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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눈가리고책읽는당 #눈가리고책읽는당2기 #구두,10,내성적인 #내성적


세 가지 단서 중 '10'은 도무지 모르겠다. 한 바퀴를 돌아 무언가를 완성하는, 꽉 채우는-의 의미인걸까? 도무지 모르겠다.


마지막 단서 '내성적인'은 책에 실린 이야기 전체를 아우르는 키워드였다. 단편집을 읽는 재미는 그 안에 실린 단편들 속에서 작가를 느끼게 하는 공통된 무언가다. 이 마지막 단서는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 전체에 심어진 공통된 그 무언가였다. 모든 주인공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돌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에 나오는 에피소드들은 그렇게 특별한 일이 아니다. 단 며칠간의 이야기, 짧게는 하룻밤동안 벌어진 일이기도 하며, 단순한 한 사람의 일상으로 주변에서 흔하고 쉽게 들어봤음직한 일들이다.

하지만, '내성적인' 화자 스스로가 이야기를 하면서 이 일들은 왜곡되기 시작된다. 상당히 평범한 일상 상황이고 사건인데, 화자의 입을 통해 이야기가 흘러나오면서 과장되고, 감정적으로 왜곡되며 장면들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화자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지고 화자의 입으로 얘기되어지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사건은 평범하지 않게 된다.


이야기의 주인공들 역시 평소라면 이 사건과 상황을 평범하게 받아들였을지 모른다. 그 속에서 내성적인 사람 한 명으로 녹아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날만큼은 다르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새로운 가면을 씌우고, 색칠을 해서 극의 주인공으로 돋아나고자 한다.

하지만 도둑질도 해 본 놈이 잘 하는 법.

그들의 갑작스런 돌출은 그들 자신보다도, 주변 사람들과 세상에 더 큰 충격을 주고 만다. 마치 빵빵하게 부푼 풍선에 누군가 실수로 뾰족한 바늘을 갖다댄 것과 같이. 빵빵했던 풍선이 모두를 놀래키는 굉음을 내며 빵!하고 터져버리는 것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멋진 새 구두를 신고 좋은 곳으로 가려던 그들은, 날을 잘못 잡았다. 좋은 구두는 좋은 날에 신어야한다고 하는데, 그들은 하필이면 진눈깨비가 와 아무리 조심해도 진흙투성이가 되고 마는 날을 골라 새 구두를 신은 것이다.

하지만 갈가리 찢긴 풍선 조각, 진흙범벅이 된 구두에게는 더 이상 가릴 것이 없다. 그들은 사람들이 관심없는 척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길을 보내고야 마는 존재다. 그리고 이 눈길을 보내는 순간은 그 누구라도 '내성적'이 되버리고 만다.

바로 내성적이었던 그들과 외향적이었던 그자들의 위치가 뒤집히는 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마지막에 웃는다. 마지막 순간, 내성적이었던 화자들은 왜인지 모를 희열을 느끼며 웃고 만다. 그들을 바라보던, 아니 그들이 바라보던 '외향적인 그들'이 내성적인 자들로 변한 것을 보며 실컷 비웃는다. 다음 날이 되면 내성적이었던 사람들은 내성적인 사람으로 외향적이었던 사람들은 다시 외향적인 사람으로 다 되돌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 없다. 터져버린 풍선이 다시 붙을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웃는 것이다.


그런데 책을 덮을 때쯤 이들의 이야기는 사실 슬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순간이라도 매우 행복하지만, 터져 갈가리 찢긴 풍선 조각 신세가 되었기 때문에? 아니다. 그것은 전혀 슬프지 않다. 이들의 모습이, 이들의 이야기가 슬퍼지는 이유는 바로 그 누구도 그들에게 자신에 대해 돌아보지 말라고 했다거나, 그럴 여유조차 없게 그들을 압박했다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 스스로가 '내성적인'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점이, 모든 원인이 자기 안에 있는데 그걸 깨닫지 못했다는 점이 이들의 모습이 그토록 슬픈 진짜 이유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에게 바람을 채워넣었고, 그들 스스로에게 뾰족한 바늘을 갖다댔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갈가리 찢긴, 그리고 어디로 날아갔는지 알지도 못하게 된 풍선의 잔해다. 정작 풍선 자신이 왜 터졌는지,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빵!하는 거대한 소리는 주변을 놀래켰을 뿐 자기 자신에게는 들리지 않았기에 슬프다.


사실, 외향적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오히려 더하다. 터질까 봐 몸 이곳저곳에 온통 테이프를 발라놓는 너절한 풍선일 뿐이다. 테이프를 잔뜩 달고선 내성적인 풍선들이 조심성없이 바늘을 든 것을 훔쳐보는 것이 외향적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절대 터질 일이 없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할 기회조차 없다. 내성적인 사람들은 갈가리 찢어진 풍선조각이 될 테지만, 또 누가 자기 자신을 터뜨렸는지는 영원히 깨닫지 못할 수도 있지만, 찢어진 조각이 된 자기 자신의 모습을 깨달을 수 밖에 없다. 예전보다 훨씬 가벼워질테니까.

Posted by solle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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