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소설은 아직까지도 읽어 본 적이 없다. [잡문집]과 같은 에세이집은 세 권 정도 읽어보았는데, 문장에 사용된 표현들이 독특하고, 말투가 굉장히 솔직하다는 느낌이 들어 참 맘에 들었다.
서가를 돌아다니다가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아기자기한 느낌을 줬던 최근의 에세이집들과 달리 다른 꾸밈 없이, 오렌지색 태양을 받으며 달리고 있는 하루키의 뒷모습만이 표지에 실려있었다.
그 동안 그의 책 몇 권을 읽으며 받았던 느낌인 '솔직함'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한 사진이었다.
회고록이나 자서전이라고 불리는 책들은 으레 그 사람의 위대한 인생 이야기. 지금까지 살아왔던 평생의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책은 제목의 일부처럼 정말, 하루키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을 뿐이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달리기를 해 오면서 자기 자신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적은, 역시나 아주아주 솔직한 책이었다.
예전에 다른 책에서였나, 하루키가 달리기를 하는 이유에 대해, 좋아하는 맥주를 실컷 마시기 위해서 열심히 달리기를 한다고 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아 이 무심함이란.
이 책에서도 하루키가 언급한 말이지만, 지속력을 갖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고, 심지어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아주 오래 꾸준히 해나간다는 것은 정말 위대한 일이다. 성실함과 부지런함 뿐 아니라, 나는 그렇게까지나 꾸준히 무엇인가를 하는 데에는 일종의 '무심함'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주변의 모든 것을 완전히 초연하게 대할 수 있는 그런 무심함.
이렇게까지나 유명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무심함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하루키가 타고 난 재능인 것일까?ㅎ 질투가 나리만치 좋아보이고 나도 갖고싶은 점이다.
차근차근 시간 순서에 따라 자신이 어쩌다 소설가가 되었는지. 어쩌다가 달리게 되었는지. 그 시작과 실제 달리고 헤엄치고 사이클을 탔던 순간의 얘기들을 참 차분하게도 말하고 있다.
그가 달리기를 하며 '심장 파열 언덕'을 넘을 땐 내 마음도 두근두근했고,
과호흡으로 수영을 할 수 없을 땐 나도 잠시 숨을 참아보게 했다.
큰 감동이나 놀라움을 느끼는 게 아니라 소소하게 웃으면서 친구얘기를 듣는 기분으로 읽었다.
위대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가, 그리고 러너로서의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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