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언젠간 걸려 넘어지게 만드는 거다.

신경쓰지 않고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나중에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또, 그 마음의 상황에 알맞은 행동을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좀 더 어색해질 뿐이다.

내가 내가 아닌 기분. 그런 바보의 상태를 좀 더 오래 거쳐야 하게 되는 것.

남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스스로 바보라는 기분을 느껴야하는 게 값이 되는 거겠다.

 

여튼, 아닌 건 아닌거다. 좋은 게 좋은거다 가 아니라, 아닌 건 아닌거다.

그칠 줄을 아는 것. 知止.

앞으로 나아가는 것, 좋은 것, 이런 긍정적(으로 보이는?)인 것 말고, 우리가 흔히 부정적이라고 보는 것들이 사실 더 중요하고, 어려운 거다.

그것들을 잘 아는 것, 잘 하는 게 진짜 지혜인 것 같다.

 

아파하진 않을 거다.

아닌 걸 아니라고 깨닫는 데 이 정도 시간이면, 음. 그래. 그리 오래걸린 것도, 아까운 시간도 아닌 것 같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이 책을 쓴 작가 프랑수아 사강은 그리 오랜 결혼생활을 하지 못하고(못했다고 해야하나 안했다고 해야하나) 이혼했다고 하는데,

"나는 새벽 4시에 잠자리에 들고, 그는 아침 7시에 일어나 말을 타러 간다."

그녀가 이혼의 이유로 한 말이라고 한다. 하- 정말 기가 찼다. 이 한마디면, 그야말로 '족하다'.

약간 비판적인 태도? 독립적인 분위기?

이 작가한테 풍기는 그 냄새가 뭔가 마음에 들었다.

Posted by solle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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