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생물이 책상이나 바위같은 무생물과 다른 이유가 뭘까? 생물을 생물답게, 또 그 중에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요인은 과연 무엇일까?
인간은 자신들의 존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해왔다.그리고 그 '특별함'은 곧 '마음'의 존재에서 기인한다고 생각되어 왔다. 하지만 이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것인가. 수십년 간 사람들은 '마음'이라는 것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 철학적, 과학적, 또 문학적 방법, 그 외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방법을 동원하며 애를 써왔다.
이 책의 저자 얼윈 스콧은 과학자다. 특히 마음의 근원이 머리, 즉 뇌에 있다고 생각하는 신경과학자로 신경과학은 물론, 물리학과 화학, 양자역학까지 동원하여 과학적으로 인간 '마음'의 존재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마음에 이르는 계단>은 1999년 출간되었으며 우리나라에는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가 번역하여 2001년 소개됐다.
지금으로부터 15년도 더 전에 발간된 책이며 최근 5년 동안만 해도 신경과학계에 엄청난 발전이 있었지만 필자가 이 책을 읽으며 떠올린 것은 '우리가 이룩했다고 생각한 '눈부신'발전은 말짱 헛것이었구나. 십여년이 지나도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다소 씁쓸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결론이지만, 그래도 나는 이 책에 별 다섯 개 만점에 네개를 주려고 한다.
이 책은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과학이 가져다 줄 궁극의 솔루션에 대해 떠들어대는 책도 아니고, 검은 망토를 두르고 "내가 네 애비다!"를 외칠 것만 같은 어두컴컴한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책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극히 과학자스러운 태도로 지금까지(물론 1999년 당시까지를 말한다.) 만들어진 이론들을 이용해 인간의 정신과 의식, 즉 마음이라는 것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하나 살펴본다.그에게 있어 마음이라는 것은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 또는 실체를 가진 무엇이 아니라 하나의 이론인 것 같다.(그리고 필자는 이런 태도를 매우 좋아한다. 마치 스티븐 호킹이 '신'이란 세상의 움직임과 관찰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물리 법칙들이라고 할 수 있다고 여긴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은 실체가 없는 '마음'이라는 개념에 직접 접근하려들기보다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원자)로부터 출발하여 '정신'에 이르기까지 한 계단 한계단을 올라간다. 제목 그대로 '마음에 이르는 계단'을 밟아올라가는 것이다.
제일 먼저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들의 물리적인 구조를 분석하는 데서 시작하여 이 입자들이 모여 구성하는 분자, 물체들-생물체를 구성하는 세포, 세포들이 모여 구성하는 조직, 그 중에서도 정신 활동을 조종한다고 생각되는 '뇌'까지. 책장을 넘기다보면 독자는 어느새 얼윈 스콧과 함께 계단의 꼭대기에 올라서있게 된다.
저자는 '마음'이 무엇인가 말하려하지 않는다. 저자의 목적은 마음의 실체를 벗겨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이르는 계단의 한 칸 한칸을 정성스레 살피고 닦는 것이다. 이 책은 '마음'이라는 것의 존재, 혹은 실체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사고의 흐름, 태도를 알게 해준다. 마음에 대해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충분히 사유해볼 수 있도록 독자를 준비시켜주는 책이다.(세상에 이렇게 좋은책이..!ㅎㅎ 책을 읽고 난 뒤에서야 비로소 본격적인 능동적 사고가 시작되게 하다니 이게 진정 좋은 책이 아닌가?!)
다만 번역된 과학책을 볼 때 몇 번 느꼈던 점으로, 마치 번역기를 쓴 듯한 딱딱한 직역체의 문장들이 많아 읽기에 매끄럽진 않았던 게 아쉬웠다. 이 책이 한국에 출간된 2001년이 그렇게나 옛날은 아니지만, 충분히 오래되었다는 말을 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이런 태도를 가진 과학 교양서, 특히 심리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주제인 마음, 정신, 의식에 대해 얘기하는 책을 흔히 볼 수 없는 중에 아주 마음에 들었기에 아쉬움도 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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