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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란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다"!!


진화라고 하면 흔히 '더 발전하는 과정, 이전보다 더 나아진 상태'와 같이 진보의 개념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스티븐 제이굴드는 "진화"라는 것의 개념에서 "진보"의 개념을 빼고 그것을 재정의하고자 한다.


이 책은 사실 '백인천 프로젝트'라는 것에 대해 알고 싶어 검색을 하다가 야구에서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첫 번째 시도라는 소개를 보고 처음 알게 됐다.

4할 타자가 사라진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야구경기에서의 문제일 뿐인데 그것과 인류의 진화가 무슨 상관이 있는것인지 호기심이 일었다.

책을 읽은 뒤 내 호기심이 얼마나 충족되었는가,를 누군가 묻는다면

'그는 인간적으로 합리적인 설명을 해 주었다.'고 답하겠다.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는 것은 누군가가 제안한 이론이나 법칙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진화'라는 개념이 자리잡을 당시에 사람들의 머릿속에 무의식적으로 존재하던 '인간은 지구상의 그 어떤 생물체보다 진보된 존재이다'라는 오만함 때문에 만들어진 암묵적 동의사항이라고 봐야할 것 같다.

이러한 무의식적 의식의 흐름을 깨기 위해 저자는 다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물론 저자 스스로도 완벽하게 그 의식을 깨버리지 못하고 중간중간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본인 스스로도 그 사실을 알고 있고 이것이 우리가 새롭게 정의를 내리고 논리를 고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잘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바로 그 점으로 인해 저자에 대한 반감도 들지 않았을 뿐더러 책을 읽는데 내가 충분히 쫓아가지 못하고있구나 하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물학적 관점에서 진화에 대해서만 주구장창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적인 스포츠인 '야구'라는 소재를 끌어옴으로써 저자의 통계학적 분석을 통한 진화의 개념 재정립 과정을 좀 더 쉽고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했는데,
4할타자의 존재가 나타났다가 사라진 현상에 대해 그 이유를 찾아나가는 과정이 굉장히 재미있었는데,
일단 나는 야구를 챙겨보는 사람이 아닌데도 그가 떠올리는 뛰어난 야구선수들과 게임장면들에 대한 기억을 글로 읽으면서 저자가 얼마나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느껴져서 나도 즐거운 기분이 들었고,
또, 이렇게 그의 감정이 전달되는 것으로 인해 단순한 통계분석이 아니라 야구팬인 과학자 삼촌에게 얘기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서 이해도 더 잘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뒷쪽(4장)으로 가면 마치 캠벨 고사리책의 1장같은 기분이 들긴 하지만, 첫 장의 아주 단순한 말 진화 얘기, 그 다음에 이어지는 야구 얘기와 전혀 끊김이 없다는 점에서 이 책이 아주 잘 쓰인 책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이 주장하는 "진화는 짐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다"라는 것에는 매우 동의하는 바인데, 사실 지금까지 나는 이 문장 자체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정말 무의식적으로 '진화'라는 개념을 '진보'라는 개념과 혼동하고 있었는데, 내가 그것을 혼동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조차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두 개념을 사실 완전히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분명 어려움이 있다고 본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진화'라는 개념이 생겨나고 자리잡는 과정에서 '진보'라는 개념이 늘 함께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둘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구분해낼 수는 있을 것 같다. 둘은 함께 공유하는 부분과 공유하지 않는 부분이 뒤섞여있고, 우리의 몫은 그것을 잘 구분하여 '진화'라는 개념을 '진보'를 합리화하는 데 오용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저자 역시 완벽한 논리와 개념을 소유한 것 같아보이진 않는다. 그리고 저자 스스로도 그 사실을 시인하고 있다.

