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여기 들어있는 여러 편의 단편 소설들 중 나는 '뉴욕제과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글은 소설이라기보다 김연수 작가 자신의 자전적 에세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어머니가 운영하시던 어린 시절 '뉴욕제과점'의 흥망성쇠(?-라고 하기까진 과장된 느낌이 있지만)를 소재삼아 풀어놓은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의 초입에서 그는 연필로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말하고 있다.
연필로 쓰는 소설이라는 건 어떤 느낌일까?
쓰다보면 앞에 써놓은 글자들은 손바닥에 밀려 뭉개지기도 하고, 연필심이 뭉툭해짐에따라 글씨도 굵어졌다 가늘어졌다, 그렇게 약해보이고 변덕스러워보이기도 하는 그런 성격의 글인걸까?
연필은 우리가 어렸을 때만 주로 많이 쓰는 도구다. 그리고 연필만큼 솔직하고 쓰는 사람을 잘 받아들여주는 도구는 없는 것 같다.
아이가 어른이 됨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내놓기보다 조금이라도 더 가리고 숨기려고 하는 것처럼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연필은 쓰지 않고 볼펜이나 딱딱한 자판을 두드린다.
이야기를 모두 읽고 난 뒤 이런 연필의 특징처럼 어린 시절의 그 기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놓고 싶었다는 얘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을 포함한 이 책에 실린 다른 모든 글들에서 작가의 표현력, 문장들의 섬세함을 보고 많이 감동받았다.
특히 여기 실린 소설들은 대부분 경상도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데, 글 속에 표현된 정말 너무나도 생생한 사투리와 우리말 표현들로 인해 글을 읽고 있는데 등장인물들이 바로 내 옆에서 서로 떠들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책 말미에 실린 작가의 말을 보면, 그 역시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소설을 위해 여러가지 정보를 수집하고 그러느라 애를 많이 썼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책, 아니 그의 글들이 나를 이렇게나 감탄하게 하는 건 그가 그 정보들을 머릿속에 넣은 뒤 글로 풀어낼 때 그것을 단순한 정보로써 사용하는 게 아니라 그의 마음 속에 담긴 기억들과 잘 버무려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다룰 때 있어서 그처럼 섬세한 손길을 사용하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앞으로 몇 달 간은 김연수의 책들만을 독파하는 데 시간을 쏟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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