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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108 초고 131109

과학적 진실이란 대체 무엇일까?

윌리엄 브로드, 니콜라스 웨이드의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을 읽고

과학계는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정말 이성과 논리에 의해서만 지배되는 세계일까? 아니면 우리의 이런 생각 자체가 과학계에 대한 단순한 바람일 뿐이고, 실제 과학계는 생각보다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세상인 건 아닐까?

이 책은 처음엔 진실이라고 주장되었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진실이 아니라는 게 밝혀진 수많은 사례들을 하나씩 예로 들어가며 과학계에서 진실을 배반하는 행위가 일어나게 되는 이유들을 꼽아보고 있다. 이성과 논리라는 이름 하에 움직여야 할, 혹은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되는, 과학계에서 일어난 진실 배반 행위를 분석하여 다시 고발함으로써 저자는 과학계에서 발표되는 많은 내용들이 알고 보면 사실 대부분 진실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듯 하다.

그런데 책의 전반에 걸쳐 눈에 거슬리는 표현이 있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생각할 수 있다라는 문구가 그것이었는데, 이러한 표현은 읽는 이로 하여금 무의식적으로 스스로가 무지하다는 생각을 갖게 하고, 따라서 저자의 의견에 아주 쉽게 동의하게끔 만든다. 하지만 진짜 과학계에 있는 사람 중 하나로서 저자 역시 정확히 잘 모르는 점이 많기 때문에 이와 같은 주장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적으로 N-선의 발견을 예시로 든 부분을 보면, 저자는 과학자들이 자기기만으로 인해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말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작가가 자기기만이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은 자기기만이라기보다 과학의 특성으로 인해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인 듯 하다.
 
과학이라는 학문에서 관찰한 내용으로부터 새로운 이론과 가설을 세우는 과정에는 대부분 매우 복잡한 논리가 요구된다. 따라서 처음에는 그 논리를 세우는 과학자가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정교하고 복잡한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논리를 세운 과학자 본인 역시 헷갈리기가 쉬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자의 자기각성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고, 또 연구자의 자기각성 외에는 딱히 논리를 세우는 과정에서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이 없기도 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저자는 논리를 세우는 과정의 이와 같은 특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과학계가 자기기만 행위가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무시한 채 수동적인 태도로 오로지 연구자의 자기각성 능력에만 기댄 채 저절로 자정작용이 일어나길 바라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이같이 과학자들의 태도를 단순한 변명 수준으로 취급할 수 있는 것은 저자가 과학에서 논리를 세우는 과정의 복잡함을 경험해보지도 충분히 이해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말이 무조건 비판적이기만 하고 옳은 점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과학계가 더 발전하기 위해 고쳐져야 할 점들도 분명 존재한다. 저자의 태도에서 가장 큰 문제는 그가 과학계가 그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대처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 것처럼 여기고 있다는 점이었고, 저자가 이런 태도를 견지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그가 과학계가 움직이는 과정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과학계의 수동적이고 안일한 변명처럼 언급한 자정작용은 사실 과학계에서 매우 큰 힘을 갖고 있다. 각종 저널들의 영향력과 가치를 수치로 평가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즉각적이진 않더라도 결국은 배반된 진실을 다시 드러내주는 장치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에 저자가 책에 언급했던 수많은 예시들 역시 거짓임이 드러난 것 아니겠는가?

과거부터 과학이라고 하는 학문은 경험이나 감정은 배제되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실험과 객관적인 증명의 결과들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밝혀내는 학문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사실은 과학의 도구가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성격의 것이었기 때문에 과학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굳어졌을 뿐, 과학을 하는 주체는 사람이기 때문에 과학은 온전히 객관적이고 이성적이기만 한 학문일 수가 없는 것이다. 책에서도 과학의 과정에 비합리적 요소가 포함된다고 해서 합리성이 부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은 논리적이면서도 비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면서도 비합리적이며 편견 없이 열려 있으면서도 교조적이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과학이라는 학문의 특성을 제대로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됐다.

사회에서 말하는 도덕과 정의가 그러하듯 과학에서도 때와 장소에 맞게 적용해야 할 다양한 진실의 기준이 존재하는 것 같다. 이중잣대 문제나 책에서 다른 누군가의 더러운 일이라고 언급된 일 같은 경우, 굳이 과학계가 아니더라도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 진실을 배반하는 행위를 불러일으키는 여러 원인들은 비단 과학계에서만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라, 보편적 도덕 문제일 수도 있는 것이다.
 
과학적 진실이라는 건 절대 변해선 안 되는 진리라기보다 단순히 과학적인 사실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저자의 의견에 수동적으로 이끌려가지 않고 올바로 이 책을 읽으려면 과연 과학에서 말하는 진실이라는 게 대체 무엇일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과정이 필요할 듯 하다.

 

Posted by solle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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