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먼저. 이 책에 대해 기록하면서 꼭 하고 싶은 말은,
'이 책은 번역이 너무 잘 된 것 같다'는 거다.
물론 나는 영어를 매우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도 아니고, 번역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책을 읽으면서 저 생각이 내내 들었다.
우리말로 쓰여진 문장들과, 무엇보다도 대화체에 사용된 말투들이 너무너무 자연스럽고 상황에 적절하여 너무너무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책을 읽는 내내 나를 두 배로 행복학 해준 번역가는 '이종인'씨라는 전문번역가이신데,
다른 폴 오스터의 작품들도 여럿 번역하셨다고 되어있어 꼭 찾아 읽어볼 생각이다.
폴 오스터의 '보이지 않는'은 총 4부로 구성되어있는데,
각 부에 따라 시점이 달라진다.
1부는 1인칭 주인공, 2부는 2인칭 관찰자, 3부는 3인칭 관찰자, 4부는 역시 3인칭 관찰자이지만, 관찰자가 관찰하는 대상이 달라지면서 다시 1인칭 관찰자(Journal)시점의 이야기가 나온다.
제목인 '보이지 않는'은 책 전체에 걸쳐 딱 한번 직접 언급되는데,
바로 이 "시점"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서 등장한다.
2인칭 관찰자 시점 혹은 3인칭 관찰자 시점의 시선에서, 관찰되는 대상이 또 다른 무엇 또는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 된다면, 그것은 사실 1인칭 주인공과 같은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다.
내가 내가 아니지만, 남도 남이 아닌 그런 상태가 되는 거다.
바로 이 상태가 내가 '보이지 않는'상태가 되는 거다.
이 소설은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시점을 이동시켜가며 나라는 사람의 1년 간의 삶에 대한 아주 기이한,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어느 하나 기이할 점도 없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가 요즘 반디앤루니스에 자주 가서 조금씩 읽고 있는 '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북클럽'이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에서 달라이 라마의 강연에서 들은 내용이 잠깐 나온다.
거기에도 보면 이처럼 모순되는 듯한 표현이 나오는데, 그 표현을 정확하게 기억해서 옮겨적을 수는 없지만,
(고통이되 고통이 아니고, 살아있는데 살아있는게 아니고 뭐 그런 것이었다..)
그 부분을 읽었던 것이 이 책 한 권을 다 읽는 내내 떠올랐다.
소설이니만큼 특별한 깨달음이나 가르침을 얻진 않았지만,
바로 이 '보이지 않는'상태가 무엇인지, 그 상태가 가지는 의미가 무엇일지에 대해 새롭게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아무것도 아닌, 모호한 상태이지만, 또 어떻게 보면, 어떻게도 해석될 수 있는 무한한 상태라고도 볼 수 있는.
Invisible.
굉장히 흥미로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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