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번 주 3일에 걸쳐 노벨 생리의학상, 물리학상, 화학상의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노벨상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이 상은 “지금까지 인류에게 가장 큰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고 여겨지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prizes to those who, during the preceding year, shall have conferred the greatest benefit on mankind.)”이라고 나와있다. 처음 이 문구를 보면 노벨과 다이너마이트 이야기가 떠오르며 자연스럽게 수긍이 간다. 그런데 한 번 더 읽어보니 여기서 ‘인류에 큰 이익을 주었다’는 표현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노벨상의 수상자 또는 수상작은 인류 전체에 비하면 매우 작은 집단에 불과한 노벨상 위원회에서 결정하지만 그 파급효과는 정말 엄청나다. 명예뿐 아니라 엄청난 상금 때문에도 노벨상 수상자들은 대중매체를 통해 수없이 소개되고 따라서 그 원리가 아무리 복잡하다고 하더라도 대중들에게 그 내용은 어떻게든 전달된다. 이런 양적인 측면에 더해 ‘인류 전체에게 이익을 주었다’는 노벨상 수상의 이유는 ‘인류’에 해당한다면 누구나 그것과 직접 연관되어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하지만 이 표현은 어디까지나 노벨상 위원회가 정의한 문구일 뿐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정말 우리는 생활 속에서 노벨상 수상작들에 의해 엄청난 이익을 받고 있는가? 또 노벨상 수상자들 스스로도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미디어의 표현에 우리가 속고 있는 건 아닐까?
사실 이건 <우리는 모두 별이 남긴 먼지입니다>에 등장하는 열 세 과학자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떠올랐던 생각이었다. 예전에 비해서 과학이 대중에게 아주 많이 다가왔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과학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거기에 쉽게 관심을 갖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과학자들은 재미있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비춰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 수많은 연구들 중에서 노벨상을 받는다는 것은 인류 전체가 중요하다고 느낄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 받는 것이고, 그 말은 곧 사회 전체가 그 연구에 타당성을 부여한다는 뜻이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과학자들 중에는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도 있고, 잘 알려지지 않은 연구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읽어보면 하나같이 스스로의 연구가 의미 있고 흥미롭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독자의 입장에서도 그들의 생각에 쉽게 동의하게 된다. 또 그들은 자신의 삶과 연구를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고 삶 자체가 곧 연구와 직결되어 연구도 삶도 즐겁게 만족하며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열 세 명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굳이 노벨상을 받지 않아도, 사회 전체의 관심과 인정을 받지 않아도 연구를 수행하는 주체인 과학자의 개인적인 관심과 흥미만으로도 그 연구는 충분한 의미를 가진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그래서 사회가 과학이라는 것에 대해 스스로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 또 그렇기 때문에 괜히 더 엄한 잣대를 들이대고 ‘나를 이해시키라’고 강요해오고 있는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의 제목이자, 우주론자 마틴 리스가 한 말처럼 “우리는 모두 별이 남긴 먼지”에 불과하다. 과학자 스스로도, 과학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도 우리는 모두 먼지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갖춰야 한다. 자신감을 갖는 건 중요하지만 과도한 기대는 기대를 품는 사람에게도 받는 사람에게도 상처로만 남기 쉽다. 과학자나 기업가, 예술가를 막론하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가지는 것은 좋지만 그보다 먼저 그 포부가 자기 자신에게 흥미로워야 할 것이다. 과학이라고 해서 꼭 전 인류에게 큰 이로움을 줘야 하는 건 아니다. 과학 역시 다른 사업이나 예술과 마찬가지로 개인이 자신의 이익-그것이 지적 욕구이든 경제적 욕구이든-을 추구하는 데 쓰일 수 있는 도구의 하나로 생각돼야 한다. 과학자 자신의 호기심을 채워 스스로에게 이익을 가져올 수 없다면 ‘인류’라는 거창한 단어를 만족시킨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전자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후자 역시 이뤄질 수 있기나 할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 큰 것을 바라기 전에 나 자신이 얼마나 작은 먼지에 불과한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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