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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 섬에 홀로 살아가는 남자. 그리고 그를 찾아온 40년 전의 연인.

40년 전에 몰래 떠나버리려했고, 자신은 떠났다고 생각했지만, 걷고 걷다보니 떠난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쪽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걷고 있었던 남자의 이야기다.

제목이 <이탈리아 구두>이지만, 실제로 구두에 관한 얘기, 특히 이탈리아 구두 장인 자코넬리에 관한 얘기는 전체 소설의 길이에 비해선 아주 짧다.

하지만 이 '이탈리아 구두'가 의미하는 바가 이 소설이 얘기하고자하는 주요한 이야기인 건 맞는 것 같다.

이탈리아 구두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쉽게 볼 수 있는 종류의 신발이 아니다.

장인의 손길을 거친 신발이고, 신는 사람의 여러면을 고려해서 오랜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아주 특별한 신발이다.

이런 신발을 신는 사람은, 자신의 발에 대해 아주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사람일테고, 발에 대해 이렇게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걸어가는 방향과 길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사람일 거다.

소설의 주인공인 남자는 자신이 가고 있는 길에 대해 깊이 관심을 갖지 않았고, 그 길을 가고 있는 자신의 발도 소홀히 대했다.

기왕 가야될 길이고 가게 될 길이면 그 길에 조금 더 마음을 쏟고 애정을 기울이면 길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덜 줄 수 있을텐데 그 남자는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만나게 된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주고, 자기자신에게도 상처를 입히게 됐다.

하지만 어쨌든, 그가 관심이 없고 소홀한 태도로 대했다고 해도 그가 가야 할 길, 가게 될 길은 이미 운명처럼 정해져있던 것 같다. 작중에서 구두 장인 자코넬리가 했던 말처럼. 그리고 몇 십년 만에 아무 정보도 없이 찾아간 연못을 생각보다 쉽게 찾아냈던 주인공처럼.

"어쨌든 당신은 돌아왔어요. (...) 내가 알아야 할 것은 그 사실뿐이라오. 루이제는 당신이 숲을 지나서 와주기를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어요. 어쩌면 당신은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동안 내내 이곳으로 오는 중이었는지도 모르지요. 숲의 오솔길이나 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자기 안에서도 길을 잃기 쉬운 법이라오."(본문 167쪽)

하지만, 그 길, 목적지가 정해져있다고 해도 누구나 언젠가 그 곳에 닿게 되는 것만은 아니다.

주인공의 경우 삶이 끝나기 전에 극적으로 그 곳에 가 닿을 수 있었지만, 그의 경우에는 하리에트의 용기라는 아주 강한 힘이 있었기 때문에 목적지에 도달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이처럼 그 목적지와 그 길 위에서 함께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손을 잡아주는 것 역시 아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운명이 누군가를 어떤 길로 끌어당기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길을 가는 속도는 자신이 조절하게 되는 거니까.

"다른사람과 가까워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천천히 다가가는 거지. 너와 나도 마찬가지야. 너무 빨리 다가가면 바닥에 가라앉게 돼."
"바다에서처럼 말이죠?"
"하지만 너무 늦게 발견하면 볼 수 없게 되지. 사람도 마찬가지고." (본문 177쪽)

함께하는 사람들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그 곳에 닿은 '이후'의 일에서도 의미를 가진다. 목적지에 닿았다고 해서 안심하고 마음을 놓아버려도 안되는 것이, 목적지에 닿은 후에 이뤄야 할 어떤 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일을 깨닫고(혹은 깨닫지 못한 채로) 이루어내기 전에 우리는 몸만 물리적으로 목적지에 닿은 것일 뿐이다. 정신까지 온전히 목적지에 닿지 않는다면 결국 길을 끝까지 가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하리에트가 함께 있지 않았더라면 연못에 빠져서 꼼짝없이 죽어버렸을 주인공처럼 말이다.

 

단순히 헤어졌던 가족들의 만남과 그 재결합을 통한 서로간의 치유를 다룬 책이라고 볼 수도 있었겠지만, 제목을 보면서 '길을 가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며 읽는다면 좀 다른 시각에서 다른 생각을 많이 해 볼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그때 갑자기 한 이름이 떠올랐다.
 아프톤뢰텐. 윌 아버지가 행복한 고래처럼 수영하던 숲 속 연못 근처의 산 이름이었다.
 아프톤뢰텐.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물었고, 아버지는 알지 못했다. 어쨌든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프톤뢰텐."

"우리 이제 자요. 드디어 아버지 코고는 소리를 듣게 되었네요. 아버지가 잠들 때까지 깨어 있을 거예요." (p.157, 숲)

"우리는 고통스러운 비명 때문에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침묵의 집에서 살고 있었다. 하리에트가 어서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점점 더 자주 들었다. 고통으로부터 그녀가 자유로워지게, 그리고 나와 루이제를 위해서도." (p.332)

Posted by solle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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