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제목이 특이해보여서 집은 책이었다.

제목 그대로 프라하 거리를 울고 다니는 어떤 여자의 열 두번의 "나타남"과, 그 나타남마다에서 느낀 생각들을 화자가 독백하는 식의 이야기다. 소설이라 할 수도 없고, 역자의 말처럼 조금 긴 시 또는 그냥 '이야기'라고 해야 하는 게 맞을 듯 하다.

 

처음 프롤로그를 보면서 이 '여자'의 실체에 대해 여러 가지로 추측해보려고 애썼다.

상징적인 어떤 의미가 있는 것 같고, 여자라고 표현했지만, 어떤 구체적인 무엇에 대해 이 책은 말하고 있을 거다 라는 생각을 했다.

잉크자국을 남기며 절뚝절뚝 걸어가는 여자. 나는 이 여자가 글을 쓰는 데 있어 글 속에 녹아나오는 '우연'일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틀렸다.

의미를 맞춰내지 못했다는 것 보다도, 내가 애초에 이 여자의 실체가 있을 것이라고 그 의미하는 바를 찾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자체가 틀린 거였다.

 

화자가 그 여자의 나타남을 목격할 때마다 각각 다른 생각이 피어오른다.

그 생각은 살해당한 유대인의 기억이기도 하고, 한 폴란드 작가에 대한 기억이기도 하다. 또, 지금은 이별해버린 사랑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 여자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다니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슬픔에 대한 사랑이고, 이별의 기억들이었다.

이별이나 아픔, 죽음 같은 것들은 어둡고 슬픈 느낌을 줄 것 같지만, 이것은 우리의 오해고, 우리가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사실 이것들의 실체는 따뜻한 것, 끌어안아주는 것, 아름다운 것이며, 이것들의 이러한 특성이 바로 그 '울고 다니는 여자' 자체였다.

그 여자의 존재를 우리는 보지 못하지만 항상 느낄 수 있다.

그 여자가 지금 곁에 없더라도 그 여자는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한다.

이 여자를 통해 작가는 독자들에게 각자 안의 깊은 슬픔과 사랑과의 이별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그것의 아름다움을 느껴야 한다고,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하고자 했던 것 같다.

 

모순적인 것 같은 표현이 한 문장 안에 들어있고, 하나의 상황에 대해 여러 겹의 묘사를 하고 있는 작가 실비 제르맹의 신비스러운 말투도 이 책의 특이한 점이다.

조금 지루하고 모호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타며 절대 넘어서지 않는다.

책을 읽는 내내 글자를 읽는 게 아니라, 잉크의 흔적을 쫓아가는 느낌.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멈춰선 이미지의 조각들이 머릿속에 끊어질 듯 끊어질 듯 계속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이 시는 책의 제일 앞쪽에 실려있던 것이다.)

노래를 부르다 못해 새는
사슴은 달리다 못해
결국은 길을 잃어버리곤 한다.
어쩌다가 물고기가
그물 속으로 들어가면
다시는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못한다.

그처럼 인간의 이성도 가끔
스스로 행도으이 자유를 잃고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보듬지 못 한다 :
매번 꿈을 꿀 때마다 그 꿈을
해명해줄 그 사람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페터 베니츠키 즈 투르체

Posted by sollea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