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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할 때부터 사람들의 인기와 관심을 많이도 받았던 영화.

건축학이라는 학문은 예전부터 사람들에게 예술적이라는 인식과 함께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어왔던 것 같다.

일단 이 영화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건축학'이란 것에 대한 이 막연한 동경과 선망을, '대학 신입생'이라는 또 하나의 설레이는 단어 안에, 첫사랑에 대한 동경과 선망과 함께 잘 버무려 채워넣은 영화였던 것 같다.

(써놓고 보니 무슨 알 수 없는 맛의 설레이는 만두를 묘사한 기분이 드는군-.-ㅋ)

 

여튼, 나에게 있어서 이 영화는 '참 정신없는 기억'이다.


영화만을 놓고 본다면 너무 마음에 안 들었다. 음..사실 영화가 마음에 안 들었다는 게 아니라,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영화에 나오는 인물이 너무 마음에 안 들었던 거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한가인이 맡은 역할이 나는 너무 마음에 안 들었다.(본 지 오래되어 인물 이름이 기억이 안 나 배우로 그냥 얘기하겠다.)

대학 시절 얘기는 예뻤다 마냥. 순수하고, 솔직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말 있음직한, 그런 현실적인 얘기라서 좋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엄태웅을 다시 찾아온 한가인은 정말이지 "너무 마음에 안들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엄태웅을 사랑한 것도 그리워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과거에 그녀가, 그리고 그가 그녀를 사랑했었던 사이었기 때문에, 현재의 외로움에 대한 대책으로 다시 '사랑받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엄태웅을 찾은 것 뿐이다.

그에게 다시 돌아가면 아주 조그만 변화나마 없을 수는 없을거란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솔직하게 그녀 안에 그 어떤 사랑이나 감정이란 것 자체가 이제는 존재하고 있지 않다, 과거의 기억 속에 자리한 그 때의 달콤하고 설레이는(사실 이 기억이 달콤하고 설레이는 것은 그 과거에 존재하고 있는 순수함과 솔직함 때문이지만.)감정의, 그 "달콤한 맛"이 그녀는 단순히 '그리웠을' 뿐인거다. 1차적인 욕구로서의 그리움이었을 뿐인거다!

이렇게 해서 그녀가 결국 얻을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그녀의 등장으로 인해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그녀를 향한 마음이 아직 그의 마음 밑바닥에 껌딱지처럼 붙어있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아무것도 남들 앞에 내세울말한 물질적인 것이 없어진 지금 자존감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었던 거였을테다.

어찌보면 마지막 발버둥이라고도 생각되어서 가엾고 안된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난 그녀가 정말 엄태웅을 사랑했던거라면, 그리고 친구로 여기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있긴 한거였다면 그래선 안됐다고 생각한다.

잠시였지만, 그리고 감정이 있어서 그랬다기보단 과거의 기억때문에 그랬던 것일 뿐이지만,

엄태웅에겐 지금 그 때의 과거와는 얽매여있지 않은 삶이 흘러가고 있는데 그것이 방해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난 그녀가 너무 싫었던 거다. 그냥 좀 밉거나 별로다- 가 아니라, 정말 싫었다.

 

누구든 한번쯤 현재는 너무 힘든데 과거의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는 걸 멈출 수 없어서 '다시 그 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하고 생각해본 경험이 있을거다. 꼭 현재가 그리 힘들지 않더라도 지나간 과거 속에서 너무 행복한 나의 모습 때문에 그 때의 그 행복함, 그 감정들을 다시 불러오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을거다.

하지만, 현재는 현재로 살아내야 하는거다. 지나간 것들에 얽매여서 다시 그것이 '반복'되기를 바라선 안된다. 지나간 것을 다시 불러내고 그것이 똑같이 반복되길 바라기만 한다면 절대 앞으로 그 순간보다 더욱, 아니 그 순간 정도로 행복한 순간 조차 만들어낼 수 없게 된다.

물론, 지난 그 과거의 순간보다도 못한 시간들만 계속 만나게 될 수 있다. 물론이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늘 어떤 큰 가능성이나 확신이 아니라 캄캄한 어둠 속에서 바늘구멍만한 빛줄기 하나를 보고 살아가는 것 아닌가? 아주 작은 겨자씨만 한 것이라도 가능성과 희망이라는 것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 우리는 현재를 살고, 미래를 향해 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한번이라도 왜 지나간 순간이 더욱 값지고 아름다워보이는것일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ㅡ 우리가 그렇게 느끼는 순간은 현실 속에서 우리가 나태해지고 안일해지기 시작하는, 바로 게으름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과거는 "그 때 행복했었다." 라는 그 기억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는 거다. 딱 그 뿐이라는 거다. 그것은 말 그대로 '과거'일 뿐이기 때문에 그 이상의 어떤 가치도 가지고 있지 않고, 가질 수도 없다.

우리가 게을러지는 그 순간,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버린 체 하고 스스로를 속이며 그 기억 속에 파묻히려고 한다.

잠깐의 위로는 괜찮다. 하지만, 과거 속으로 한없이 파묻혀들어가면 아침에 일어나기 싫은 이불 속에서처럼, 깜빡 잠이 들어버릴 수도 있다. 1분이 1초같이 느껴지는 그 잠속으로 말이다.

과거란 것은 과거에서 충분히 즐겨졌어야 하는 거다. 과거를 현재에 즐기려고 하면 현재가 충분히 즐겨지지 못하고, 이것은 또 과거로 남겨져 미래에서 즐겨져야 할 거다. 식은밥을 먹으며 새 밥을 짓고, 새 밥은 또 식은 밥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거다.

좋은 기억은 좋은 기억대로 충분히 행복하게 즐겨져야 하는거고, 나쁜 기억 역시 과거에서 충분히 아파지고 배울 것이 있었다면 그 순간에 깨달아졌어야 한다. 시간이 지난 뒤 한번 쯤은 다시 오랜 시간 곱씹어볼 수도 있겠지만, 과거를 분석하고 한 번 갔던 길을 또 걸어보느라 현재를 놓쳐버릴 정도로 시간을 보내면 그것만큼 어리석고 안타까운 일이 없을 거다.

영화에서 마지막엔 한가인도 새로 자리를 잡고 새 삶을 시작하게 되지만, 그녀의 과거 속 사람인 엄태웅이 흔들리지 않고 현재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가인 역시 과거에 안일하게 파묻히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과거, 또는 기억이라는 그 이불은 생각보다 훨씬 폭신하고 부드러워서 왠만하면 빠져나오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겠다.

씁쓸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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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olle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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