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옥의 단편 '야행', '역사', '서울/1964년 서울', '무진기행'이 실려있는 책이다.
그의 단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만이 알고 있는 삶에 대해 생각한다. 그들은 자기 자신만 알고 있는 삶 속의 특별한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실체화하여 눈 앞에 그리려고 노력한다.
'야행'의 주인공은 자신이 찾고자하는 삶의 진실된 얼굴, 바라보기 두렵고 어렵지만 그 무시무시한 얼굴을 직접 대면하고자 밤거리를 헤매인다. '역사'의 주인공은 특별할 것 없는 일용직노동자인 줄 알았던 서씨가 달밤에 역사로 변하는 것을 보고 자신만의 인생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서울/1964년 서울'에 나오는 청년들은 열심히 자신만이 알고 있는 어떤 의미들에 대해 취중토론을 벌이는 모습을 보였지만, 결국 한 남자의 죽음을 막지 못한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모두가 그 의미를 찾고 달성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역시 보여주고 있어 그의 소설은 참 깊이있으면서 현실적이었다.
야행의 주인공은 그녀의 의미를 달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그것이 결코 이루기 쉬운 것은 아니라는 것도 함께 깨닫는다. 역사의 주인공은 달밤의 역사를 떠올리며 주인집 가족들에게 현실을, 자신들의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게 하려고 야밤에 소란을 시도하지만 결국 저지당하고 만다. '서울/1964년 서울'의 청년들에게서는 나의 삶은 나의 삶이고 그의 삶은 그의 삶일 뿐, 타인의 삶에까지 손을 내밀어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일인지를 보았다.
이것들 모두가 삶의 진실한 모습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들처럼 결국 어떤 대단한 의미를 이루어내지 못한다고 해서 그 의미가 퇴색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만이 알고 있는 어떤 의미를 만들어내기 위해 혹은 찾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 과정으로써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실린 '무진기행'에 나오는 인물들 역시 각자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조부장도 자신 나름의 열등감을 극복하려고 끙끙대며 살고 있는 인물이고, 음악선생 역시 자신만의 탈출구를 마련하기 위해 이 방향 저 방향으로 애를 쓰며 살아간다. 주인공은 남들에게 부러움을 자아낼만한 처를 만나 편안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고뇌하는 인물이다. 그는 '무진'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자기를 발견해주길 기다리고 있는, 그만의 진짜 삶의 의미를 만나지만, 결국 그 삶의 의미와 손을 잡는 데는 실패하고 만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인 "당신은 무진을 떠나고 있습니다." 라는 문구는 무진이라는 장소에 있는 그와 마주쳤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외치는 소리인 것이다. 그의 삶 속에 숨어 자신을 찾길 기다리고 있는 그만의 진짜 삶의 의미가 그에게 소리치는 말인 것이다.
안개가 자욱하게 끼는 곳, 무진.
그는 과거에도 몇 번 무진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가 이제 또 무진을 방문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가 이번에 무진을 떠나가면서 느꼈던 부끄러운 마음은 그가 자신의 삶이 자신에게 외치는 그 소리를 잊어버리진 못하게 하리라는 건 확실하다. 그의 삶이 외치는 소리를 직접 마주쳤기 때문에 그의 삶은 내부에서 꿈틀대는 삶의 목소리로 인해 분명히 달라지게 될 것이다.
앞의 세 단편과 무진기행에 나오는 인물들은 우리 삶의 진짜 의미를 찾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가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의미있고 중요한 일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들은 하루하루 매 순간을 바쳐 삶의 조각들이 가지는 진짜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고뇌한다. 그것을 찾는다고 해서 그 의미를 그대로 따르는 것은 아니다. 그 의미를 발견하는 것 자체와 자신만의 의미를 창조해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그들은 말하고 있다.
김승옥의 글들은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깊이 있게 생각해보고 썼다는 느낌이 들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이 문장 속의 단어들과 같이 매 순간순간의 의미를 곱씹으라고 충고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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