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교보문고 전자도서관을 통해 처음 본 책이다.

박완서씨의 글은 고등학생 때 역시 수필집이었던 <너무도 쓸쓸한 당신>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딱히 재미가 있다고 느꼈던 것 같진 않았는데, 이번에 읽은 이 책은 정말로 '재미'가 있었다.

그의 수수하면서 아이같은 말투와 생각, 마음들이 너무 따뜻하게 다가왔다.

우리 엄마와 닮았다고 느껴졌던 그의 글을 읽다 아무것도 아닌 얘기에서 울컥울컥 눈물이 나려고도 했다.

 

작년부터 몸이 좀 약해지신 우리 엄마는 내가 기숙사 생활을 했던 고등학생 때, 주말을 집에서 보낸 뒤 월요일마다 학교가는 가방 안에 작은 카드를 써서 넣어주셨다. 정말 2년 내내 하루도 빠지지 않고말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우리 엄마를 자꾸 생각나게 하는 박완서의 말투와 글 속에 녹아나는 그의 모습 때문에. 엄마 때문에 눈물이 자꾸 치밀었던 것 같다.

우리 엄마도 강해보이지만, 되게 소녀같고, 아이같은 분이시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본 박완서 역시 나이도 할머니뻘이고 힘든 일도 많이 겪었지만 아이같았다, 그것도 "너무".

또 한 가지 마음에 들었던 점은,

그는 딱, 있는 만큼만 있는 체 한다는 거였다.

없는 것,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있는 척 잘난 척 하는 것은 정말 보기 싫다.

근데, 이만큼 잘난 사람이 겸손하게 군답시고 그보다 못난 척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보기 싫다.

그런데 박완서는 딱 자기 잘난 만큼 그 만큼만 잘나하고, 못난 데는 못난 딱 그 만큼만 못나했다.

그런 그가 마음에 들었다.

 

한 달 전 쯤에 김훈의 칼의 노래를 절반 읽었는데, 칼의 노래나 남한산성의 내용에서 미루어짐작했던 김훈의 모습과 너무나 달랐던, 글 속에서 내가 발견한 그의 모습과 더욱 대조적으로 느껴져서 더 좋았는지도 모른다.

많이 꾸미거나 애써서 다듬지 않은 문장들. 진짜 푹 고은 된장찌개같이 자글자글 진한 냄새를 풍긴는 그의 표현과 단어 하나하나들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책을 읽으며 한 단어를 배웠다. '구메구메'.

누군가 박완서에게 바리바리 물건을 싸줬던 얘기들에서 이 단어가 자꾸 등장했는데, 그래서 더 느낌이 따뜻했는지도 모르겠다.

 

결코 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린 아이같은. 그래서 어딘가에서 누가 등을 보이고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으면, 꼭 나타나 앞에서 두 팔을 붙잡고 해맑게 웃어줄 것 같은 사람.

꼭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사람. 책이었다.

'敖번 국도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가미] 구병모  (0) 2012.06.27
[60초 소설] 댄 헐리  (0) 2012.06.27
[카라멜 팝콘] 요시다 슈이치  (0) 2012.06.14
[파우스트] 괴테  (0) 2012.06.11
[분홍주의보] 엠마 마젠타  (0) 2012.06.09
Posted by sollea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