뒤로 가면 유공층의 크기 변화를 가지고 설명하는 예시가 나오는데, 이 부분이 굉장히 합리적으로 이해가 잘 갔다.(아무래도 저자가 고생물학자이다보니 설명을 더 잘해준 게 아닌가 싶기도 ㅎㅎ)

하지만 박테리아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는 저자의 흔들림이 좀 커진 것 같아서 답답하기도 했다.
박테리아가 더 "우월"하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여기서 앞의 주장들과 일치되려면 "우월"이 아니라 "열등하지 않다"라는 표현을 쓰고, 역시 "우월함"이 아닌 "열등하지 않음"에 대한 증명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역시 "진보"와 "우열"의 개념에서 완전히 자유롭긴 어려웠나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역시 박테리아 얘기에서 생물량이 언급되면서 질보다 양으로 밀어부치려고 하는 듯한 태도가 보이기도 해 아쉬웠다. (뭔가 사람이 이성보다 감성의 영역으로 한 걸음 들어가는 것 같아 약간 실망할 뻔..!)

또, 책에서 저자는 선충의 예시를 이용해 생물의 진화과정에서 복잡성은 감소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것을 주장해간다. 하지만 곧이어 사실 그것들의 유충 발달과정의 복잡성을 보면 자신이 이처럼 복잡성이 감소하는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나려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억지가 있을 수 있으며 "복잡성"이라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고 얘기한다.

이처럼 다분히 평범하고 인간적인, 자신의 주장을 강력히 내세우고 그것을 쫓다보니 갈팡질팡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얼른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뱉은 말 중 실수를 인정할 건 인정하는 그의 전개방식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기 위해 다른 사실이나 증거들을 끌어와 끼어 맞추는 것 같은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고,
과학에서의 다양한 통계적 접근 방법을 이용하는 것과 하나의 예시를 깊고 넓게 끌어와서 설명하는 방식이 그가 주장하는 바에 대해 이해하기 편하고 좋게했다.


마지막으로 에필로그에 대해 꼭 언급하고 싶은데, 저자는 생물학적 진화의 문제를 넘어서서 인류사회의 '문화'의 발전에 대해서 에필로그를 남겼다. 인류 사회만을 놓고 봤을 떄 그 안에 존재하는 '문화'라는 특이한 어떤 "것"은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말하는 '진화'의 흐름과는 좀 다른 길 위에 놓여있는 게 맞는 것 같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그 사실을 인지하고 그것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을 경우 발생가능한 오해를 줄이고자 애쓰고 있는 듯했다. 그는 문화의 경우에서도 '진화'나 '진보'라기보다 '변화'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제안했다.
문화에서는 우월의 개념은 없는 것 같은데, 우리가 '진화'라는 것에 대한 무의식적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도 그 의식의 흐름이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면서 '진보'라는 표현을 쓰게 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생물의 진화에서 '진보'라는 개념을 (혼동하여 잘못되게)썼을 때와 문화의 경우처럼 인류사회라는 닫힌 계 안에 존재하는 어떤 인공적인 무엇에 대해 '진보'라는 개념을 쓸 때는 두 '진보'라는 개념 사이에 분명 또 차이가 존재하는 것 같다. 여기서 근원에 존재하는 문제점은 여전히 생물의 진화에서 '진화'와 '진보'의 개념을 구분하는 데 있어 우리가 혼란을 느끼고 있는 것이고 말이다.
어쩄든 이 점까지 놓치지 않고 집어내어 독자들에게 설명을 마무리지어주기까지 한. 정말 좋은 작가였다.


+ 아,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핵무기 개발에 대해 언급된 문장이 딱 하나 있었는데 너무 강렬하게 저자의 감정이 느껴졌다. 그 문장을 보고 든 생각이 90년대에 핵무기, 핵개발에 대한 회의적, 비판적 인식이 아주 많이 증가했고, 그로 인해 인류가 스스로 진보한 존재이고, 다른 생물체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 반하는 의견이 더 활발하게 피어났던 건 아닐까?도 싶었다.


책에 언급되어있던 P.B.Medawar의 말을 남기면서 마무리해야겠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예술이 과학이다."

Posted by solle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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