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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떠나게 될 지 모를 딸의 곁을 지키며 매일 아침 도시락에 냅킨 노트를 넣어주는 아빠.

처음 이 책을 주문했을 때는 '냅킨 노트'에 어떤 글귀들이 써있을까가 궁금해서였다. 실제 책에는 노트의 내용이 아니라 아빠 가스 캘러헌과 그의 딸 엠마 캘러헌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전에 윌 슈발브의 <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북클럽>을 읽었던 게 떠올랐다. 그 책에서 암환자인 어머니의 아들은 장성한 어른이지만, 이 책의 딸 엠마는 아직 고등학생이다. 엠마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즈음부터 이별을 두 번이나 연속적으로 겪었다. 아이가 "왜 잘못한 것도 없는데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꾸만 이별해야 하는 거냐"고 아빠에게 울며 묻던 장면에서 나는 정말 할 말이 없다는 생각,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왜"라고 묻는다면 그 누구도 대답해줄 수 없을 거다.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바에 의하면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정말 해야할 것은 "왜"냐고 외치며 슬퍼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래서 이제 어떻게 살건데?'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게 아닐까? 가스 캘러헌이 냅킨노트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메시지가 이것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자기 스스로의 아픔과 슬픔에 집중해 그 안으로 침잠해들어가기 전에 내 손을 잡고있는 사랑하는 누군가를 기억하라는 것. 우리는 누군가에게 내 아픔을 토로하고 누군가에게 사랑받길 기대하기 위해서보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충분히 표현하며 살라는 것.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오래 살고, 어떤 사람들은 좀 더 짧은 시간을 살다 간다. 하지만 그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마음을 얼마나 충분히 표현하고 마음을 나눴느냐 하는 것이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내가 나눈 사랑은 남을 것이고, 그로 인해 사람들은 나를 기억할 것이다. 또 그들을 통해 내가 나눠준 사랑이 계속해서 나눠질 것이다. '사랑'으로 세상에 영원토록 남는 일. 한 사람이 세상을 살다 가는 데 있어 이것보다 더 크게 이룰 수 있는 일이 또 뭐가 있을까?


솔직히 스스로에게 남은 시간이 많다고 할 수 없는 가스 캘러헌은 스스로의 몸을 돌보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대해 생각하면서 지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병을 진단받기 전과 같은 삶을 유지하려고 애쓰며 살고 있다. 그의 하루하루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가 그렇게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잘 살아보려고 애쓰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애쓰는 모습이 사랑하는 사람인 아내와 딸에게 그의 마음을 전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는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세상을 떠날 날이 다가온다는 사실이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대해 집중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시간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아름답고 행복하게 채울 수 있을까, 그 시간들을 나 하나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더 풍성하고 따뜻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며 보내라고 그는 외치고 있다.


그와 딸 엠마가 마음을 나누는 아프지만 따뜻한 얘기들 중 엠마가 애완동물을 키우는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한 밤중에 알레르기 증상으로 아빠를 부르게 된 장면이 가장 마음에 남는다. 그 때 가스 캘러헌은 "아빠니까" 언제든, 어디로든 너를 데리러 갈거라고. 네가 부르기만 하면 이유도 묻지 않고 그곳으로 당장 달려갈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이란 정말 이런 게 아닐까. 내 사정을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 사람의 곁에 항상 있어주는 것. 이유같은 건 필요하지 않으며 오로지 마음과 마음만 있으면 아무리 먼 거리여도 순식간에 전달되는 그런 것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각자의 마음이 외치는 목소리를 못 들은 체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냅킨에 문장 한 구절을 적어넣어주는 아주 사소해보이는 일도 가스 캘러헌의 엠마를 향한 마음, 사랑이 담기면서 위대한 일이 된 것이니까. 각자의 마음 속에 든 위대한 사랑을 절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 한명이라도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한 엠마와 아빠의 냅킨노트는 827번째, 828번째를 넘어 1000번째가 넘어서도록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Posted by solle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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