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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저자가 여자일까 남자일까 궁금했다. 일본인 특유의 부드럽고 차분한 말투라서 여자처럼 느껴질 뿐 이렇게 대담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남자지 않을까, 또 남자고 여자고 할 것 없이 스스럼없이 다가오게 하는 걸 보면 분명히 남자일거야, 라고 생각했다. 이 궁금증은 중간 쯤에 나오는 에피소드인 <부르노의 꿈>을 보면 풀린다.


우치다 요코는 여자다. 하지만, 일본 여성이라고 하면 나에게 떠오르는 이미지인 말 없고 수줍음을 타는 이미지같은 건 전혀 없다. 그녀는 담대하고 스스럼없으며 단순한 삶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 같다. 그렇기에 이탈리아에 아주 잘 어울린다.
복작거리는 관광지로서의 이탈리아 말고,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고 그 아래는 알록달록한 색색의 지붕이 언덕 가득 얹혀져있는 곳. 그러다 어느 순간 구름이 몰려와서 온 공기가 회색으로 바뀌며 세모꼴의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가 코앞에 펼쳐진 곳. 그런 이탈리아 말이다.

이 책에는 우치다 요코가 이탈리아에 살면서 만났던 친구들의 이야기 10편이 실려있다.
책 표지를 펼치면 차례가 나오기 전에 이런 말이 써있다. 책의 부제인듯, 책 겉면에도 이 문구가 써있는데
"흐린 날 많은 밀라노도 맑은 날이 있고
태양이 가득한 시칠리아에도 밤은 찾아온다.
Il sole tra le nuvole,
la luna sul mare"
라는 문구로 마치 '당신이 알고 있던 전형적인 이미지의 이탈리아인 말고 내가 만난, 이면을 가진 이탈리아인들의 생활을 보여주겠다.'고 말하는 것 같다.
과연 이 책에 등장하는 열 편의 이야기 속 이탈리아인들의 모습은 특별히 '이탈리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탈리아라고 해서 왜, 뭐가 달라야하나요? 하는 순수한 질문을 받은 느낌이 들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우치다 요코의 친구들과 그들의 이야기는 세계 어느 나라, 어느 고장이 배경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법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녀가 만난 친구들은 특별히 좀 더 따뜻하고 순수하기 때문에 마냥 흔하게 넘어가지지만은 않는다. 바로 이 따뜻하고 순수한 모습이 우치다 요코가 보여주고자 했던 진짜 이탈리아의 모습 아닐까? 우리가 흔히 보고 들어 알고 있는 복작거리는 이탈리아 말고, 알록달록한 지붕이 가득 덮인 언덕 너머로 세모꼴의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가 곧장 내다보이는 곳. 길모퉁이에 숨어 나를 지켜보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면 씩 웃어보이며 달려와 손을 내밀 그런 사람들이 사는 곳 말이다.

열 편의 이야기 중 <거울 속의 나폴리>에서 우치다 요코를 집안으로 안내하던 남자가 그녀가 이탈리아어를 못 알아듣는 줄 알고 그림으로 설명하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 너무나도 귀엽고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꼭 이 장면이 주는 느낌처럼 책에 등장하는 우치다 요코의 모든 친구들은 아픈 구석을 가지고 있어도 하나같이 마음이 너무 따뜻하고, 자기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그 삶과 삶에 대한 스스로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혼자 일어서려고 악을 쓰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친구들과 자연 전체를 아우르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이웃과 친구들에 대해 진정어린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딱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한다. 그래서 더욱 더 상대를 배려한다는 생각이 들고 말이다.

이 책은 저자가 외국에 살면서 만난 다양한 친구들이나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맞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 자체보다(물론 그 이야기들 자체도 재미있긴 하다.) 사람의 내면에 대해, 그 내면에 누구나 가지고 있는 따뜻함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Posted by solle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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